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굿 디자인이란 무엇인가-2011 SFAA 신장경 패션쇼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1. 4. 13. 06:00

 

 

부산한 일정을 마치고 컴퓨터에 앉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오늘 아침, 회의를 마치고 부랴부랴 달려간 청담동의 플럭서스 건물. 서울

패션 아티스트 협회(SFAA)의 2011년 F/W 런웨이를 시작하는 첫날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신장경 선생님이 첫 바톤을 넘기는 시간이어서 열심히 달려갔답니다.

원래 현장에서 프레스 발급이 안되는데 이상봉 선생님이 신장경 선생님에게 부탁해주셔서 만들었습니다.

기분좋았습니다. 내일과 모레까지 이어지는 런웨이에 되도록이면 참석할 생각입니다.

진태옥 선생님이 외국전시 때문에 가시는 바람에 요번에 못볼것 같습니다.

 

 

올해 초, <발렌시아가와 스페인>이란 패션 전시를 보면서

패션계의 피카소라 불린 크리스토벌 발렌시아가의 전기와 관련 자료를

찾으며 공부했습니다. 스페인적인 쉬크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죠.

그러나 결국 돌아오는 것은 '장인들은 쓸모없는 장식을 피한다'였습니다.

단아하고 우아한 여인의 매력을 발산시키려면, 인위적인 장식을

피하고 본질로 깊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디자이너 신장경 선생님의 런웨이는 60년대 여성들의 룩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발렌시아가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이것을 테마로 했고 그 기저에는 쉬크의 기준이 될 Minima Maxima,즉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란 철학을

담았습니다. 발렌시아가의 말로 자신의 인스퍼레이션의 바탕을 한자 한자 정리해 놓으셨더군요. "디자이너가 옷을 만들때는 건축가가 되어 설계하고 조각가처럼 형태를 만들고, 화가의 감성으로 색채를 입혀 음악가처럼 조화를 이루고, 철학자의 정신으로 절제의 미를 나타내야 한다.

  Memphis Collective 

Dublin sofa, 1981
Design: Marco Zanini

 

 1981-1987년까지 이탈리아 출신의 에토레 소사 스를 중심으로 9명의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모여 포스트 모던한 느낌의 가구와 직물 디자인, 세라믹 등을 선보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디자인사에선 멤피스 운동이라고 부르는데요. 아르데코와 팝 아트로 부터 영감을 받아 '디자인의 새로운 접근법'을 창조하고 이를 통해 신 국제양식을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옆 사진으로 보시는 작품은 디자이너 마르코 자니니가 만든 소파입니다. 화려한 색감이 유독 눈에 들어오지요.

 이번 신장경 선생님의 F/W 작품 발표의 기저에는 바로 이 멤피스 그룹의 에토레 소사스의 도자기와 이 그룹의 또 다른 일원이었던 일본의 저명한 디자이너 시로 쿠라마타의 작품에서 얻은 색채와 형태에 대한 해석과 영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탄생한 실루엣은 하나같이 미니멀리즘의 세계를

투영하고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결코 문자 의미 그대로의 단순함이

아니지요.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란 고전적 의미의 우아함을 토해내는 강렬한

레드의 세계에 흠뻑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산업 디자이너 디터람스의 '디자인 10계명'을 염두해 둔 듯한

절제의 미가 가미되어 더욱 우아함을 견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디터람스는

전자회사 브라운에서 오랜동안 전자계산기, 커피 메이커, 음향기기 등을 디자인 했죠.

그는 'Good Design'을 위한 10개의 원칙을 세웁니다. 여기에 바로 Not Obstrusive가 있습니다.

바로 절제의 원칙입니다. 사용자가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공간과 여백을 남겨두라는 것이지요.

 

 

이번 디자이너 신장경의 패션쇼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이러한 디자인의 원칙과 영감입니다. 여기에 건축적인

조형의 방식이랄까? 이원적인 형태와 색감을 잘 배합하고 튀지 않게

중심을 잡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집요함이 보입니다.

 

 

육감적인 핑크와 만개한 후크샤 꽃의 자홍색, 바이올렛과 터키블루

초록과 노랑에 이르기까지, 계절을 따스하게 안아낼 색감들이 질펀하게 무대위를

날아다니는 느낌입니다. 색이 너무 고와서 계속 서서 사진을 찍었네요.

 

 

밑에 에토레 소사스가 디자인한 건축물의 색감과 참 많이 닮았죠?

 

 

디터람스의 굿 디자인 원칙중에 Is as little design as possible 이란게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흔히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라고 번역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조금 다릅니다.

그는 적게, 그러나 좀 더 낫게라고 주장하지요. 그만큼 사물의 본질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몰입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만큼 더 순수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결과를 낳을 텐데요. 이번 신장경 선생님의

패션쇼에서 본 옷들이 저는 이러한 단순함과 더 나음의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장이 될수록, 꾸밈음이 없어지고, 순수를 향해 가는 법이지요.

 

 

터키 블루빛깔의 코트가 곱습니다. 그 위로 단 하나의 단추로

포인트를 두었는데 끌리더군요. 더블페이스의 캐쉬미어와 펠트처리한 메리노 울

울 저지와 모피, 바스켓직으로 짠 울을 사용해 성글면서도 단단한 느낌, 여백을 준 옷들이었습니다.

 

 

패션쇼 끝나고 나서 선생님과 다시 인사 드렸고

다음에 기회를 보아 심층 인터뷰를 부탁드리고 왔습니다.

오늘 패션쇼 동선이 트렁크쇼 처럼 협소한 공간에서 이뤄지다 보니

제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오른편에 계신 가수 인순이님이 보이시는 거에요.

끝나고 디자이너와 함께 자리한 멋진 디바의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내일과 모래도 저녁 타임 런웨이는 볼 수

있을거 같네요. 바지런히 움직여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