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2012년 샤넬의 리조트룩을 보다가-엘레강스를 생각하다

패션 큐레이터 2011. 5. 31. 17:04

 

 

프랑스 앙티브에서 열린

2012 샤넬의 크루즈 패션쇼의 이미지를

보고 있다. 디자이나 칼 라거펠트 만큼 샤넬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는 이도 드물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샤넬의 전설도 결국은 해변가를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던가

어부들이 방한을 위해 입었던 터틀넥을 여성복에 원용하고

거친 남성용 저지와 삶에서 조려낸 이미지와 라인을

가져다 표현한 것은 그녀만의 몫이긴 했다.

 

 

노르망디 해변의 북부에 자리잡은 초기

샤넬의 부티크는 당대의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있는

여자들이 편안하게 리조트에서의 삶을 즐기기 위한 일종의

이정표였다. 심플하고, 과다한 장식을 줄인, 네오 프로테스탄트적

윤리를 육화한 옷의 세계였다.

 

 

특히 앙티브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리조트 도시다

세계의 제트셋(개인 제트기를 타고 다니며 호화로운 삶을 누리는

이들)이 선호하는 도시다. 이번 크루즈룩 발표회에는 바네사 파라디, 영국

출신의 모델 스텔라 테넌트도 참석했다. 언젠가 스텔라 테넌트에 대해서도 한번쯤

글을 써볼 생각이다. 예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다가 하이패션계로 뛰어든

그녀의 이력도 재미나지만, 당대 최고의 사진작가인 스티븐 마이젤이

가장 아끼는 모델로, 칼 라거펠트가 샤넬의 새로운 얼굴로

공표한 이미지엔 설명하기 어려운 강인함이 서린다.

 

 

사실상 리조트 웨어는 매우 특화된 의상체계다.

그것은 특정 시즌에 관련없이 1년 내내 입는 옷으로 기획된다.

일명 '크루즈 룩'이라고 불리는 건, 그만큼 크루즈 여행을 하며 시간의

적도를 넘어, 계절의 편차를 극복할 수 있는 여유계층을 위한 옷이란 뜻이기도 하다.

 

 

라스 베가스와 마벨라, 바하마 군도, 팜 비치, 두바이

사우스 아프리카, 태국, 스페인남부의 해안가들, 코스타리카 등

지상의 아름다운 해변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크루즈룩의 세계는 결국

유한계급이 '시간을 바루는' 계층이며, 시간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기에 그 어떤

스타일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는 특별 계층임을 호소한다.

 

 

나는 샤넬의 디자인을 좋아한다.

절제와 응결, 옷의 미감을 드러내는 마지막

선의 아름다움이 나를 사로잡는다. 고전적이라고

칭할 때, 떠오르는 요소들과 더불어,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는 이중적인 줄타기를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라거펠트의 손길이 놀랍다.

 

더욱 감사한 건, 해외의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옛것을 벗고, 새옷을 입는 과정들이 하나같이 자연스럽다는

점이 아닐까? 전설적인 디자이너가 죽어도, 그/그녀의 뒤를 이어

포스트 세대를 이어갈 수 있는 정신적 태도, 사회적 배경과 지원이 부럽다.

앙드레 김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급속도로 추락해가는 브랜드

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우리에게도 뒤를 이어 자신의 '

명성을 지켜내야 할 디자이너들은 꽤 많다. 문제는

포스트 세대를 키워내려는 의지다.

 

 

올 해 목표가 있다면 두 권의 책을 마무리 하고

유럽이나 혹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를

타는 것이다. 25일짜리 크루즈의 비용이 만만치는 않지만, 지금처럼

글독이 온 몸에 퍼진걸 풀어내는 데는 바다의 쪽빛 보다 더 나은 것은 없지 싶어

고민 중이다. 한번 내뱉은 말은 도전을 하는 편이라....실행해야겠지.

이브닝 드레스와 데이 드레스의 경계를 간단하게 넘는

단순하되, 절제된 절개선의 드레스에 눈이 간다.

 

엘레강스란 결국은 절제된 힘의 사용에서

시작된다.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기 감정에

빠지거나, 관객과 시청자들을 자신의 페이스에 말려들도록

고음만 내뱉는 가수들은 임팩트는 있으되, 애잔한 여운을 주지 못하는 건

그런 이유다. 연기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연기는 너무 쉽게

의도가 들통나고 만다. 관객들은 처음엔 그 연기가 잘하는

양 착각하기 쉽지만 이런 약빨은 오래가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에너지, 힘의 양상들은

자연스럽게 표출되기 위해, 항상 웅크림의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옷으로 표현해내는 세상도 그렇다. 무조건

많이 가져다 붙이는 이들이 있다. 온갖 화려한 레이스며 부자재를

덕지 덕지, 하긴 한국의 온라인과 홈쇼핑 고객들의 심리적 프로필을 보면 의외로

이런 상품들이 잘 나가는 걸 보면, 그 면면을 비난하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결국 시간의 시금석을 통과하는 건, 장식이 아닌, 본질의 외재화다.

절제와 정제, 응결의 미, 무엇보다 타인에게 쉴 수 있는

여백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옷도 그렇다.

 

 

칼 라거펠트가 멋진 이유는

그가 단순히 샤넬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면면을 재해석하는 디자이너이기 때문만은 아닐거다.

그는 분명 샤넬의 이름을 빌어, 그녀의 옷에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란

일종의 보톡스 주사를 놓았다. 그러나 이 배후에는 그의 손길을 통해 새롬게

해석될 수 있는 샤넬의 실험성 또한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저 친숙하고

자신에게 잘 알려진 것에 정서적으로 끌린다. 당연하다.

 

그러나 때로는 의심해볼 필요도 있다.

이것만이 최선이냐고.....말이다. 자신의 틀을 매일

매일 깨뜨리며 나갈 수 있는 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가가 아니겠는가.

화가에게 캔버스는 매일 부셔야할 일종의 정신의 형틀이듯, 디자이너의 옷도

가수의 창법도, 연기자의 메소드도, 무용수의 몸도 그렇다. 문제는

우리가 그들의 시연을, 실험정신과 도전을 이해할 만큼'

소양이 마냥 넓지 않다는 걸 거다. 비난하지 말자.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레 조금씩 그 간극이

메워지겠지 하고 기다린다.....

 

실험성에 가미된 절제의 미.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엘레강스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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