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뉴욕 여행 중 인상 깊었던 미술관 기행은
바로 프릭 컬렉션에 대한 기억입니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쓰면서
이곳 미술관에 소장된 영국작가들의 작품들, 신고전주의 앵그르의 작품들을 많이 썼습니다.
그 만큼 제겐 친숙한 작품들이 많은 곳이고 책의 근간을 이루는 작품들이 소장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미술관이기도 했죠.
이곳은 미국의 철강산업과 금융업을 주물렀던 헨리 클레이 프릭이
평생을 통해 수집한 예술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에 들어서 공익기관으로 탈바꿈 시키기 위해
용도변경을 해서 오늘날 이르렀지요. 1935년 12월 16일 지금의
프릭 컬렉션 미술관은 문을 열게 됩니다. 소규모의 미술관이지만 미술사의
거장들 , 그 중에서도 로코코의 거장들의 그림이 많다보니 제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뉴욕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란 대형 미술관이 있습니다만, 솔직히
알렉산더 맥퀸전을 보러가면서 너무 오랜 시간 줄을 서는데
시간을 보내어서 인지, 이번 프릭 컬렉션에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그림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 더욱
감미롭게 느껴진게 사실입니다.
회화 작품외에도 유럽의 거장들이 만든 조각과 도자기 등
다양한 작품들이 백만장자의 집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습니다.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가구들과 리모주 지역에서 만들어진 칠기, 동양의 깔개 등, 다양한
작품들이 백만장자였던 그의 삶과 더불어 함깨 했을 흔적들을 보여주기에,
단순하게 미술관이라고 하기엔 정교한 인테리어의 일부로서,
미술이 어떻게 자리하는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위의 그림 두 편은 프랑수아 부셰의 그림입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사계절을 담은 것이죠. 프랑수아 부셰는
프라고나르와 함께 로코코 미술의 거장입니다. 로코코 시대의 패션에 관심이
많다보니 이 시대는 항상 관심사였고, 그들의 향장과 패션, 스타일에 자연스레 눈이 갔습니다.
하나같이 발그스레한 볼 터치에 백분을 뿌려 하얗게 만든 머리칼. 로코코 시대의
대표적인 외양이었지요. 여기에 중국풍의 영향으로 단아하고 섬세한
색조화장까지 곁들였답니다. 양치기 모자를 한 남자의 모습은
당시 목가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그리기 좋아했던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제가 갔을 때, 마리 앙투아네트 시대의 터키풍 유행과
패션에 대해서 간략한 전시가 있었는데요. 사진을 찍을 수도 없거니와, 자료가
많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아라 튀르크, 터키풍의 패턴과 무늬, 다양한 인테리어 장식들이
당시에 새로운 유행의 대안으로 떠올랐다는 사실입니다. 터키는 항상 유럽인들에게
동방의 나라였고, 그 무늬며 형상들은 그들에게 환상을 심어주었죠.
프릭 컬렉션에서 가장 반가왔던 작품입니다.
바로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사랑의 과정>입니다.
4편으로 연결되어 있는 연작인데요. 연작으로 이어지면서 일종의
이야기 구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에요. 18세기 목가적 사랑의 연예의 풍속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특히 18세기는 그 어느때보다 자연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지요.
장 자크 루소의 영향 때문이었는데요. 파리의 귀족과 신흥부르주아지들은 산책을 즐기고 정원을
가꾸었으며 파리 근교에 별장을 지어 시골에서 사는 삶의 기쁨을 누리려고 했지요.
원래 이 작품은 사랑의 과정이라기 보다는 사랑의
4가지 단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연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랑의
여러 단계들을 순차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구애>와<만남><화관쓰는 연인>과
<연애편지>가 대칭을 이루면서 사랑의 초기 단계와 사랑이 완성된 이후의
단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농밀한 순간을 표현한
이 그림 속에서 중세시절 볼 수 있었던 육적인 사랑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들을 찾아볼 수가 없지요.
사랑의 감각적 즐거움과 흥분, 에로틱한 흥분은
당시 문학 예술 분야에서 자유롭게 표현되었고, 육체적인
만족이 인간의 균형잡힌 삶을 위해 변호되었다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릭도 이러한 로코코 시대의 자연에 대한 이해를 자신의 정원에
옮기고 싶었을까요? 뒷뜰에 단아하게 내린 햇살이
고운 정원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연을 피우는 시간, 사면의 벽 사이에 작은 인공정원 같은 느낌의
연못과 초록빛을 토해해는 촘촘한 나무들은 마치 18세기 정원의 양식이었던
픽쳐레스크 가든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대부호들의 집을 거니는 시간, 질투보다는 부러움과 더불어
자신의 재산을 털어, 왜 그들은 하나같이 예술과 문화를 후원하고 지키려고
했는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문화사업에 투자하고 있지만 지금껏
미술시장에서 그들의 역할은 때론 어두운 측면들을 자주 보여왔습니다. 재산증식의 수단이나
편법 증여의 수단이 되거나, 혹은 돈세탁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그림 수집이 이용되어왔다는 점 반드시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서구에선 예술의 후원이 그들을 사회적으로 상류층으로
끌어올리는 기능을 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역할이 마냥
폄하되는 것도 아닙니다. 컬렉터가 된 부호들을 통해 마스터들의 그림이
후세까지 편안하게 남아 우리들은 그들을 통해 그림을
볼 수 있고 읽어볼 수 있으니까요.
오늘 소개한 프릭 컬렉션이 미국 동부의 개인 부호의 소장품들을
보여준다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산 시메온에는 세계적인 언론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모은 허스트 컬렉션이 있습니다. 허스트는 지금도 강력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언론 그룹이고요. 중앙일보가 여기와 연관을 맺고 있지요. 허스트는
오손웰즈의 영화 <시민케인>의 주인공이기도 했는데요. 중요한 것은 컬렉팅을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입니다. 그들이 단순히 부를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술품을 사모았던
것이 아니란 것과 이것을 후세를 위해 공적 기관으로 돌려서, 사회에 환원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우리 세대의 부자들에게 필요한
문화적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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