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아 들로네의 금속 자수로 표면을 처리한 실크 새틴 드레스
파리 갈레리아 모드 & 복식박물관,
뉴욕에 갈때마다 꼭 들르는 뮤지엄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쿠퍼 휴잇 국립 디자인 박물관은 제가 손꼽는
곳입니다. 디자인의 역사를 비롯,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정교하게 큐레이팅하기도 소문난 곳이죠. 이번 6월 5일부로 끝을 맺은
패션 디자이너이자, 텍스타일 아티스트, 화가였던 소니아 들로네의 전시를 보지
못한 건 너무 아쉽습니다. 대신 따끈한 도록을 한 장 한 장 펼쳐보며
큐레이터에게 받은 전시장 사진들을 살펴보며, 목마름을
갈음하려고 합니다.
소니아 들로네는 유대계 프랑스인 예술가입니다.
남편인 로베르 들로네는 미술사에서 말하는 오르피즘 미술운동
을 창시자이죠. 오르피즘이란 강렬한 색과 기하학적 형태를 사용하여
내면에 잠재된 욕망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답니다. 미술사에선 남편이 더 유명세를
탈진 몰라도, 적어도 패션계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텍스타일과 무대 세트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활동범위가 매우 광범위했던 작가입니다. 1964년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최초로
회고전을 가졌던 여성작가이기도 했는데요. 이번 전시에 나온 그녀의 울 소재 코트를 너무나
보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영화 <선셋대로>의 주인공 글로리아 스완슨을 위해 디자인한
코트입니다. 이외에도 스카프, 숄, 수영복, 심지어 넥타이까지 그녀가 디자인한 제품의
상당부분을 볼 수 있는 든든한 전시였다고 하니 더욱 화가 나는 군요.
소니아 들로네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애정은 매우 각별합니다.
그녀는 예술과 일상의 오브제를 결합시킨 어찌보면 최초의 여성디자이나
작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퐁피두에서 그녀의 그림들을 봤고, 선과 면, 원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들이 기하학적인 질서를 추구하며 배치된 그림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단순하게 끄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형상들의 질서감 속에 살아있는 생동의
의미들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런 패턴을
입은 코트나 스카프 모두, 한번쯤 해보고 싶더라구요.
당시 운전자들을 위한 모자입니다. 미려한 색감이
층층이 퇴적된 느낌을 발산하는 작품입니다.
"나에게 있어 장식미술과 회화 사이에 간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 예술(Minor Art)이라고
인정되는 장식미술이 예술적으로 내 생의 감흥을 좌초시킨다거나 하는 식의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
반대로 장식미술은 내 세계의 확장이며 언제나 새로운 길을 보여줬다. 동일한 방식을 사용해
만드는 예술이지만, 놀라우리만치 새로운 세계였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소니아 들로네
오늘날 기하학적인 패턴의 텍스타일 작품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가가 바로 이 소니아 들로네입니다. 그녀없는
대담한 색상과 패턴의 프린트물은 상상하기가 어렵지요. 어린시절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자란 그녀는 러시아의 전통시골 가옥과 풍경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대조적인 색상의 덩어리들과 이불의 패턴을
떠올리며 작품들을 만들었다고 하죠.
큐레이터에게 전시에 대한 자료를 받으면서 꼼꼼히
전시 동선과 자료화 계획 부분을 살펴봤습니다. 흑백사진과 스와치
관련 도큐멘트를 거의 왠만한건 빼놓지 않고 실제 작품과 병치시킴으로써
관람객들에겐, 사진을 통한 형태에 집중하게 하고, 나머지는 물질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관람객과 전시의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했습니다.
컬러만큼 예술과 패션을 독재하는 강력한 요소도 없지 싶습니다.
색상의 정도와 종류에 따라, 컬렉션의 방향과 빛깔이 바뀔 것이고, 예술가의
내적인 정서까지 드러나니 그렇겠지요. 들로네의 전시도록을 보다보니, 책을 저술하는
이 시간을 빨리 끝내고, 꼭 멋진 전시를 기획해서 여러분과 만나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천천히 보여드려야겠죠. 힘을 내겠습니다.
Image Courtesy By 쿠퍼 휴잇 디자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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