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제천 국제음악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연중행사처럼, 영화제에 다녀오기만 하면 후기를 남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넓브러진 청풍호수의 풍광을 껴안는 펜션에 자리를 잡고, 밤을 새워 바비큐 파티를 하고
영화 프로그램 하나씩 살펴보며, 어떤 영화를 골라볼지 고민하고, 영화계 분들과
만나 밤새 한 잔 술에 수다를 떨며,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것.
영화제에 참여하는 진짜 목적이 아닐까 싶네요.
저의 오랜 지인, 신지혜 아나운서입니다. 제 블로그에
가끔 등장하지요. CBS <신지혜의 영화음악>을 13년 넘게 진행하고
있는 베테랑 아나운서입니다. 솔직히 평을 하자면 아나운서란 기존의 개념을 깨고
다양한 영화 평론과 칼럼도 쓰며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전방위 예술인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 끈덕지게 영화음악을 소개하며 버티고 있다는 점이 놀랍지요. 요즘 방송을 들어보면
가요 이외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제3세계 음악이나 소수자들을
위한 음악은 더더욱 어렵지요. 청취환경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건 이 나라의 문화
수준이,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이 여전히 낮다는 걸 의미할 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랜동안 영화음악을 진행하며 영화와 인접 예술
에 대한 애정을 보여온 아나운서의 행보가 고맙습니다.
청풍호수에서 수상스키도 타고 싶었는데
사실 영화제에 참석하면 오전 내내 바쁘게 영화를 보거나
프로그램 참석을 해야 하고 밤에는 영화관계자들과 만나 이야기 하느라
다른 액티비티는 꿈도 꾸지 못합니다. 그래도 좋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
그들에게 듣는 생각과 태도는 항상 저를 되돌아보게 하니까요.
청풍호수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는 시간, 멀리 대교 공사가 진행중입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색깔과 내용이 확실한 페스티벌입니다. 영화를 다루되, 음악을
매개로 하거나 주제로 하는 영화만을 엄선해 관객들과 만나지요. 뮤지컬은 물론 음악가를 소재로한
영화만을 보여주는 <시네 심포니>, 국제경쟁부문으로 음악장편영화를 선정하는 <세계음악영화의 흐름>이
있고 음악 다큐멘터리를 엄선해 보여주는 <뮤직 인 사이트>등 영화 속 음악을, 혹은 음악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영화를 한꺼번에 성찬으로 차려놓는 탓에, 어디로 수저를 갖다놔야 할지
고민할 정도입니다. 저는 구스타프 말러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ECM 레이블의 탄생과 역사를 다룬 다큐를 봤습니다.
영화제의 책임 프로그래머인 전진수님은 영화평론과 더불어
미식가로 소문이 높은데요. 이번 책자에도 보니 이분이 추천한 맛집들이
나와 있더군요. 2년 동안 꽃빵과 탕수육, 자장면을 먹으러 다녔는데 올해는 메뉴를
바꾸어 올뱅이 해장국을 먹었습니다. 올뱅이는 다슬기의 제천 사투리라네요. 깊은 맛이 도는
된장에 시금치와 아욱, 부추를 넣고 한소끔 끓여낸 해장국이 입에 딱딱 맞습니다.
계란옷을 입혀 익힌 후 함께 끓여낸 올뱅이는 쌉싸름한 느낌을 주죠.
밥을 먹고 나서, 영화 <사운드 앤 사일런스>를 봤습니다.
이후 중앙시장 2층에서 벌어지는 문화행사에 갑니다.달빛이 쏟아지는 다방,
이름하여 달빛多방입니다. 영화 관람객들이 사연과 함께 음악을 신청하면 현장에서 틀어줍니다.
매년 그래왔듯 올해도 지혜 누나가 디제이 박스에 앉아 고민녀/남들의 신청사연을
듣고 음악을 골라줍니다. 중앙시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릴 수 밖에요.
작년에는 사진만 찍느라 제대로 안 읽었는데
올해는 저도 줄에 매달아 놓은 사람들의 사연을 찬찬히 읽었습니다.
가요를 워낙 듣지 않다 보니, 솔직히 요즘은 가수 이름이나
노래제목만 들어서는 잘 몰랐던게 사실인데요. 이 분 사연 때문에 인피니티란
가수들을 알게 되었네요. 음악도 찾아서 들었습니다. 커플들이 영화제를 찾다보니, 싱글로
오셔서 약간 '불쾌지수'가 올라갔다고 하시네요. 음악 듣고 캄 다운 하시길.
한쪽에선 사람들의 표정을 캐리커처로 잡아 그려주는 코너가 있고
또 한쪽에선 요즘 유행하는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왼편에 허약체질이란 표시의 옷을 입으신 분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힘이 아주 대단하시더라구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통해 우리에게 소개된 작품들이
꽤 많습니다. 그 중에서 꼭 뽑으라면 영화 <원스>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래서인지 중앙시장 2층 입구에 페인팅으로 원스의 장면을 그려놨더라구요.
중앙시장 내 비록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챙겨놓은 풍경들을
보면서 영화제가 꼭 시끌벅쩍하고 화려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중요한 건 영화제 내의 컨텐츠를 즐기려는 우리들의 열망이지요. 아비뇽이란 작은 도시를
연극을 통해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었지만, 정작 중요한 건 이들이 언제든 연극이란
장르를 즐겁게 소화하고 향유하려는 감성을 가진 이들이란 점이 중요하니까요.
또 한쪽에선 영화제 타투를 해주었던 모양인지
함께 영화제에 참여했던 김효정 프로듀서와 심현정 음악감독님
두분 모두 타투를 하고 한컷. 참고로 김효정 피디는 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영화 프로듀서입니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란 영화를 기억하신다면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을 꼭 기억해두시길요. 오른쪽의 심현정 감독님은 <올드보이>와 <아저씨>의 영화 음악을
맡아 대한민국 영화대상 음악상을 수상한 발군의 작곡가이기도 하죠. 재미있는 건 그녀가 맡았던 영화들이
매우 수컷냄새가 강하게 나는 남성영화들이지만, 정작 감독님 자신은 매우 여성적이고 수줍음도 많이 타시고 그래요.
감독님이 진행하셨던 영화음악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듣지 못해 조금 아쉽습니다. 음향효과와 대사와 더불어
영화 내 소리요소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영화음악입니다. 음악은 단순하게 배경으로 존재하기 보다
극의 감성과 배우의 감정, 사건의 진행을 돕고 끌고가고, 때로는 추돌하는 힘을 가지고 있죠.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영화 속 음악의 이러한 매력에 눈뜨게 해준 영화제입니다.
작은 도시 제천, 그러나 그곳에서 7년째 꿋꿋하게
음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제천 국제음악영화제.
올해도 멋진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영화제를 한번 다녀가면, 또 다시 열심히 봐야 할 영화목록들이 늘어납니다.
16일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 또 이후엔 <챔프> 등이 자리를 하는군요. 샤넬을 다룬
영화는 근대 모더니즘 패션의 탄생에서 음악과 패션의 영향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제 흥미를 끕니다. 또한 <챔프>는 제가 좋아하는 프로듀서
형님이 만드신 영화라서 기대되고요. 하나씩 살펴봐야지요.
영화는 언제나 저의 즐거운 비타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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