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간의 뉴욕 여행, 사실 여행이라기 보다는 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죠. 뉴욕이란 세계 최고의
문화 허브에서, 한국의 작가들을 어떻게 소개시킬 수 있을까? 물론 이런 질문은
진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해외에 진출하는 작가들이 부지기수인 요즘, 이런 질문이
그렇게 큰 파급력을 갖지는 않습니다. 다만 장르의 문제입니다. 저는 공예와 패션이란
영역의 전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 해외전시의 경향을 보면 전통 수공예
와 패션의 결합, 혹은 모던 크라프트를 다양한 영역과 결합해서 새로운
결과물을 내어놓고 진지하게 과거와 현재와의 연결성을 묻는
전시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패션도 그렇고요.
뉴욕은 오감을 충족시키는 도시입니다. 그 중에서도 맨해튼에는
세계적인 미술관과 갤러리가 밀집해있죠. 하나하나 풀어가겠습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어찌되었든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회고전을 연구하기
위해서였고, 이를 위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여러번 들락거려야 했습니다. 이외에도 휘트니와
모마, 첼시의 다양한 갤러리들을 마실다니며 오랜동안 글방에서 쳐박혀, 미술작품들을
보러다니지 않아 느슨해진 시신경에 근력과 긴장을 심어놓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한국이 낳은 거장 이우환의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을 가보신 분이 많겠지만
컬렉터이자 설립자인 페기 구겐하임의 소장품보단, 미술관의 건축물과 외양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죠. 이런 마음을 조금만 접고 전시의 실제를 경험해 보는것도
좋습니다. 또아리를 튼 채 나선형의 원환을 그리는 회랑을 따라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조용히 따라가 봅니다
안내 오디오를 귀에 꽂고 회랑 복도를 따라
조용히, 묵직하게 공간을 점유하는 사물들과 그림을 바라봅니다.
작품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기도 하죠. 과연 이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내심 추정도 해보고 말이에요.
전시회의 제목은 Marking Infinity 입니다. 번역하면
무한의 순간에 방점을 찍다, 정도가 무난하지 않을가 싶은데요.
예술가인 동시에 철학자, 조각가, 화가, 작가로서 이우환의 첫 미국 회고전은
뉴욕의 미술시장에도 잔잔한 파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지난 40여년 간 한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전시가 된 터라, 새로울 것도 없겠지만 이번 뉴욕 전시를 통해 이우환을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역사적인 인물로 그 위상을 새롭게 높이는 데는 효과적이었을테니까요.
흔히 이 분 작품의 성격을 포스트 미니멀리즘(Post Minimalism)이라 불리는 영역으로
분류합니다. 미니멀리즘이란 건 다른 게 아니라, 다른 장식적인 요소들을 다 배제
한체, 사물의 본질을 이루는 것들을 조합, 개념으로 포장해내는 것이죠.
2년 연속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에서도 이우환의 특별전이
있었기에, 저 스스로 도슨트로 활동하면서 이 분의 그림과 작업을
살펴봤다고 했지만, 이번 전시에는 새로운 설치작업들이 등장해서 눈이
행복했습니다. 90년 이후로 현재까지 90여점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만남'이란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였습니다.
작가 이우환은 1936년에 출생, 한국전쟁의 참상 속에, 195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니혼 대학에서
철학사 학위를 마친 이후 현상학과 구조주의를 깊게 공부하지요. 그는 현대 미술사에서
'모노하'라 불리는 미술운동의 주요 이론가이자 작가입니다. 반 형식적이고 질료 기반의 예술운동인데,
1968년에서 71년 사이 그가 출판한 주요 저작들을 중심으로 동경에서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는 근대미술의 폐쇄적인
목적에 반기를 들고, 관계지향적인 구조, 공간 내부를 채우고 있는 힘의 역학을 표현할 수 있는 형태를 찾기
시작합니다. 사물과 인간과의 관계, 그 관계맺음을 통해 지금껏 보지 못했던 '발가벗겨진' 우리 속의
모순과 실존을 살피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작업으로 표현된 사물과 이를 바라보는 관객,
그 사이에 철학적인 입장이 발생할 수 있도록, '비가시적인'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이를 통해 '영원성'을 희구하는 존재로 살아가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그의 만남은 철학적으로 해명되어야 하는 믿음입니다.
그에게 만남은, 사물과의 대면, 혹은 우연한 만남을 포함합니다.
흔히 조우란 단어를 쓰지요. Encounter. 라틴어로 풀어내면 본다는 뜻의 En과
사물 혹은 타자의 이면을 거슬러 읽어낸다는 뜻의 Against가 결합된 말입니다. 누군가의 만남은
이렇게 앞으로 보여진 외양과 더불어 그 이면의 서늘함과 만날 때, 진정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라고 옛 사람들도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점으로 시작해, 선으로, 면으로
인간세계를 단순한 도형으로 환원하려는
추상의 힘은 그의 작품 속에 온전히 드러납니다
모노(물질)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통해 사물과 공간, 위치, 상황, 관계 등에
접근하는 예술을 뜻하는 것으로, 이우환은 1969년 비주츠(美術) 출판사가 주최한 예술평론상에서
’사물에서 존재로’라는 평론이 입상하면서 모노하 작가들의 대변자로 떠오르며 촉발된 운동이었습니다. 모노하에
대한 재평가와 더불어 최근 그가 쓴 이론서들이 번역되면서 국내에서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우리는 그를 만나는 순간의 기억을 통해, 그에 대한 실루엣을 그립니다.
결국 만남이란 것도, 어디에서 만나는가, 어떤 계기로 만나는 가, 그와 나눈 것들과
함께 먹었던 것들, 그에게 들었던 이야기의 의미들, 이 모든 것이 합쳐서
그와 나의 만남의 질을, 그 순간의 경험을 그리게 되지요.
문화적 자산을 구축하는 사회와, 잊는 사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최근 우리 사회 곧곧에서 '창의성'에 대한 논의가 한창입니다. 본질에서 부터
방법론까지 열심히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쉽게 일상과 직무에서 창의성을 풀어가기 위해
정부나 관련 예산을 집행하는 단체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개인예산을 통해 꿈을 이뤄보려고 저도 부산하게 뛰는 것이고요.
한국작가들이 뉴욕에 자주 진출하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9월 초에도 한국작가들의 전시가 뉴욕에서 열릴 겁니다. 11월에는
엄선된 작가들이 나가게 되죠. 기대됩니다. 그때는 저도 함께 그들과 있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서구의 시선, 이젠 그들도 우릴 인지한다는 것. 이제 중요한
것은 그들과의 만남에서 '우리의 여지껏 보지 못한 멋진 측면'들을 어떻게
전달할까가 관건이겠죠. 그것이야 말로 조우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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