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마음 미술관

여자의 이별이 아름다운 이유

패션 큐레이터 2010. 12. 19. 18:02

 

내 사랑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다시 읽는다. 그의 글은 처음엔 접근이 어렵지만, 삶의 한 국면, 어떤 상황에서 문득 읽었던 텍스트의 행간이 가슴 아리게 죄어올 때가 많다. 그의 글에 중독된 이유다. 사랑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 그건 인간의 숙명이다. 사랑이란 거대한 담론을 한 개인 혹은 지적 집단이 포획하여 개념화 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현실의 사랑은 때로는 비루하고 달콤하다. 그 사랑 앞에서 울고 환호한다.  사람들은 결혼을 통해 안정을 찾는다고 말한다. 아니 정착한다고 표현한다. 안착한다는 것은 평생 온순하게 내 말을 들어줄 청취자를 찾는 것이라고 바르트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말을 뒤엎고 빈정댄다. 인간은 말로는 안착을 떠들지만 실제로는 창부처럼 '부양'받기 원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 이선희 Cheer you up, 발포 우레탄, 아크릴 가공, 2010년

 

사랑 때문에 아플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패이고 헐었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이 상처를 위로해줄 영혼의 연고나 꿰매줄 마법의 실과 바늘은 없는지. 되돌아 보면 세월이 약이라는 진부한 말 들 앞에, 그저 묻어두느라 바빴고, 누군가에게 받았던 상처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줌으로써, 세상과 공평한 관계를 확립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관계 앞에서 누구든 버겁고 힘든 건, 사랑에 빠지는 순간, 너와 나 모두는 기다리는 존재가 되기 때문일거다. 이유없이 성마른 조급증이 심장의 표면을 뚫고 나온다. 기다림이 물거품이 될 때 우리는 상심한다. 이선희의 Cheer you up은 그런 당신을 위한 위약이다. 약봉지와 확대한 캡슐 안에 약 대신 텍스트를 넣었다. 예술로 당신의 마음을 치유한다는 말이 들어있다고 했다.

 

 

ⓒ 이선희 <우리의자> <Me & You> 가변설치

 

작가 이선희는 사랑에 관한 작은 이야기를 짓는다. 짓는다는 표현을 쓴 건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뜨개질을 하기 때문이다. 집을 짓는 것과 한 벌의 옷을 짓는 것을 동일한 동사를 사용해 표현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세상의 아픔이 나 만의 것이 아니고, 설령 아프더라도, 그걸 대처하고 웃어 넘기는 생의 기술을 조금씩 익혀나갈  수 있어서다. 그 마음을 그녀는 이번 설치작업을 통해 그대로 투사한다.

 

 

두 번째 뜨개질 시리즈 작업은 ‘me’, ’you’, ’우리’와 같은 글자를 뜨개질로 떠서 의자에 걸쳐진 채 혹은 덮여진 채 자연스러운 형태로 자리한다. 의자는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 해 주고, 뜨개질 편직물은 교차된 손길을 통해 완성 되며, 이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나와 타인, 우리의 관계에 대해 의식하고 엮어 나가고 있다. 자크 라캉이 편직물의 구조를 예로 들어 인간의 인식을 설명했던 걸 떠올려봤다. 예전 작가와 그녀가 사랑했던 이는 저 의자에 함께 앉았을 것이다. 비록 지금 그의 부재는 아프지만, 부재의 강을 넘어 타인의 기억과 나의 기억을 하나로 합친다. 뜨개질의 힘은 세다.

 

 

작은 설치작품이지만 힘이 난다. 여기 태양이 있다라는 말, 그건 태양을 의미하는 Sun이 작가의 이름인 선희를 의미하는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만나고 헤어지고 비루한 삶의 궤적 속에서도 태양같은 나를 믿어보는 것. 아니 매일 반복되는 우주적 질서처럼 다시 살아가고 싶은 마음. 작가의 마음이 전달되어서다.

 

 

사랑에 아픈 당신을 위한, 따스한 위로

 

'사랑 때문에 죽지마라......아니 사랑 때문이라면 절대로 죽지마라' 내가 좋아하는 시인 장석주의 경구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사랑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말들 하지만 그건 취기 때문이다. 감히 말한다. 자신의 말 앞에 계면쩍은 감정을 드러내며 거울 앞에 서고 싶지 않거든, 사랑 때문에 울지도 말고 죽지도 말자. 작가는 이 마음을 담아 한 땀 한 땀 뜨개질을 한다. 너에 대한 생각, 나를 위한 위로가 만난다.

 

 

ⓒ 이선희 <Taking Care of yourself> 약포지, 가변설치

 

그래.....괜찮아....다시 한번.....잘 지내니?

아플 때, 가장 듣고 싶은 단어들, 혹은 언어들이다. 사랑 앞에 아팠던 자, 쉼표를 찍고 나아가라. 언제든 다가올 새로운 윤회의 시간의 문이 너를 위해 열릴 것이다. 응축된 사랑의 기운이 다시 내 안에 채워질 때까지 그냥 조금만 기다려보자. 만남은 회귀하는 연어와 같아서 언젠가 때가 되면 운명의 양수를 타고 질주하는 사랑의 연어를 쥐게 되리니, 그때를 위하여 이 스잔한 겨울을 잘 버틸 일이다. 작가가 약포장지에 담은 작은 위로의 말들, 표현들을 하나씩 담아 가슴에 담는다. 위약이면 어때? 힘내자고.

 

 

작가가 Cava 시리즈에 매달린 것도 그럴 것이다. 불어의 싸바.....는 어떻게 지내나는 뜻이다. 위로란 어려운 단어로 풀어내는 게 아니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사랑외에도 이 말이 필요한 이들이 산재함을 알게 될 거다. 여자의 이별은, 아니 작가의 이별은 아픔의 탐닉이 아닌, 우리를 둘러싼 화해로 변했다. 화해는 반드시 복원의 꿈을 이뤄내는 토대다. 여자의 이별이 예술이 되는 것. 그래서 난 이 여자의 이별이 맘에 든다. 다시 한번.....꼬망 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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