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말 많고 탈 많은 펜디 모피쇼 참석기-피로 물든 모피, 한강을 나누다

패션 큐레이터 2011. 6. 6. 18:22

 

 

지난 주 세빛 둥둥섬에서 열린 펜디 모피쇼에 다녀왔다. 포스팅을 결심하기 까지 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끊임없는 잡음을 만들고 있는 이 행사와 배후의 다양한 갈등관계를 짚어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모피를 둘러싼, 소비자의 저항과 그 원인을 살펴보고, 건강한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 패션쇼에 참석하면서, 분명 모피반대를 외치는 목소리와 퍼포먼스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동물보호단체에선 대규모 반대시위를 공시했고 실천했다. 이번 쇼가 시작되기 전, 많은 언론에서 이번 쇼에 대한 논평을 해달라고 전화가 빗발쳤다. 시사인의 변진경 기자를 비롯, 다양한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 입장을 물었다. 답하기 쉽지 않았다. 패션쇼의 일부를 차지하게 될 모피작업에 대한 논평이 아닌, 이번 행사를 둘러싼 정치적 입장을 밝혀야 하는 문제이기에 신중해야 했다. 패션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써, 사실 모피와 안티 모피 운동의 역사 또한 잘 알기에, 치열한 투쟁의 역사를 하나씩 곰삭이기도 쉽지 않았다.   

  

 

세빛 둥둥섬에 도착한 건 6시 20분경. 7 시부터 시작될 리셉션에 참석하기 위해 초대장을 챙겨 갔다. 1인 1석을 원칙으로 한다길래, 유독 이번 발표회는 왜 이렇게 빡빡하게 구는지......란 생각도 해보면서 말이다. 왠만한 프레스들도 입장이 불허되었다. 펜디 측에서는 '생각지 않은 이상기류 때문'이라고 단평했다. 세빛 둥둥섬에 도착하자마자, 고성과 항의의 목소리가 오갔다.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동물들을 상징이라도 하듯, 인형으로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나로서는 그리 새롭진 않았다. 북유럽을 비롯한 해외 전역에서 펼쳐지는 반 모피 운동과 '동물에 대한 윤리적 처우'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퍼포먼스를 자주 봐 온 탓이다.

 

난 오히려 그들의 입장에 동조하는 쪽이고, 실제로도 <에코쉬크>란 테마로, 동물사육을 통해 얻은 부산물이 아닌 자연섬유와 패션의 재활용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쪽이다. 이번 행사의 주체가 된 펜디가 '시민의 공간'으로 설정된 세빛 둥둥섬과 한강의 공유수면을 마치 기업의 소유물인양 '사인화'하려는 욕망이 강했다는 점. 이건 분명 짚고 넘어갈 문제다. 적어도 쇼장 입구에서만 출입통제를 해도 될 문제를, 일반인들은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게 통제를 했다는 점. 비난 받기에 충분하다. 한강 이란 공유수면 위에 떠있는 자칭 둥둥섬엔 한강과 서울을 공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타자'들이 배제되고 있었다.

 

 

이번 행사는 한 마디로 성대했다. 1500여명의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장쯔이를 비롯, 펜디사의 주요 인사들과 세계적인 모델들도 합류했다. 촬영을 위해 2층에 자리를 잡고 물길처럼 디자인 해 놓은 무대의 동선을 확인하고 내려왔다. 한 잔의 샴페인을 마시며 한강의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왠지 모를 어색한 분위기를 삼켜야 했다. 난 개인적으로 펜디란 브랜드를 좋아한다. 칭찬도 많이 했고, 글도 꽤 여러번 써줬다. 이탈리아의 피혁산업을 알린 브랜드이고, 장인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브랜드다.

 

맞다. 그런데.......유독 모피와 관련해선 쓴소리를 자주 하게 된다. 지난번 현대백화점에서 명품 자전거 회사와 펜디 모피를 콜라보레이션 하는 행사에 대해서도 '돈만 쓰고 효과 없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을 했다. 왜 이렇게 펜디는 모피 부문에 대해서는 마케팅을 잘 못하는 건지, 아니면 운이 안좋은 건지 할 때마다 말이 많고 구설수에 오른다.

