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그녀가 돼지와 함께 나체사진을 찍은 이유

패션 큐레이터 2011. 4. 6. 06:00

 

 
김미루_MO 1_디지털 C 프린트_76.2×114.3cm_2010

흔히 살아가면서 계급장 떼고 얘기하자는 말을 종종 한다. 언어로 소통하면서, 사실 대화가 안되는 경우가 많은 건, 실제 언어를 빌려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고 믿을 뿐, 우리들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들, 가령 성차나 물질적 조건,인종, 자라온 성장 배경, 이 모든 것들이 대화 속에 일종의 노이즈로 참여하기 때문일거다. 규정된 조직 내에서 수평적 의사소통이란 애시당초 어렵다. 인간은 어떻게 대화란 행위에 참여할 수 있을까? 작가 김미루는 여기에 대해 답한다. '벗으면 단순해지고 모두가 하나가 된다'라고. 그러나 이 말을 단순무지하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이러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 데는 수없이 많은 이유들이 존재할테니 말이다.

 

최근 한국사회는 엄청난 홍역을 치뤘다. 구제역에 의한 가축들의 대량 학살이었다. 그냥 산 채로 파묻었다. 그 피의 복수는 이제 서서히 시작되어 침출수가 되어 흐르고 있다. 피의 복수는 당연하다. 미국 에스콰이어 지가 현대미술 최고의 유망주 36인으로 뽑은 사진작가 김미루는 이번, 돼지들과 함께 화끈하게 누웠다. 장소는 미국의 동북부 아이오와주, 미주리 주의 기업형 양돈장이다. 배설물이 흥건히 묻어나오는 악취나는 곳에서 그녀는 옷을 벗었다.

 
김미루_Composition 1_디지털 C 프린트_190.5×127cm_2010

그녀의 ‘돼지, 고로 나는 존재한다(The Pig That Therefore I Am)’는 그의 두 번째 셀프-누드 사진 프로젝트다. 의예과에 다니던 시절, 해부학 수업에서 돼지태아를 해부하며 인간의 신체가 돼지의 것과 닮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온 몸으로 벗고 생의 누추한 공간에서 돼지들과 함께 누운 그녀의 나신은, 에로틱하기 보다, 피의 학살 속에 죽어간 그들이, 우리와 동형이라는 야릇한 상처와 아픔을 느끼게 한다. 사실 이번 구제역 파동 때, 수많은 돼지들을 살처분 한것도 그 잘나빠진 정부가 '구제역 청정국'이란 딱지 하나를 지키려고 자행한 학살이 아니던가? 그래서 결국 얻은 것은? 청정국 지위도 박탈당하고 수없이 많은 돼지와 소들을 죽여야 했다. 축산농가들은 문을 닫았고, 정부는 모른체한다. 기사들을 검색해보라. 얼마나 철저하게 이 문제를 쉬쉬하며 덮고 있는지.

 
김미루_IA 1_디지털 C 프린트_101.6×152.4cm_2010

작가는 냄새나는 곳에서 촬영하느라, 촬영 후엔 온 몸에 식초와 과산화수소수, 치약까지 발랐지만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단다. 되돌아보면 우리가 죽인, 살처분한 수만의 돼지들도 땅 속에서 그냥 죽어가지 않을거 같다. 식용을 위해 집단으로, 좁고 누추한 곳에 갖혀 살아낸 것도 서러울 텐데, 처참하게 죽어가야 했으니, 그들에게도 불교적 윤회의 법칙이 통용된다면, 복수를 꿈꾸지 않을까? 구제역의 창궐과 정부의 무대책을 논하기 전, 인간의 식탐을 위해, 욕망의 오브제로 키워져 죽어가는 동물들보다, 과연 인간이 뭐가 그리 나은 것인지. 인간이란 주체가 도대체 무슨 권리로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신은 인간을 분명 자연과 함께 공존하고 그들을 육성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많은 이들이 성경 속 자연을 지배하라는 표현을 말 그대로 지배(Dominion)으로 받아들인 탓이다. 신이 인간에게 준 사명은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며 그들의 씨앗을 생육 번성케 하는 데 있었다. 그녀의 벗은 몸 앞에서, 나는 진저리친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너무 지나칠 정도로 육식을 좋아했던 한 때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녀의 사진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동물들의 피울음 소리를 듣는다. 

김미루_Bodies (1A)_디지털 C 프린트_152.4×101.6cm_2010

미루란 이름이 참 좋다. 비루한 곳으로 간 미륵보살이란 뜻이란다. 이제 선거철이 다가온다. 하나같이 자기를 뽑아주면 선거를 위해 주소를 옮긴 이들이 뭐나 하나 크게 베풀것 처럼 떠든다. 아니 고아댄다. 참 아쉽다. 이 땅에는 정작 살처분을 해야 할 자들은 뻔뻔스레 살아, 국민들의 살과 피를 먹고 산다. 입으로는 낮아지겠다. 서민경제 살리겠다라고 말하지만, 어디에도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는 물의 입자로, 그 삶을 살겠다고 행동하는 정치인은 없다. 저들의 옷을 벗겨라. 사진 속 돼지는 인간과 함께 연민의 오브제라도 되지만, 너희들을 볼 때면 살처분의 증오감 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말로만 낮아지겠다고 하지 말고 진정으로 계급장을 떼고 저 돼지 우리 속으로 들어가라. 비루함을 껴안는 자들이 되라. 그녀의 사진은 너희같이 입만 살은 자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룩한 레퀴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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