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호텔 아트페어에서 만난 달콤한 그림들

패션 큐레이터 2011. 8. 21. 01:23

 

 

그랜드 하얏트 호텔 10-11층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톱 호텔 갤러리 아트페어에 다녀왔습니다. 겔랑 강의를

마치고 바로 직행, 열심히 그림을 보러 다녔죠. 오늘 이상봉 선생님도 강의가

있으셔서 끝나고 잠깐 얼굴도 뵈었네요.

 

 

다양한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이라고 할만한 아이아프에서

신인작가들을 엄선, 항상 특별전 형식으로 열어주는 게 저는 좋답니다.

예전 그림을 좋아해서 컬렉팅을 하기 시작했을 때, 제가 얻었던 최고의 조언은

대학교 2학년 학생들의 학기 말, 드로잉 작품하고 유화작품들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었어요.

재능은 이때부터 서서히 조금씩 얼굴을 들기 시작하는 시기거든요.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과의 협업으로 이름을 알게 되었던

박승모 작가의 부스입니다. 이번에 특별전으로 나와서 신작들을 살펴봤네요.

 

 

굵은 알루미늄을 손으로 일일이 말아서 정교하게

인물과 옷의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정교함의 정신은

패션의 오트쿠튀르에 맞먹지요. 제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이건 만화과 교수님이면서

다양한 브랜드가 각인된 인간의 모습을

그래픽을 통해 사진작업하여 보여주시는 김준 선생님의

작업이구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다른 땐 삼청동을 거닐다가도

그렇게 자주 얼굴을 마주치던데, 오늘은 간발의

 차이로 얼굴을 못 뵈었습니다.

 

 

패션학과 아이들의 기초조형에 나올 작품이 있어서

물어봤더니 홍익대에서 의상디자인을 가르치시는 금기숙 교수님의

작품이라고 하네요. 하이힐과 함께 정교하게 비드 작업을 하셨더군요. 별로

눈에 띄진 않습니다만, 워낙 이런 작업들이 그 속성 상, 오랜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네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왼편의 피리부는 사나이의 모티브를

빌린 그림입니다. 겔랑 강의를 마치고 오후에 올라갔더니 이미 판매되었더군요.

자신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세상, 그 세상에 대한 우의적인 그림입니다.

 

 

호텔 아트페어는 기존의 아트페어와 달리 호텔이라는

숙박장소를 빌려 전시를 합니다. 그건 무엇보다 일반 페어에서

자주 보는 백색 벽을 넘어, 가정집과 가장 유사한 느낌을 발산하는 침실과

가정의 느낌을 살려, 여기에 걸맞는 그림을 찾아보라는 뜻이지요.

해외에서도 여인숙을 빌리거나 호텔을 빌려 하는

이러한 형태의 페어가 상당히 인기입니다.

 

 

호텔아트페어의 특성 상

리빙아트의 영역에 있는 가구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북유럽 느낌의 가구에서 진공관 턴테이블을

올려둔 목재로 만든 스피거와 테이블이 멋지더군요.

  

 

이 작품이 바로 눈에 들어오신다면 예전 제가

블로그에서 소개한 작가라는 걸 한 눈에 아실 수 있을텐데요.

성하지 않은, 버려진 나무들, 옹이를 잘라 상처난 인간의 형상을 조각하는

멋진 작가분이죠. 이번 제 책에서 다시 한번 쓰려고 합니다. 호텔 아트페어는 해를

거듭할 수록 그 내용이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관람객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긴 했지만, 그만큼의 인기를 반증하는 것이겠지요.

토요일 오후의 시간, 그림들에 푹 파묻혀 보낸

멋진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림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멋진 그림 앞에

서 있는 건 며칠 동안 양치를 못하다가, 시원하게 입안을

행궈낸 느낌이랄까요. 그만큼의 청신함, 답답한 치아 사이의 치석

조각 들을 단단한 끌로 하나씩 끄집어 내어 부숴 버리는 느낌. 이런 것들이

생각난답니다. 미술사를 공부했다고, 혹은 작가론을 깊게 공부한다고 꼭 이런 느낌을

얻게 되는 건 아닙니다. 물론 저 또한 미술사와 개별 작품에 대한 심도 깊은 논문들도 즐겨 읽지요.

분명 공부는 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담감을 갖고 미술을 접할 필요는

추호도 없지요. 그림은 답답한 내 영혼의 한 부분을 반영해주는 거울이니까요.

그러니 오랜만에 거울에 낀 서리를 닦고 다시 한번 그 앞에서 서서

나를 반영해 보는 건, 참 즐거운 경험이랄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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