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몬드리안, 런웨이를 걷다-코스튬 내셔널 2011 F/W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1. 9. 15. 16:06

 

 

올 2011년 해외 브랜드의 가을/겨울 컬렉션을 살펴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깔끔한 작품들이 있었다. 바로 코스튬 내셔널이 발표한

옷들이다. 극단적인 단순미가 오히려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감수성을 정리해주는 느낌이다. 아마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엔니오 카파사의 작전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블랙과 레드, 블루와 옐로우, 다시 검정의

색면으로 구획된 간결한 세상을 옷으로 입은 모델들이 눈에 들어온다.

 

 

코스튬 내셔널은 1886년 현재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엔니오와 그의 형인 카를로 카파사가 창립한 브랜드다. 현재 밀라노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코스튬내셔널」이란 브랜드 하에, 의류 및 향수, 액세서리를 생산하고 있다.

디렉터인 엔니오는 일본에서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의 어시스턴트로 일했다.

요지 야마모토는 일본의 디자이너로서, 전위적이면서도 일본적인

단아함을 비대칭의 선을 통해 표현해왔던 아티스트다.

 

 

강렬한 미니멀리즘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의 작품들은

작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데, 올 가을/겨울 컬렉션도 그런

연속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4가지의 견고한 단색을 검정과의 세련된 조합을

통해 표현했다. 이번 컬렉션에선 질서와 균형이란 인간의 미덕을 옷 위에

펼쳐내 보이고자 했던 디자이너의 의도가 돋보인다.

 

 

피엣 몬드리안 <구성> 연작 중

 

그리스발 경제위기는 유럽 전체로 퍼질 기세다.

어느 시대건 인간은 혼잡과 무질서, 경제적 혼란이 가득할 때

선과 선이 교직하는 세계, 마치 그림 속 네덜란드의 추상화가인 피엣

몬드리안이 그려낸 세계처럼, 격자무늬를 통해 인간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한다.

물론 몬드리안의 구성은 결코 네 가지 색과 검정의 조합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작품들 전체가, 실제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분된 색 공간의 깊이와 양감에 따라.색에

부여한 작가의 의도가 묻어난다.

 

 

몬드리안 <부기우기 Boogi Woogi>

1942-1943. 캔버스에 유채. 127 x 127 cm.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의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했다. 왜 그들은

바둑판처럼 교직하는 세계를 거리에 표현한 것일까? 몬드리안은

문화적 충격을 그림<부기 우기>를 통해 표현했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며

그림 읽어주는 수녀님으로 유명한 웬디는 "그의 그림에선 왠지 모를 도덕적인 정결함이 배어난다" 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선 결코 한쪽의 시선으로 규정될 수 없는 세계가 숨어있다.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뉴욕으로 망명한

작가 몬드리안은 당시 미국 재즈의 선율, 그 중에서도 부기 우기에

빠져들었다. 1920년대 피아노 음악으로 인기를 끌며 블루스와 함께 미국 문화지도에 편입던

부기우기의 세계, 여기엔 즉흥성에 기반해 지금껏 익숙해진 음율의

구조를 파괴시킨 재즈의 정신이 담겨있다.

 

 

사람의 손이 빚어낸 문명은 직선이다.
그러나 본래 자연은 곡선이다. 인생의 길도 곡선이다.
끝이 빤히 내려다보인다면 무슨 살맛이 나겠는가. 모르기때문에

 살맛이 나는 것이다. 이것이 곡선의 묘미이다. 직선은 조급,냉혹,비정함이 특징이지만

곡선은 여유,인정,운치가 속성이다.주어진 싱황안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것.
그것이 곡선의 묘미이다. 때로는 천천히 돌아가기도 하고 어정거리고 길잃고 헤매면서

목적이 아니라 과정을 충실히 깨닫고 사는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

 

법정스님의 『직선과 곡선』에서 인용

 

 

법정스님은 직선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보았다고 말한다.

조급하고 냉혹하고 선을 긋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줄을 긋는 역사

비정함이 서린 직선의 세계를 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올바른 세계를

갖지 못한 건, 무조건 도덕적으로 꼿꼿하게 서야 할 세계를 억지로

구부리고, 죄를 저지르고도, 회피할 구멍만 찾으면서 간결하고

아름다운 직선의 세계를 파괴했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코스튬 내셔널의 작품에서 발견하는 몬드리안적

영감의 원천에서 여전히 불안하기만한 유럽과 그 내부의 위기를

극복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읽는다면 잘못된 것일까? 시절이 하수상하다.

 국회 청문회에선 이제 이명박 대통령과 순장될 마지막 팀을 뽑는다. 각종 범죄가 나열된다.

현 정권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 죄에 대해 관성이 생겼다는 점이다. 직선의 세계를

추구해야 할 법이, 곡선으로 구부려지니, 그 세계 속의 인간은 직선의 옷을

입고라도, 다시 한번 직립의 세계를 꿈꾸는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