 

 

국민의 혈세로 건축한 화려한 세빛 둥둥섬을 '한강 르네상스'사업의 일환으로, 자신의 정치적 치적으로 사용하기에 바빴던 오세훈 시장의 실책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뭐든 첫 시작과 인상을 각인시키는 행사를 할 때는 취지와 더불어, 행사의 성격 또한 면밀하게 검토하고 시작했어야 했다. F/W 시즌을 겨냥한 패션쇼라면 겨울의상들이 주가 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일텐데, 모피로 유명한 펜디가 이 컬렉션에 모피를 내놓지 않을 거라고, 그저 프레젠테이션 한번 만 듣고 흔쾌히 허락을 해준 서울시의 태도도 우습다.

 

기획단계에서 전혀 생각없이, 그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장인정신과 자신의 정치적 '치적'이 잘 맞물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큰 삽질을 했다. 국제적으로 모피란 아이템은 '수요의 증가'와 더불어 안티세력도 증가하고 있는 소비의 역설을 보여준다. 모피를 입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배우를 개념녀라고 아무리 추켜세워도, 미안하지만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서, 모피는 끊임없이 수요의 증가를 보여왔다.

 

 

국내를 비롯 해외에서도 모피에 대한 반대의 여론은 상당하다. 일부 유럽 국가는 모피를 비롯한 희귀 동물을 포획/살상하여 만드는 모피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고 동물에 대한 윤리적 처리 및 운용에 대해 지속적인 운동을 펼쳐온 동물보호단체 PETA가 결성되면서 조직적 여론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EU의 패션 시장에서는 텍스타일을 사용해 만든 제품에 대해 관련 소재 및 이름을 명기하도록 하는 법을 채택했다.

 

모피나 깃털, 가죽과 같이 비 섬유 부분을 이용해 옷을 구성할 경우, '동물의 부산물로 만든 제품'임을 명확하게 제조업체 측에서 명기하도록 한 것이다. 1997년 환경운동 연합은 모피 관련 조사보고서를 내고 '모피 안 입기 운동'을 벌였었다. 지금 '펜디 모피쇼'를 승인한 오세훈 시장은 이 캠페인의 홍보대사를 맡기도 했다. 이런 오 시장이 이번 행사에 대해 갖는 입장은 '초라할 정도로 애매모호함'을 달렸다.

 

 

 매년 패션산업은 5천만 마리 이상의 동물을 살육한다. 여기엔 친칠라를 비롯란 토끼종류는 제외한 것인데 가령 한 벌의 모피코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12-15마리의 스라소니가, 10-15마리의 코요테가, 15-20마리의 여우가, 60-80마리의 밍크가, 27-30마리의 너구리가, 60-100마리의 다람쥐가 필요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세계적으로 4천 5백만 마리 이상의 동물들이 비인격적인 사육환경 속에서, 오로지 모피제공을 위해 자라고 죽는다는 점일거다. 협착한 공간 속에서 사육되다 보니 스트레스와 지저분한 우리 환경으로 죽어가는 동물들도 다수다. 더 화나는 건 모피의 퀄리티를 위해, 주로 목을 부러뜨려 죽이거나, 항문에 전기충격을 가해 죽인다.

 

이런 대량 사육에도 불구하고 모피 수요가 증가하다보니 반려동물까지 살육하는 상황이 되었다. 애완용 개와 고양이를 액세서리 제품에 사용하기 위해 포획한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다. 도난당한 반려동물과 길잃은 동물들을 마구잡이로 죽였다. 고양이의 경우 철사줄로 목을 매서 죽이고 개의 경우 곤봉으로 쳐서 죽였다.

