영화감독 송일곤에 대한 기억들......
이제서야 늦은 리뷰를 올린다. 내가 참 좋아하는 영화감독 송일곤, 난 그의 단편, 다큐멘터리 작업, 오늘 쓰게 될 장편 극영화에 이 르기까지 난 그의 작업을 지지해왔다. 그는 꽤 소신있는 영화인이다. 멀리 쿠바에 가서 춤에 얽힌 인간의 역사를 담을 때, 그의 영상 텍스트의 행간을 읽어내며 '그래 이거야'라고 박수를 쳤다. 묵직한 영화만 고집할 것 같던 그가 최루성 연애 이야기를 들고 나왔을 때, 의외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와의 첫만남과 기억을 되살려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듯 하다. 영화음악을 소개하는 신지혜 아나운서와 나, 사막을 마라톤으로 완주한 영화 프로듀서, 이렇게 우리들은 홍대 근처의 작은 와인가게에서 송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 큐슈지역의 한 소나무를 취재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는 내게 다음에 제대로 술 한잔을 하자고 청했으나 서로의 약속은 빈말이 되버렸다. 나로서는 언젠가 한번 지금껏 보아온 그의 영화를 안주삼아 제대로 따져 물을 각오가 되어 있다. 그가 차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동그랗게 퍼져가는 영혼의 가위소리를 들고 나타났다. 예전 내가 돕던 소녀가장 집에 쌀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던 어느 노을지던 늦가을, 엿장사 하던 장애인 노부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환절기의 시간, 딱딱한 호박엿을 짤박짤박 잘라내던 대패소리와 가위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어찌보면 호박엿보다 더욱 단단한 삶의 절편을 잘라내며 서로의 입김이 되어주는 그 부부의 애닮은 모습이 떠오르는 영화. 애라.....그래 연애영화는 현실보다 결코 부박하지 않다. 내가 그의 영화를 보면 느끼고 행간을 부유하며 떠올린 과거의 상상은 이러했다.
인간은 왜 연애영화를 보는 걸까
연애란 무엇일까?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만나서 서로를 갈망하며 결합하려 애쓴다. 그러나 결국 그 만남은 영혼하지 않다. 연애의 쉬크란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뒤집어말하면 서로에 대한 열망은 어긋나기 마련이고 이 '어긋남'을 운명으로 삼은 인간의 결합은 실패의 운명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연애시를 읽고 연애영화를 보며 '짠한' 눈물을 흘리는 이유일거다. 너무나 빤한 스토리, 한물간 복서와 시각장애를 겪는 여자, 그 둘의 운명은 얄궂게 연결되어 있다.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 자신의 사적 영역 속에 서로를 받아들인다. 항상 그래왔듯 이후의 삶은 사랑을 방해하는 그 어떤 제도적 현실에도 굴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 그런 사랑이 있는가? 사랑의 근원적인 불가능을 은폐하는 알리바이로 현실의 매스를 들이대기엔, 영화 속 한효주와 소지섭은 너무 예쁘다. 탁월한 외모를 가진 이들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가상 속 기억'을 제조하며 지나간 자신의 기억을 영화 속 그들과 동일시 한다.
난 연애영화가 좋다. 특히 해피엔딩이 좋다. 다시 말하지만 영화는 결국 관람객들이 극 속 이야기와 자신의 추회를 동일시 할 수 있는 장치에 기댄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영화를 보는 순간, 거짓된 해피엔딩을 통해 현실의 부박함을 이기고 싶지 않을까 말이다. 연애 이야기가 성립하려면, 두 사람의 끈이 마치 운명처럼 어느 순간에서 엉키고, 그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 다시 만나야 하는 그런 장치가 필요하다. 여기에 절대적인 기대와 의존이 필요한 관계가 성립될 때, 둘을 둘러싼 사회적 현실을 극복하는 '두 사람의 오기'는 강렬한 사랑의 흔적으로 남게 된다.
재미있는 건 이 뻔한 스토리를, 이런 내러티브의 구조를 관객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옷깃을 여미는 계절이 되면 '또 다른 버전'의 연애담을 찾아 극장 구석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동을 한다손, 어떤 개그맨의 말처럼 '경찰이 잡아가거나 쇠고랑을 찰 일'은 없다. 다만 현재 애매모호한 상태에 빠진, 위기의 연인들은 은막 속 세계와 대칭으로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볼 것이며, 그 사랑의 정당성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질 뿐이다. 현재 '사랑의 시간' 속에 놓여져 있음으로 사랑에 빠지는 인간의 정체성을 재확인시켜주니 이 얼마나 위대한가? 그렇다 세상의 모든 연애영화는 자기성찰적이다. 써놓고나니 뻘쭘하긴 하지만 뒤로 내빼기도 쉽지 않다. 결국 모든 연애 영화 속 부재와 상실, 타인에 대한 환멸은 역설적으로 사랑이 현재 '있음'을 역설한다.
영화를 보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장자』의 한 토막이 떠올랐다. 대종사편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샘의 물이 다 마르면 고기들은 땅 위에 함께 남게 된다. 그들은 서로 습기를 공급하기 위해 침을 뱉어주고 거품을 내어 서로를 적셔준다. 하지만 이것은 강이나 호수에 있을 때 서로를 잊어버리는 것만 못하다" 읽다보니 숙연해진다. 사랑의 불가능성 앞에서 상처받은 육체를 보듬고 습기를 내기 위해 토악질을 해보지만, 결국 풍성한 물 속에서 서로를 잊어버림만 못하다는 말이. 사랑이 망각 속에서 지속되며, 우리는 지난 해 혹은 몇 주 전 보았던 연애영화와 눈물 흘리며 읽었던 연애시를 다시 읽게 되는 이유일거다......아무렴 어떠랴. 난 송일곤의 <오직 그대만>이 좋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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