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임재범의<여러분>에 눈물흘린 당신을 위한 그림

패션 큐레이터 2011. 5. 22. 23:54

 

 

조지 투커, <인물이 있는 풍경> 패널위에 템페라, 1954년, 개인소장

 

오늘 <나는 가수다>를 시청 했습니다. 원고가 밀려 있지만 감동의 힘으로 밤을 새야겠다 생각하며 무리를 해서라도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고 싶었지요. 음원을 다운받아 수없이 노래를 반복해 듣고 있는 지금, <여러분>을 들으며 떠오르는 화가와 작품이 있었습니다. 지난 3월 11일, 그러고보니 얼마되지 않았군요. 작고한 미국의 화가 조지 투커가 사망한 날입니다. 그는 마술적 리얼리즘, 사회주의 리얼리즘 회화의 대가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1950년대 미국사회에 팽배한 <조직인Organization Man>의 황폐한 정신적 초상을 아련하게 그려내 많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조지 투커, <대기실> 패널위에 템페라, 1957년, 개인소장

 

투커는 영국계 아버지와 쿠바계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생적으로 다문화적 속성을 뼛속 깊이 가지고 있던 그는 예술적인 감성이 풍부해서 어려서부터 예술대학에 가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희망에 따라,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요. 와중에도 그는 회화를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1942년 대학을 졸업하고 해군에 입대하지만, 안타깝게 건강상의 이유로 중도하차를 합니다. 오랜동안 감리교 신자였던 그는 카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울타리 바깥의 세계를 보기 시작합니다.

 

그는 뉴욕의 지하철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익명의 인간들, 표정을 잃은 현대인의 모습에서, 자본주의 생활양식이 잉태한 도시공간과 조직 속 인간의 면모를 그려내기 시작하지요. <인물이 있는 풍경>이란 그림을 보세요. 사무실 큐비클 속에서 게슴츠레 졸린 눈으로 앞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겁니다. 오렌지빛 따스한 벽면의 기억이 딱히 좋지 않은 느낌이죠. 큐비클은 마치 스카이스크래퍼, 고공빌딩들의 수직적 무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바로 내 옆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숨을 쉬는지 잊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 조직인이 된 우리들의 초상이 있습니다.

 

 

조지 투커, <지하철> 패널 위에 템페라, 1950년, 개인소장

 

그에게 지하철은 익명성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마치 번호표를 들고 어딘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혹은 공황 장애를 겪으며 지향점을 잃은 우리들의 모습이 드러나지요. 투커는 이 그림에서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이미지들을 병치하여 사용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대도시는 무덤과 같은 공간입니다. 특히 지하철은 신화 속 미노타우로스의 미로처럼, 비현실적인 거울의 홀 같은 느낌도 들지요. 마치 삶의 무거운 무게가 어깨를 누르는 공간같기도 합니다. 지하로 연결되는 계단은 지하의 세계로 연결된 통로처럼 느껴지고,  상부로 연결된 계단은 상승의 이미지를 담지만 닫혀있어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꼼짝없이 갖혀있는 것이죠.

 

1950년대는 미국의 산업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조직화를 통해 인간의 효용을 계량화 하던 시절입니다. 경영학사를 읽어보면 이때 등장하는 것이 본격적인 현대적 매니지먼트의 이론들이죠. 우리가 경영의 구루라고 칭하는 피터 드러커도 사실 이 시대의 산물입니다. 조직체계 속에서 부품처럼 살아가는 쓸쓸한 인간의 이미지. 각자의 점심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보이네요. 누군가의

벗이 된다는 것은 이런 정서적 풍경 속에선 힘든 일입니다.

 

 

조지 투커, <점심시간> 패널 위에 템페라, 1954년 

 

결국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형제이며 친구라는 메시지는 미국인의 손에 의해 철저하게 사멸당한 인디언들의 메시지일 뿐이지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외로울 때, 누군가 나를 위로해주고 곁에 있어주는 일 조차도 서비스 산업의 일환으로 치환한 자들의 세계. 누구가 혼자이지 않은 이는 없다고 하지만, 쓸쓸한 고독을 느껴본 이들은 압니다. 혼자인 것 만큼, 견디기 어려운 인간의 정서가 없다는 것을요...... 

지난 20여년의 시간, 무대에서 노래로 사람을 만났어야 할 한 남자가 절제된 목소리로 노래를 했습니다. 지난 번처럼 그는 울부짓지 않았습니다. 상처는 드러낸다고 돋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감내하고 더큰 향기가 나도록 기다릴 수 있을 때, 더 큰 선물이 되는 법 입니다. 저는 임재범의 노래를 들을 때, 세상 최고의 향이라 불리는 용연향을 생각합니다. 용연향은 침향, 사향과 더불어 인간세계 최고의 향입니다.

 

향유고래가 짝짓기 시간이 되면 소화기능이 약해지면서 자신의 창자에 고여있던 음식물을 토해내지요. 이 토사물 덩어리가 광막한 바다의 표면위를 10여년 떠돌아 다니며 따스한 햇살과 바다의 미풍을 맞으며 나쁜 향이 빠지고 나면, 그때 등장하는 향이 바로 용연향입니다. 임재범의 노래에는 이 용연향이 주는 끌림이 있습니다.

 

그는 감정을 토해내지만, 그것은 단순한 토사물이 아닙니다. 용연향이 되기 위해, 대왕오징어 토사물이 오랜 세월 광막한 바다의 현음을 들으며, 흘러 흘러 인간의 손에 발견되듯, 그는 지난 세월 겪고 감내해야 했던 상처를, 억한 감정들을 햇살에 말리고, 달보드레한 시간의 미풍에 씻어, 세상 어느 것 보다 향기로운 향을 만들어 우리에게 피워주고 있습니다. 그에겐 그의 노래가 주는 향에 취한 이들이 친구가 되어 옆에 있게 되겠지요. 글을 쓰다보니, 예의 쓸쓸함이 엄습합니다. 이 어두운 시간 내 곁에는 누가 있어줄지.....손을 모아야겠네요. 그러고 보니 저도 혼자였네요. 주류의 삶을 살 수 있었던 생의 행보를 포기한 대가는 너무 컷지만,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투커가 그린 <포옹>이라는 작품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날입니다. 임재범의 노래가 그림 속 따스한 포옹처럼 우리를 안아주네요. 제 블로그의 독자들 처럼요. 그러고 보니 정말 고마와요. 지난 12년간 함께 해 준 모든 이들이. 오늘 페북에서 8년 전 캐나다에서 제 블로그의 독자였던 분을 만났네요. 생은 이런가 봅니다. 돌고돌며 언젠가는 다시 얼굴에 도장을 찍게 되는 행보의 삶. 그러니 내게 다가온 사랑의 기회, 절대로 놓치지 말고 표현하고 껴안고 격려하며 살아가자고요. 행복한 한주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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