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마음 미술관

엄마가 어렸을 적에-소중한 것들을 위하여

패션 큐레이터 2010. 10. 2. 23:53

 

이미경_봄날에-김제에서_종이에 잉크펜_100×80cm_2010

 

작가 이미경을 만난 것은 2년 전, 첫 책을 출판한 지 오래지 않은

초 가을의 오후였습니다. 종이에 일일이 잉크펜을 이용해 세밀하게 그려놓은

옛 기억의 추억들이 저를 사로잡았죠. 소소한 일상의 고적함, 무엇보다 삶의 빠듯함 속에서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을 응고시켜 볼 수 있게 끔 해 놓은 작품들은, 마음 한 구석을 따스하게 적셨습니다.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지금은 옛 추억이 되어가는(적어도 이 서울이란 메가 시티에선) 구멍가게들을

그립니다. 어린시절 생각해보면 이 구멍가게에서 파는 모든 것들은 신기의 대상이었죠.

엄마 100원만 하던 시절의 추억은 이제 1천원을 들고가도 사먹을 게 없는

초물가 사회가 되었기에 더욱 그립나 봅니다.

 

 

이미경_나 어릴적에-01_종이에 잉크펜_60×100cm_2009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넘쳐다는 베이비붐 세대를

수용하지 못했던 학교시설은 오전반 오후반이란 걸 만들어서 아이들을

받았지요. 밖에 일이 있어 나가시는 날엔, 엄마는 항상 돌아오는 막둥이 아들을 위해

'스댕박그륵'에 밥을 담아 빛깔이 고운 공단 이불 속에 넘어 두셨죠. 따스한 온기가 식지 않은

그 밥을 꺼내 반찬들을 둘러놓고 수런 수런 넘기던 그 시간들이 생각났습니다.

 

서구에도 똑같이 이 구멍가게들이 있었습니다.

 맘앤팝이라 해서, 우리의 기억 속 구멍가게형태들이 자리하죠.

그러나 할인점을 비롯한 대형유통체제가 일상을 점유하면서 이러한 업태의

기억들은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대량으로 물건을 파는 대신, 값을 후려칠 수 있는

할인점은 저가 공세로 세상의 유통의 문법을 새로 썼지만, 뒤집어보면 불필요

한데도 덤으로 사야해서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주고 받음 속에

한 줌 더 주는 인심같은 건 이제 기대하기가 어렵지요.

 

 

이미경_엄마의 보물상자_종이에 잉크펜_80×80cm_2009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엄마는 적어도 바느질에 아주 뛰어난

분은 아니었습니다. 결혼 전 엄마는 여인의 머리결을 만지던 헤어디자이너였고

그 덕에 어린시절 항상 유행하던 머리 스타일(뭐 그래봐야 바가지 스타일이 대세였지만)

을 지닐 수 있었죠. 어릴 땐 뭐가 그리 서러워 툭하면 잘 울었던지, 울보, 짬보란 소리를 귀에 달고

다녔습니다. 작은 소쿠리에 담긴 실패와 골무, 바늘쌈지, 할머니가 쓰셨다는 결이 촘촘하게 박혀있는 견고한

갈빛 참빗이며, 색실들이 생각납니다. 저는 지금도 함부로 옷가지나 헌 옷을 버리지 않습니다.

왠만하면 아이디어를 내서 리사이클 하거나 기워서 다시 신고 입지요. 세대가 너무

풍요로운 탓인지, 이제는 이런 '기움'의 문화가 그리 선호되지도, 오히려

비난받는 세대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모든게 앞으로

간다고 진보란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경_형제상회_종이에 잉크펜_60×100cm_2010

 

작가 이미경은 펜이라는 친숙한 도구를 이용해 그림을 그립니다.

펜은 단순하게 선을 그어 드로잉을 하기엔 최고의 매체이지만, 캔버스 위에

화려한 색감을 덧입힌 그림들이 넘쳐나는 세대에선, 그리 선호하는 매체는 아닐겁니다.

그러나 그 특유의 섬세함을 표현하는데는 드로잉만큼, 초기의 정신을 살려 담아낼 수 있는 형식도

드물지요. 어린시절의 추억, 누군가와 공유해야할 기쁨의 감도, 단단한 고요에 닿으려는

과거의 시간에 대한 상념, 이 모든 걸 펜 하나로 담아내는 것일 겁니다.

 

 

 

이미경_금곡정류장가게_종이에 잉크펜_70×100cm_2010

 

2년 전 그녀의 그림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서 어찌나 놀랐는지요

선의 굵기가 칼보다 더 예리하고 얆은데 이걸 무한중첩시켜 그려낸 도시의 애잔한

풍경화를 완성한 겁니다. 선과 선 사이, 그 사이의 여백에선 이 비정성시의 공간이 품지 못하는

생의 여백들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펜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없음에서 있음으로, 비존재에서 존재로

일상과 꿈 사이를 길항하는 화가의 여린 기억을 더욱 단단하게 키워내고 있었습니다.

 

 

 

이미경_아차산역가판대_종이에 잉크펜_55×45cm_2010

 

저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란, 곧 인간이 위대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한 양식이란

믿음을 버려본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종이와 캔버스란 매체를 빌려, 세상의 풍경과

부조리,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그것의 존재론은

이로써 충분한게 아닐까요? 작가 이미경이 힘겹게 찾아다니며 일종의 정신의 채록처럼 자신의 펜으로 그려내는

구멍가게의 풍경은 이제 사라지고 명멸하는 운명에 처해진 것들입니다. 과거를 무조건적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하려는 것도 아닐겁니다. 과거란 낭만의 시간을 주유하는 거인은 이제

이 도시의 공간에선 찾아보기 힘든 족속이 되었으니까요.

 

 

 

이미경_꽃가게_종이에 잉크펜_70×50cm_201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린 구멍가게들은

어린시절의 추억으로 우리를 이끄는 일종의 롤러코스터가 되어

우리를 빨아들입니다. 그 흡입력의 강도가 적지 않네요. 요즘 다음뷰를 비롯

인터넷 공간을 보는 시선이 점점 더 마뜩찮아 졌습니다. 연예인 추문기사나 재생산하느라

정신이 없는탓에, 온라인이란 또 다른 정신의 풍경은 이제 단일도로로 통합된 빛깔과 형태만을 선

보이는 것 같아 기쁘질 않습니다. 예전 블로그 초기에는 대형언론들이 다루지 않는 삶의

소소함을 다루겠느니 어쩌느니 하더니 이런 첫 마음도 이제 다 사라져가는 것

같습니다. 마치 도시공간에서 작은 구멍가게들이 하나씩 명멸하듯요.

 

연예프로 이야기와 맛집 이야기, 자녀 교육 이야기만 가득한

공간......이제 저같은 미약한 블로거들은 사라질 때가 되었나 봅니다.

뭐 없어질 때가 되면 없어지겠죠. 중요한 건 소중한 것들, 잊혀지는 것 들이

더 이상 정신의 가치와 공백을 메우고, 채워주지 못하는 사회, 그 이면의 풍경을 생각

하는 이들이 존속할 수 없는 사회, 그 세상을 생각해야 할 때가 우리에게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한 책임 모두는 우리가 져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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