 

 

지금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모피는 이런 잔혹한 사육과 살육의 과정을 통해 얻은 것들이다. 아무리 비윤리적 처리를 하지 않은 모피로 만든다고 항변하나, 실제로는 개연성이 터무나 떨어지는 이야기다. 그러니 유럽을 비롯한 다양한 정부체에서, 모피제품에 대해 사전 고지된 정확한 의사결정(informed decision)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펜디쇼가 시작하기 전, 로비에 준비된 모피 제품들을 살펴봤다. 펜디로서도 지금껏 해왔던 런웨이가 생각 밖의 요소로 잡음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신중했어야 했다. 컬렉션에서 모피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이걸 인위적으로 삭제하고 빼기도 쉽지 않다.

 

 

패션쇼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안 있어 2층에선 '모피반대'를 외치는 한 운동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이를 제지하는 보안요원들의 제지로 곧 끝나고 말았지만 런웨이를 보면서 가슴 한편이 아렸다.

 

 

 인간의 역사에서 모피는 어떤 존재인것일까? 중세 말 부터 모피는 인간의 패션 속으로 들어온다. 특히 하얀색에 도트 무늬가 새겨진 흰색 담비털은 왕과 최상층의 종교권력만 사용할 수 있도록 유럽은 '사치 금지령'을 내려 소재의 차별화를 자신의 이미지와 연결지어왔다.

 

문제는 예전과 달리 과학기술의 발달은 섬유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보온소재가 만들어진 지금에도 모피는 여전히 인기품목이란 것이다. 동물보호단체의 기대와는 달리 모피에 대한 수요는 증가세이고, 앞으로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얼마전 모 홈쇼핑에서 국내 브랜드에서 중국산 고양이 모피를 이용한 케이프를 내놓았다가 소비자의 극렬한 저항에 부딛쳐 사과성명과 더불어 전 제품을 리콜해야 했다. 이런 반응을 보면 한국에서도 이제 '패션의 윤리적 소비'가 자리잡을 것 같기도 한데, 더 지켜봐야 겠다.

 

패션의 리사이클과 리폼, 세컨드 핸드 의류 시장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자본주의의 속도에 맞춘 소비의 속도 속에선, 인간도 동물도, 자연도 파괴적인 본성만 드러낼 뿐이다. 문제는 패션상품의 소비에 단순하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시각을 삽입시키는 것을 넘어, 옷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의미들을 찾아야 한다. 이게 없으니 이 나라는 맨날 외국명품에만 눈을 돌리는 것이고, 그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이미지를 쉽게 걸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만 혈안이 되는 것이다.

 

 

펜디 리셉션에서 샴페인에 투영된 사람들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Beauty is a Skin Deep'이란 속담도 있지 않은가? 미인도 벗겨보면 한 꺼풀의 가죽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모피를 입은 우리들도 그렇다. 나는 모피의 일방적인 반대론을 늘어놓는 이도 아니고, 옹호론자도 아니다. 결국 소비행위 속에서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배려와 따스한 지혜'를 복원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게 없다.......

 

무엇보다도 서울시민의 혈세로 만든 공간을, 정작 시민을 배제한 채, 해외기업의 프로모션 행사 하나 제대로 치리하지 못하는 서울시 당국의 무능에 다시 한번 유감을 표한다. '참 대단한 해외기업유치사랑 나셨다 그죠'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펜디 또한 이런 식의 노이즈 마케팅은 불쾌감만 줄 뿐이란 걸 이번 사례를 통해 통렬하게 이해하길 바란다.

 

여전히 상황은 힘들다. 한편에서는 윤리적 소비와 동물학대를 아무리 이야기 해도, 모피 소비는, 명품 소비는 줄어들 질 않는다. 소비를 통해, 변신을 꿈꾸는 명품 속에 새겨진 이야기의 힘을 입으려 하는 인간의 욕망이 있는 한 그렇다. 이것을 뒤집을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분명 있다. 우리 스스로 옷 한 벌 한 벌에 이야기를 담으려는, 역사를 세기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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