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이혼을 꿈꾸는 당신을 위한 그림

패션 큐레이터 2011. 6. 27. 06:07

 

잭 베트리아노 <노래하는 집사> 1992년, 개인소장

 

메아리가 지나간 자리......사랑에도 메아리가 있다면

 

태풍 메아리가 지나갔다는 소식에 가슴 한 구석, 가슴을 쓸어담습니다. 더 이상의 비 피해가 없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열기에 지친 도시의 포도 위로 세차게 내린 우기의 광폭한 행보에, 많은 것들을 잃고 상심하고 슬퍼하는 한 주입니다. 영어로 메아리를 Echo라고 하지요. 그리스 신화에서 에코는 산 위에 사는 요정이었습니다. 예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제우스의 아내였던 헤라를 마치 천일야화의 스릴처럼, 다양한 이야기로 사로잡았죠. 하지만 남편인 바람둥이 제우스는 에코가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황홀한 시간을 틈타, 다른 님프들과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광분한 헤라는 에코에게서 목소리를 빼았습니다. 에코에게 허락된 것은 타인의 목소리를 따라 하는 것만을 허락했지요.

 

 

잭 베트리아노 <은밀한 시간의 흔적> 1994년, 개인소장

 

에코의 의미를 생각하며 오늘 고른 화가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화가 잭 베트리아노입니다. 스코틀랜드 동북부의 작은 해안도시 메틸에서 1951년, 출생한 그는 광산기술자로 오랜 동안 살았습니다. 7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미술을 시작합니다. 여자친구의 21살 생일선물로 그려준 수 장의 수채화가 알려지면서 화가로 전업하게 되지요. 그의 그림은 90년대 초반 많은 갤러리와 화상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마치 60년대 필름 느와르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추억을 되살리거나, 로맨틱한 연인들의 모습을 포스터나 엽서 이미지로 사용하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잭 베트리아노 <사랑의 종류> 캔버스에 유채, 1998년

 

제가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친밀감의 순간들이 잘 베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실연, 그 두 개의 천칭위에서 섬세하게 흐르는 힘의 기운이랄까요? 그의 그림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토해내면서, 지금도 여전히 6자리 숫자의 그림가격대를 자랑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1999년 11월, 베트리아노의 작품은 처음으로 뉴욕에서 선보일 기회를 얻습니다. 세계적인 아트 페어인 아모리쇼에서 그가 그린 21장의 유화작품이 첫선을 보였는데 오프닝 첫날, 영국의 컬렉터들이 한번에 이 21장의 그림들을 다 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저는 그가 그린 98년작 <사랑의 종류>를 참 좋아합니다. 요즘처럼 사랑에도 등급이 매겨지고,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순위에 따라, 자신의 경제적 부에 따라 '만남의 지속성'이 확보되는 정도가 더욱 거세진 시대, 그가 골라야 할 사랑의 종류는 마네킨이 입은 옷의 성격을 따라 가는 것만 같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배우는 것 중에 하나가, 인간이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일 겁니다. 분명 20대와 30대, 그리고 드디어 마흔이 된 지금, 사람을 사랑하는 기준과 선별하는 방식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오늘 <나는 가수다>의 중간평가에 옥주현이 부른 조장혁의 LOVE를 들어봅니다. 음율은 좋아하는데 가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중가요 속 사랑의 코드는 항상 '지나친 그리움'과 '너를 닮아감'을 사랑의 문법처럼 내세웁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랑은 격한 그리움이 아닌, 적절한 거리두기와 긴장감, 닮아감 대신 차이를 이해해가는 과정입니다.

 

저는 요즘 음악프로에서 보여지는 멘토링의 방식을 보면서, 그 사람의 사랑의 무늬가 어떨까 추정해 볼 때가 있습니다. 가수를 키워낼 때, 자신의 스타일을 답습하도록, 자신을 따르도록 만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멘토가 아닙니다. 멘토는 길의 방향을 설정할 수는 있어도, 길을 걷기 위해 신어야 할 신발의 속성까지 정할 권리는 없습니다. 

 

우리의 사랑과 결혼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저는 남자들에게 툭하면 '여자말 들어서 손해볼 것 없다'며 큰 소리 치는 여자들을 싫어합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 후 그렇게 지속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타인의 생각까지 자신의 빛깔에 맞추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들은 저는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혼도장을 찍고 싶다는 결혼 10년차 친구의 전화였습니다.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이혼 사유에 일번으로 등장하는 '성격차이'란 말. 저는 이 표현을 딱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르고 결혼했습니까? 라고 물어봅니다. 돌아오는 건 하나같이 구구절절이 '변화될 줄 알았다'는 자신의 꺽인 기대일 뿐입니다. 우리시대의 사랑의 장수비결은 '기대'를 자연스러운 차이로 변환하는 속도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 이혼 합의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 저 가을산에 한번 올라봐야지요 / 산자락을 걸으면 / 여기저기 우수수 우수수 / 이별하는 소리와 / 그 은밀한 소리를 앞서는 / 가벼운 몸짓들 / 이별이 저런 것이라면 / 우리는 기꺼이 도장을 찍어야지요 /진초록 생기를 다 바치고 / 바짝 마른 몸매에 / 내장조차 비워낸 / 저 투명한 낙엽이 되기까지 / 우린 아직 아닙니다.

유상철의 <이혼합의서> 전편

 

 

잭 베트리아노 <사랑하는 마지막 날까지 춤을 추어라>

 

예전에는 발레를 배우면서도 항상 독무를 꿈꾸었습니다. 무대에서 동선을 그리는 주체는 항상 내가 우선이 되던 세상이지요. 노래도 춤도, 글도 그랬습니다. 모든 만남에서 친구들의 충고처럼 저는 제 자신을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흔적은 여전하고요. 지금은 춤을 출 때, 종종 모임에 나가 살사를 추기도 합니다만, 이인무의 경우엔 호흡이 가장 중요합니다. 서로 죽이 잘 맞는다란 표현을 영어로 Be on the same wavelength라고 합니다. 같은 파장 위에 서 있다고 하지요. 서로에게 떨림의 주파수가 같은 사람. 춤을 추면서 이런 분을 만나면 참 즐겁습니다. 춤을 출 상대를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바로 지금, 당신의 옆에 있는 사람과 바로 춤을 추세요.


 

지금은 비록 우리가 우기의 습한 사랑, 그 꿉꿉하고 불쾌한 흔적들이 여기 저기 박히는 사랑의 생채기에 아플지라도, 그 사랑의 자리에 환한 햇살이 스며드는 날이 올겁니다. 그때는 환한 파라솔을 우산 대신 준비하면 될 일입니다. 행복한 한주를 맞이하세요. 저는 매우 부산한 한 주가 될 것 같습니다. 방송준비도 열심히 해야겠어요. 텔레비전에 이쁜 얼굴로 나오는 절 보고 싶거든요. 조장혁의 LOVE 띄웁니다. 따스한 알레그로로 흐르는 사랑의 기억만 가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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