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부터 일요일까지 3일에 걸쳐
충북 제천에서 열리고 있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16일까지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참가한지도
횟수로 3년이 넘습니다. 꼬박 이때가 되면 여름휴가를 내어 영화제 집행위원인
신지혜 아나운서의 차를 타고 제천에 내려갔었습니다. 해를 거듭할 수록
음악을 테마로 한 영화들을 보는 즐거움과 작품의 품질이
올라가는 좋은 현상과 조우합니다.
토요일 밤, 거리의 악사 공연에 앞서 제천 의림지
산책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매우 특화된
성격의 영화제입니다. 말 그대로 음악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모아 상영합니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갖고 떠나는 여행객에겐 많은 생각의 거리를 줄 것이고,
좋아하는 악사에 대한 이야기, 연주자에 관해, 국내에서 보기 힘든 다큐멘터리도
볼 수 있지요. 저는 이번엔 사운드 앤 사일런스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ECM이란 음반 레이블을 기억하는 분들에게, 음과 소음의 경계를
따라 여행을 떠나는 한 남자의 로드 무비가 펼쳐지지요.
의림지에서 해마다 영화제를 위해 펼쳐지는 거리의 악사 공연은
국내 신인 가수들과 밴드를 선정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일등 팀에겐 음악제작의
기회를 부여하지요. 3년전 이곳에서 해금주자인 꽃별이 연주하는 영화 속 OST에 흠뻑 젖은
이후로 거리의 악사는 빼놓지 않고 보러갑니다.
거리의 악사 공연이 펼쳐지는 의림지는
충북 제천시 모산동 소나무 숲 사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북의 김제 벽골제와 충남 당진에 있는 합덕제와 더불어 3대 고대 수리시설로
꼽히지요. 위의 두 저수지는 그 기능을 멈추었지만 의림지는 면적 15만1470㎡, 수심 8~13m,
저수량 500만~600만㎥를 유지하며 제천 청전뜰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고 있답니다.
가족 단위로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와 분수, 주변의 풍족한 소나무 군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소나무 숲 사이로 퍼지는 향이 좋습니다.
영화제를 갈 때마다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지나온 일들을 추회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비록 연중행사처럼 1년에 한번 겨우 만나는 만남의 깊이
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얄팍하지 않은 것은, 영화란 공통 분모의 옷을 입고 있는
이들의 만남이기 때문일겁니다. 안미라 부위원장님과 인사를 나누었고
저녁이 되면 횟집으로 가서 한잔 술을 기울이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플럭서스 김병찬 대표님의
이야기가 유독 귓가에 가물거립니다.
"음악과 연예가 구분되지 않는 나라는 저개발국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배우들은 종종 밴드를 구성
활동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별로 없지요. 마돈나가
세계적인 가수이지만, 배우로서는 그다지 성공한 적이 없고 흥행참패를 경험했다는 건 여러분도
잘 알겁니다. 하지만 이 공식이 깨지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지요. 말이 가수지, 가수활동보다
연예 프로그램에 나오고, 연예코드를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로 가수의 실력을
평가하는 나라, 이 나라는 분명 저개발 국가가 맞습니다.
연예 이야기와 연애인 이야기가 판을 치고
모든 것을 이야기할 때도 연예코드를 빌어서 발화해야 하는
이 나라는 분명 저개발국가가 많습니다. 시청자들의 영혼과 내면이 여전히
개발되지 않은, 미답의 땅이기도 하죠. 그만큼 우리의 삶이 진지한 영역을 생각하기엔
너무 거칠고 버거우며 힘들기 때문일겁니다. 종교 권력이 판을 치는 것도
이러한 우리들의 삶의 척박함에 기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척박함을 뒤로 하고 우리에게 음악에 대한 질문을, 성찰을
던지는 영화제의 성격이, 모습이 저는 좋습니다. 어느 사회나 방법론의
시대가 끝나면, 그때부터는 존재론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왜 옷을
만드는 지, 왜 옷을 입는지, 뒤바꿔 왜 영화를 보는지, 영화 속 음악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성격의 성찰들이 우리 일상의 배면에 깊게 깔리기
시작할 때, 그때 비로소 진정성에 대한 탐색도, 질문과 답도 이뤄지겠죠.
그런 의미에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의미는 상당히 크다고 봅니다.
내년에도 또 가야겠습니다.
'Life & Travel > 해를 등지고 놀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욕 센트럴파크에서의 단상 (0) | 2011.08.16 |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출정기-소도시를 즐기는 방법 (0) | 2011.08.15 |
뉴욕의 첼시마켓, 유태인이 예술을 상업에 이용하는 법 (0) | 2011.08.15 |
구겐하임에서 만난 이우환 전시-한국미술, 뉴욕을 강타하다 (0) | 2011.08.12 |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고향-잘쯔 부르크에서 (0) | 2011.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