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탈 교회의 예배장면
크리스탈 교회, 그러나 빛은 사라지고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시사잡지에는 툭하면 등장하는 수사들이 있다. '불패'란 단어도 전가의 보도처럼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기득권의 견고한 틀과 프레임, 집단적 행동을 통한 의사의 관철 등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일 것이다. 한국 교회에도 대형교회들이 등장했다. 흔히 메가 처치의 모델로 삼는 미국의 크리스탈 교회를 벤치마킹한 이 땅의 부산물이다. (미국의 크리스탈 교회는 최근에 부도사태를 맞았다) 나는 압구정동 소망교회를 참 오래도 다녔던 성도다. 지금도 친구들은 그곳에 둥우리를 틀고 있고, 이사와 함께 조현삼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일명 감자탕 교회를 섬기고 있다. 감자탕 교회는 내가 유학하던 시절, 교회 세습 문제로 분당 위기를 맞던 모교회를 보며, 또 다른 교회생활을 위해 캐나다에서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된 교회다. 성전건축을 하지 않는 교회, 사회구제와 건덕, 리더를 키우는 교회란 인상을 받았다. 여전히 건물에 세들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요즘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견고한 기득권은 다름아닌 기독교를 이용한 관계맺기로 똘똘뭉친 세력들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근현대사는 자칭 교회장로직을 받은 이들을 대통령으로 뽑아서, 그리 좋은 결과를 산출한 적이 없지 싶다. 이름을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로 하여금 IMF 1세대가 되어 '역사의 증인'으로 만들어준 장로 출신 대통령. 역겹다.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교회의 탈법선고 운동이 극렬하다. 한국 교회는 언제부터인가 자신들의 이권과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 버렸다. 각종 교계의 수장을 뽑는 선거엔 갖은 불법과 뇌물이 성행하고 교회는 목사 개인의 재산이 되어 상속세도 내지 않고 세습된다. 많은 이들이 카톨릭의 수사들이 결혼하지 않는 것의 연원에 대해 잘 모른다. 중세 말, 부패한 가톨릭의 상황을 막고자,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교회의 재산을 세습할 수 없도록 결혼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결혼금지는 절대사항이 아니라 이전에는 권고 사항이었다.
왜 교회를 크게 짓냐면......대형교회 탄생의 역사를 되집다
우리는 흔히 미술사에서 중세 말 고딕양식의 근사한 교회들과 마주한다. 뾰족한 첨탑과 각종 화려한 내벽, 마치 활짝 시위를 당기듯 휘어놓은 화려한 궁륭과 스테인드 글라스에 눈길을 보낸다. 우리는 화려한 색감의 스테인드 글라스에 반해, 그것의 실제 목적에 대해서도 자꾸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종교개혁의 시작은 루터의 성서 번역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물론 이것은 시작은 아니지만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점을 차지했다. 라틴어로 쓰여진 성경을 일반 평민들은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성경에 쓰여진 메시지를 통제하고 그것의 의미를 밝히는 수사의 입에 달려 있던 시대란 말이다. 뒤집어 말하면 각 개별 주체인 평민들이 복음의 메시지를 일대일로 만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교회는 소위 무식한 평민들에게 성경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시각적인 장치들을 조율해 만들었다. 그중 성서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구조로 풀어 교회의 벽면위에 마치 요즘의 영화처럼 시리즈로 전개하는 것이고, 우리가 아는 스테인드 글라스는 바로 이 목적을 위해 봉헌된 봉헌예술(Devotion Art)의 일종이다.
중세 말, 우리에겐 그저 화려한 교회건축의 시대로 기억될지도 모를 고딕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고딕은 회의주의가 판을 친 시대다. 천상을 지상에 구현하고 신앙을 가시화하는 것이 종교 예술의 근본 목적으로 천명되었다. 세상은 어지러웟다. 중세의 봄이 끝난 자리엔 말그대로 '봄날은 갔다'였고 인구와 토지, 식량 사이의 균형은 깨졌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대지를 떠돌았다.
여기에 가뭄과 홍수는 풍요로운 농업생산을 기반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구에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여기에 대역병까지, 온 사회 도처에 음침하고 어두운 절망의 느낌이 가득했다. 사람은 삶이 힘들수록 종교에 몰입한다. 종교 속 세계를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하지만, 더 이상 세상은 종교 권력이 모든 거 좌지우지 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사람들은 유랑하고, 세속 군주는 교회권력과 다투었다. 십자군 이후 권위가 추락한 교회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교회는 이럴수록 내면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단 심판을 강화하고 갈등 극복을 위한 체계적인 신학 정립에만 몰입했다.
그때나 지금이나.....변한 것은 없다.
어지러운 세상, 신의 현현을 보여주기 위해, 교회는 더더욱 자신의 신앙을 감각적 형태로 나타내야 했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이 화려하고 높다란 첨탑을 가진 고딕교회였다. 궁륭과 공중부벽 기술을 발달시켜 이 모든걸 가능케 했다. 신의 세계에 대한 부르짖음은 더욱 강해졌지만 실제로는 회의가 들기 시작한 거다. 그게 고딕의 정서다. 이 고딕은 미술사의 한 시대를 표현하는 단어가 아니다. 바로 지금, 화려하고 강력하며, 거대한 메가 처치들이 포스트 모던 사회의 흔들리는 개인의 정서를 잡기 위해 혈안인 지금, 다시 등장한 것에 불과하다. 인간들은 교회를 크게 지음으로서 자신의 위세를 자랑하려 한다. 그러나 그 속은 철저하게 후패하기 마련이다. 신앙은 철저하게 내면을 향해 뚜벅뚜벅 걸음걸이를 옮기는 작업이다. 외부적인 현란함과 장대함에 기초한 시각적인 문법으로 인간의 언어를 교화하고 내면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야 말로 야만이란 뜻에서 나온 이 고딕의 정신을 직통으로 물려받는 꼴이라 할 수 있을거다. 기독의 안티를 잡겠다고 인터넷의 분서갱유를 시도하고, 대형교회의 목사들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블라인드 처리를 요구하는 것. 중세 시절의 이단심판과 대응논리를 만들기 위해 부산했던 교회의 모습과 그대로 닮아있다고 말하면 어불성설일까?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각 시대에서, 현재 우리안에 있는 다양한 모순점들을 함께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나온 과거는 그냥 과거 속의 시간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딱히 진화한 것 같지 않다. 적어도 종교에 대해서는 말이다. 기독교가 열린 체계가 되어, 예수의 마음을 품으려면, 적어도 지금 종교와 권력이 밀착된 거대권력을 꿈꾸기 보다, 탈권력의 세계를 소요유한 예수의 정신으로, 그 근본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 이 땅에는 대형교회란 열린 기독교의 적들이 세상의 권력이 곧 하늘의 권력이라고 부추기는 듯 하다. 하나님은 가장 미천하고 낮은 자를 들어 자고하는 세력을 꺽으신다고 한다. 한국사회에서 낮은 자들은 대체 누구일까? 바로 우리 평신도들일 것이다. 이 땅의 기독개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당신들은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오마이뉴스 메인에 기사가 소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Art & Fashion > 패션과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 (0) | 2011.10.08 |
---|---|
여성가족부의 대중음악 '19금' 기준의 정체를 알아보니 (0) | 2011.08.24 |
무례한 자들의 복음-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에게 고함 (0) | 2011.08.23 |
여성가족부를 위한 한 장의 그림 (0) | 2011.08.22 |
무례한 인간들에게 화내지 않고 혼내는 법-법정소송이 필요한 이유 (0) | 2011.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