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마음 미술관

내 안에 상처받은 '나'와 화해하는 법

패션 큐레이터 2011. 12. 18. 23:37

박경선_Echo of Communion #3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11

어느새 연말입니다.

요 며칠 너무 무리한 탓인지 기침이

심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한 다스를

타왔는데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끝내 병원에 실려가 링거를

꽂고 한 차례 홍역을 앓고서야 토요일 오후에 집에 돌아왔네요. 몸의 구석

구석이 쑤시고 아프고 어리숭어리숭 합니다. 몸에서는 계속 쉬라는

신호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만 달렸던 까닭이겠지요.

기침을 할때마다 폐가 울리는 이 삭막한 느낌을 표현

하기도 쉽지 않네요. 삶의 리듬을 잃었습니다.

박경선_Egocentric Speech #8_캔버스에 유채_97×97cm_2011

푸른 약물을 수저에 담아 목에 삼키는 시간,

하얀 달빛을 쓸어담는 그림자의 이면 같은 빛깔의 기침을

연신 해댑니다. 기침할 때마다 번지는 반점은 달의 이면처럼 어둡고 습합니다.

컹컹거리며 가슴 울리는 기침의 가지마다, 지나온 세월의 응고된 상처가

고름이 되어 터딘 듯, 하얀 눈이 핍니다. 올 마지막으로 보내는

이 계절의 길목에서 하얀 꽃등이 깜빡깜빡, 떨립니다.

 
박경선_Egocentric Speech #10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11

이렇게 아플 땐 물끄러미 그림 앞에 섭니다.

신인작가 박경선의 그림 속 아이는 작가의 분신입니다.

유년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내면에 꼭꼭 숨겨둔

또 다른 아이에게 스스로 말을 건냅니다. 'Egocentric Speech'라는 제목이 붙여진

시리즈에서 작가는 자신만이 불러낼 수 있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상처 입은

내면의 자아와 대화를 시도합니다. 유년의 시절의 욕망들, 우리는

그것을 생득적인 욕망이라고 해서 흔히 니즈라고 부르지요.

이는 성년이 되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성된 욕망

원츠(Wants)와 구분을 합니다.

 
박경선_Egocentric Speech #13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11

어린 아이의 결핍된 마음을 사랑으로 안아주는

따스한 곰 인형과 인형의 탈은 어른이 되어 내면을 치유하고자 하는

현재 자신의 상징이며, 실 전화기는 과거 자신과의 교감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심리적 안정을 되찾기 위한 통로입니다. 반투명에 가까운 보드라운 파스텔톤의 색감으로 그려진

세상, 그 속에서 아이는 자기 스스로 공명을 일으키기 위해 종이컵을 대고 말을 건냅니다.

역시 아플 땐 우리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품 속에서 보호받던 시절을

떠올림으로써, 생의 미열을 견디려 하나 봅니다.

 
박경선_Egocentric Speech #15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11

몸이 아플 때는 생각합니다.

그저 외부적인 환경 속에서 내 몸이 균형을

잃은 것인가? 아님 나 자신이 일부러 애써 감추고 있는

상처들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인지를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내면 깊숙이 스스로가 가치 없다고 느끼는 자신의 일부, 즉 못난 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엘레인 아론은 이런 못난 나를 가리켜, 스스로 저평가한 '자아'라고

말하고 있지요. 이 '못난 나'는 생의 반경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불쑥

튀어나와  자신의 가치 판단을 흐려놓습니다.

 

이러한 좌절반응, 못난 나를 자꾸 떠올리는

일을 무조건 나쁘다고 속단하기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추가적인 좌절이나 패배, 수치심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러한 좌절 반응이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게 될 때입니다. 도전의지를 꺽고 못난 나가 힘을 얻게 되죠.

결국 타인과의 비교, 순위 매기기를 통해 그런 못난

나를 자꾸 재생산하고 그 덫에 빠집니다.

 
박경선_Freezing-self Soothing #11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1

그러나 이러한 상처를 극복하는 것도

결국은 끊임없이 비교하며 나를 괴롭힌 타인들과의

타자들과의 관계 맺기에 있습니다. 타인과의 순위매기기를 그리

힘들어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를 통해 경쟁을 즐기며 때로는 상대에게

손을 내미는 아량을 배울 수도 있으니까요. 누군가와 손을 잡을 때, 관계는 생겨납니다.

단세포 조직이 다른 단세포 조직과 만나면 생물이 되듯, 고등적인 다세포 생물은

서로를 도우며 집단을 형성해 살아가지요. 함께 살아가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고 끌리며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도와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시대가 어렵고, 주변 환경이 힘들어질수록 이 연대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내부 속에 있는

방어기제들이 타인과의 사랑을 막을 때에는

 

그림 속 아이처럼, 내 안의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진정코 지금 이 순간 내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접촉과 포월, 포용하며 감싸안으며, 어려운

상황을 지나가기 위해,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대면하고 물어보세요. 오늘처럼

기침이 심한 날은 저도 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겨울 한 계절의

빈 자리를 바라보며 무채색으로 하강하는 내 삶의 연소에

다시 불을 붙여줄 것들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행복한 한 주 시작하세요.

저는 빨리 기침이 멈추기를 바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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