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로다테의 2011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보고 있다.
올 봄/여름 시즌 작품들을 블로그에 올린 이후, 로다테란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최근 아마존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캐서린 오피와 로다테의
작업을 묶은 도록이 발행되었다. 책 내용을 하나하나 살피며 로다테란 디자이너 브랜드의
창의성의 유전자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 여름
뉴욕 여행을 하면서, 봄/여름 시즌의 주요 상품들을 버그도프 굿맨에서
하나하나 만져볼 기회가 있었다.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그들의
독특한 프린트가 눈에 선연했는데 올 가을/겨울도
이러한 자연친화적인 철학이 유지되고 있다.
케이트와 로라 멀리비란 두 명의 디자이너가 런칭한
패션/액세서리 브랜드인 로다테의 반향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UC 버클리를 졸업한 후, 2005년부터 자신들이 포고해야 할 라인의 속성을
생각해왔던 그들은 이후 대형 유통업체인 갭(Gap)이나 타겟등과 협업을 벌여왔고
안나 윈투어의 눈에 들면서 대중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전 세계적으로 40여의 명품 유통업체
에 입점, 자신의 존재감을 선보이고 있다. 바니스 뉴욕, 니먼 마커스,버그도프 굿맨
빔스, 하비 니콜, 콜레트, 이크람, 노드스트롬, 제프리, 도버 스트리트 마켓
이외에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사실 그녀들의 옷을 좋아하게 된
건 실제적으로는 런웨이 상에서가 아니었다.
2010년 2월 뉴욕의 디자인 박물관인 쿠퍼 휴잇에서는
그녀들의 첫번째 개인전이 열렸다. 제목은 퀵 테이크(Quicktake)
이때 전시회의 주체는 세계적인 아트 매거진인 아트 포럼이었는데 이때 우연히
그들의 작품을 봤다. 그들의 옷에 새겨진 자연의 능선, 물결, 숲의 이미지 등 자신들이
어린시절 자랐던 고향의 색감과 질감을 담은 옷은 한편의 예술품처럼 다가왔다.
올 가을/겨울 컬렉션에도 그녀는 고향의 대지에서 무르익는
밀밭의 흔들림을 프린팅으로 처리해 표현했다. 밀밭은 걸어본 이들은
알것이다. 시간의 등 위에서, 시간의 매듭을 순정품의 바람과 햇살, 빗물을
먹으며 한 고리 한 고리 풀어내는 자연의 순환과 그 노역을 말이다.
그녀들은 항상 자연에서 영감을 취한다.
올 가을/겨울 컬렉션은 테렌스 맬릭 감독의 <천국의 날들>
에서 펼쳐졌던 미국의 평원들과 그 이미지들을 조합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햇살아래 널브러진 밀밭의 이미지를 찍은 실크 가운, 햄 라인에도 이 밀밭의 이미지를
찍었다. 마치 퀼트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인 패턴들의 사용도 눈에 띤다.
로다테의 옷에 매력을 느끼는 건 역시
각각의 옷에 새겨진 공예정신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패션에서 두드러지는 특색은 미국 전통의 공예기술을
한땀한땀 살려내어 옷에 적용하는데 있다. 에이프런 상의와 스커트 위에
정교하게 새긴 퀼트 작업이며 수제 아플리케 자수의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건
이런 전통적 양식들이 자칭 현대성의 첨단을 걷는 뉴요커의 패션에 어필할 수 있는가의 여부일거다.
여기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자. 뮤지엄이 앞다투어 사들이고 있는 그녀의 컬렉션을 비롯
로다테 브랜드의 미적인 유전자를 상품화하는데 혈안이 된
유통업체들은 넘치나니 말이다.
로다테란 브랜드를 자꾸 거명하는 건
다른게 아니다. 우리에게도 복원해야 할 이 땅의
공예기술이 있다는 점과, 그것을 최상급의 패션 브랜드로
연결 시킬 수 있는 마케팅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자칭 한국의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들이
전통 공예기술을 접목한다며 보여준 실험들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조악하다. 공예정신과 기술을 애국심이나 혹은
동양의 에로틱한 정신으로 포장해 파는 것도 한 두번이 될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다. 왜 이런 현상들이 자꾸 반복될까? 우리에겐 항상 구호만
있고, 그 구호의 내면을 채워줄 기술의 터득이 없기 때문이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영감의 원천으로 과거란 시간에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한 결과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숙제가 있다.
과거를 계승하되 창조적으로 변용하는 일.
말처럼 쉽지 않다. 도대체 과거를 통해 뭘 배우란 걸까.
과거의 패턴이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하는 것과 1차원적으로 떠오르는 것들,
관객들이 보기엔 저항감이 줄기도 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다가가는 일은 한 두번 하고 나면
바로 밑천이 떨어진다. 과거를 통해 배우자고 하면서도 뭘 배워야 할지 그걸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 옷의 '다움'을 찾는 일. 평생을 되집어도
풀어내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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