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떠나는 오세훈 시장을 위한 두 장의 그림

패션 큐레이터 2011. 8. 25. 00:00

 

 

노먼 록웰 <이사하는 날> 1972년, 종이에 콜로타이프

 

오세훈 시장을 위한, 영혼의 그림 두 점

 

보편적 무상급식을 둘러싼 투표가 끝났습니다. 25 퍼센트 조금 넘는 초라한 수치의 투표율만을 선보인 채, 정치권은 자신에게 떨어질 불똥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입니다. 저는 인생에서 지자체의 의사결정을 둘러싼 찬반 투표를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유학시절, 벤쿠버에서 동계올림픽 유치를 둘러싸고 청년층과 노년층이 '복지와 일자리'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투표경쟁을 하는 걸 본 것 정도가 전부랍니다. 어찌되었든 아이들에게 '밥먹이는 일' 하나로 이렇게 서울은 신과 구, 강남과 강북으로 철저하게 분열되는 상처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지자체의 결정사항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연계한 오 시장의 실패로 끝을 맺었군요. 오세훈 시장은 '셀프탄핵'을 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틀 후쯤 자신의 거취에 대한 입장표명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짐을 싸게 된' 오세훈 시장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 두 점이 있습니다. 어차피 청사도 비워야 할 것이니, 떠나는 마당에 '이사하는 날'의 풍경을 그린 몇 점의 그림을 소개한다손 문제가 되진 않겠지요.

 

노먼 록웰은 미국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입니다. 40여년 동안 세러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표지를 그렸던 삽화가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작가는 유쾌하고 즐거운 우리내 일상의 풍경들을 삽화로 남겼고, 그 속에서 넉넉한 울림을 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개인적으로 다난한 생을 살았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미국 해군에 자원입대하지만 183cm의 키에 60킬로그램이 조금 넘다보니, 몸무게가 부족하다고 거절을 당하죠. 하지만 바나나를 미친듯 먹고 재응시, 합격을 하긴 하지만 군대 내 예술가로 차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한국과는 참 다르네요. 어떻게 하면 군대를 빠질까만 고민하는 우리와) 각설하고 그림 속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왠지 모를 낯섬이 존재합니다. 백인들만이 사는 동네에 흑인가족이 이사를 온 것이죠. 그가 활동하던 룩 매거진은 미국의 정치를 풍자하는데 상당한 에너지를 쓰던 매체였습니다. 때는 60년대 초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흑인민권운동이 조금씩 씨앗을 발아하던 시기지요.

 

 

노먼 록웰 <우리가 안고 살아야 할 문제들> 1960년, 룩 매거진 표지

 

자 이제 두번째 그림을 봅니다. 1960년대 초반은 미국 내에서 흑인과 백인의 통합 문제로 골머리를 썩던 시절입니다. 그림 속 주인공은 루비 브리지란 꼬마아이입니다. 1960년대 유색인종의 인권발전을 위한 협의회에서 백인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에 흑인 아이들을 전학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지요. 그때 선택된 6명의 아이 중, 실제로는 나머지는 머뭇거리다 포기했고, 이 루비 브리지만 백인만 있는 남부 뉴올리언즈의 윌리엄 프란츠 초등학교로 보내집니다. 학교 가는 길의 모습입니다. 6살 짜리 여아의 모습치곤 아주 당당하지요. 백인사회의 저항은 대단했습니다. 떼거지로 교장실에 몰려가 루비의 전학을 요청했고, 선생들 조차 가르치기를 거부했죠. 이건 약과였습니다. 연방 보안관의 보호를 받으며 등교하는 아이에게, 한 아줌마는 음독시켜버리겠다고 협박을 했고 또 어떤 아줌마는 나무로 짠 관에 흑인아이의 인형을 담아 학교 앞에 놔두기도 했죠. 흑인과 백인의 통합은 이런 긴장관계와 상처를 관통하며 이뤄낸 성과였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결심은 아주 견고했지요.

 

오세훈 시장, 서울은 분열되지 않을 겁니다

 

그림 속 주인공 루비 브리지는 성인이 된 후, 루비 브리지 재단을 창설합니다. 이 재단의 목표는 미국 내 유색인종과 백인의 통합을 돕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관용의 가치를 퍼뜨리는데 있습니다. 저는 그녀의 말을 기억합니다. "인종차별주의는 케케묵은 화두일 뿐입니다. 더 이상 이 문제를 확산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키고 이용하는 일을 막아야 합니다" 라고요. 그녀는 지금도 생존하여 열심히 활동중입니다. 그녀가 지금 서울 내, 오시장님이 벌여놓은 이 분열의 전략을 보면 뭐라고 말할까요? "보편적 복지는 케케묵은 화두입니다.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지 마세요"라고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외로 어른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위해, 백지상태의 아이들을 이용하는 작태는 서구나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흑인과 백인이 동일한 테이블에 앉을 수 없었듯, 가진자와 없는자의 자식이 함께 테이블에 앉는 꼴을 만들지 않겠다던 당신의 꿈은 무너졌습니다.

 

인종차별도 아니고 아이들 에게 그저 밥을 먹이는 문제를 '포퓰리즘'이라고 레이블을 붙였지만, 이미 서울시민들의 거부로 기각된 '당신의 꿈'을 바라보세요. 밥을 먹이는 문제는 단순히 복지의 확장이 아닙니다. 밥을 지어본 이는 압니다. 생쌀을 불려 열을 가하면 하얀색의 부푼 꿈이 된다는 것을. 보편적이란 말을 어찌 '좌파'의 주장으로 환원할 수 있는지 난 참 궁금했습니다. 점진적이란 말, 단계별이란 말을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단계적인 변화란 단어는, 수구주의자들이 혁신적 변화를 '거부'하기 위해 사용하는 교묘한 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은 말로 내뱉은 약속을 지킬 때가 되었습니다. 잘 가십시요. 첫번째 그림처럼, <이사하는 날>이 곧 오겠지요. 흑인을 보고 당혹해하는 같은 또래의 백인들이 있는 나라. 어찌 보면 서울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오시장님은 얼마나 좋습니까? 산사태가 나고 홍수가 나도,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는 강남3구의 시민들이 있으니 말이에요. 그러니 그들에게로 이사가세요. 서울은 이제 보편의 꿈을 믿는 시민들에게 맡겨주시고 부디 잘 가시기를. 굿바이......

 

제가 존경하는 신학자 디트리히 본 회퍼의 말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전별금 대신 취해주세요. "The ultimate test of a moral society is the kind of world that it leaves to its children." 도덕적 사회에 관한 판단은 사회가 아이들에게 물려준 세상의 모습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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