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맨해튼을 돌아다니는 시간, 바둑판처럼 잘 구획된
거리지만, 각 블럭마다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뉴욕은 마치 다양한 빛깔의
모자이크를 붙여놓은 캔버스 같습니다. 패션쇼핑을 위해 들른 명품점과 백화점 쇼 윈도우
사이로 디스플레이된 사물들의 배열을 보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그만큼 디스플레이가 요식행위가 아닌
패션의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임을 보여주는 멋진 진열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소맥분을 뿌리고
그 위에 과자와 하이힐을 동시에 위치시킨 센스에 감탄하고 맙니다. 그만큼 일상에서
쉽게 소비되는 과자처럼, 여인의 힐도 가벼운 마음으로 소비하란 뜻이겠죠.
부산한 뉴욕의 거리를 걷다보면, 진회색 건물들이 대부분인
이 곳에서 바둑판 같은 질서의 장에 꽤나 재미있는 풍경의 방점을 찍는
뉴욕의 노란색 택시들, 마치 비등점에서 끓어오르는 물처럼, 어디론가 달려가는
택시들의 모습도 앙징맞기만 합니다. 그래도 보행자 중심 도시여서 한국
과는 판이하게 다르죠. 외국 어디에도 차가 인간보다 중심이 되는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만 이 모양인거죠.
폭염 주의보가 내린 뉴욕은 어제밤, 잘 익은 밤(夜)을 뚫고
신산한 아침을 맞았습니다. 폭우와 햇살이 번갈아 가며 도시의 푸른 포도를
적시고 말리고를 반복할 때, 여행자의 발걸음은 초록빛으로 덮힌 작은 도시의 포장막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뉴욕의 한복판의 허파꽈리처럼 두 개의 속살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센트럴파크로 들어가지요.
센트럴 파크에서 본 촬영팀 모습입니다.
미드인지 영화인지는 알수 없으나 촬영팀 구성방식이나
규모를 봐선 드라마팀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눈에 익숙한 아리플렉스
조명기와 촬영장비들, 조명 반사판과 의자에 앉아 개별 씬들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스크립터까지, 아침시간의 센트럴 파크는 촬영으로 분주합니다.
배우들의 진지한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뉴욕이란 도시가 워낙 영화산업과 밀접하다보니
이런 모습들을 조우하게 되는 건 평범한 풍경인지도 모르겠네요.
뉴욕에서 48년을 사신 분을 따라 여행을 하다보니, 한국에선 참 애를 써야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음향녹음기를 들고 있는 스테프의 하늘색 반바지가 눈에 들어오는데요.
아주 편안해 보입니다. 야외촬영에 사용하는 녹음기는 주변음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카메라로 담을 때는 절대로 셔터 소리가 들리게 하면 안됩니다.
산딸나무와 개능금나무가 활짝 속대궁을 열어
열매를 환하게 피워놓은 숲 사이로, 사람들이 망중한을 취하는
모습은 그저 보는 것 만으로도, 긴 도보의 시간을 감내하며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여행자의 마음을 가볍게 합니다.
센트럴 파크의 곳곳을 돌아봅니다. 이곳을 들른 것도 처음은 아니지만
올때마다 새롭습니다. 빗물을 머금은 연초록 풀밭 사이를 건너, 작은 언덕을 넘어 호수가로
가서 앉습니다. 도시의 연한 회갈색과 베이지색 실루엣과 초록이 만나는 분수대를 건너 즐비하게 놓여진
작은 벤치위에 몸을 담고 쉽니다. 하늘도 물도 땅도 한가합니다. 편안한 시야 속에 잡힌
공원의 풍경은 안온하지요. 그 위에서 미니 요트를 띄우고 조정하며 놀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도 유심히 살펴봅니다. 도시의 허파가 되어 경쟁에 지친
뉴요커들의 가슴을 메워주는 이곳이 갑자기 부럽습니다. 공원
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서울과 비교되는 지점이지요.
허드슨 강을 따라 놓여진 미술관에 들르고 가방 한 가득
도록과 자료를 사 오는 길, 엄마의 유방 같은 낮고 둥근 건물대신
강가를 따라 즐비하게 놓여진 도시의 빌딩들을 살펴봅니다. 어느 시인은 높게
치솟은 뉴욕의 스카이스크래퍼를 가리켜 오만하다고 했다지만, 이건 틀린 말입니다.
뉴욕의 빌딩들을 자세히 보면 적어도 한국처럼 몰개성의 덩어리처럼
공간을 점유하진 않습니다. 빌딩 양식과 실루엣은 그
어디보다도 개성이 있고, 각자 놓여있으되
서로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말끝마다 디자인 서울을 외치시는 시장님께 보여드리고 싶은
뉴욕의 풍경이죠. 무엇보다 도시의 직선을 완화시키는 허드든 강의 유장함도
한몫을 합니다. 곡선의 음율을 토하진 않더라도, 공원내부로 연결된 작은 호수들에선 자그마한
곡선의 아름다움들이 보입니다. 도시미관의 계획이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선거에 나와서 '서울을 아시아의 뉴욕으로' 이따위 소리는 하지 않길 바랍니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은 '먼 곳의 어떤 타인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미감'으로 포장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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