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옷 속에 담는 법

패션 큐레이터 2011. 6. 4. 01:20

 

금요일 오후,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

졸업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원래 메인 쇼는 7시만

펜디 모피쇼에 가야 했기에 4시 공연에 참석했지요. 펜디 모피쇼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입장을 정리해야 할 필요도 있어, 이번에는 포스팅 하지

않습니다. 저는 학생들의 작업을 자주 보러 다닙니다. 에스모드나

Sadi와 같은 의상디자인 전문교육기관의 졸업생의 작품도

좋고, 국민대 의상디자인과 학생들의 작업도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이번 성균관대 학생들 작품전의 제목은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입니다. 다른 예술 장르의

거장 4명의 작품에서 얻은 영감을 옷의 언어를 통해 재해석하고

풀어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전시회인 셈입니다.

 

 

영화감독 팀 버튼과 빅토리아 시대의 패션을 고수하며

아이들을 위한 아름다운 동화를 써내려간 멋진 할머니 타샤튜더,

독특하다 못해 자신의 성격을 모든 디자인에 환상이란 요소로 녹여내는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 그리고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

이 네 거장의 세계를 자신의 이름으로 다시 저장하는

시간은 결코 녹록치 않았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그가 건축한 물의 교회, 빛의 교회도 가봤고

한국에선 제주도에 있는 지니어스 로사이란 명상 미술관도 그의

작품입니다. 차갑고 고요한 콘트리트로 만든 공간들 속에, 그는 교묘하게

따스한 빛과 바다의 해풍을 자연스레 결합해 인공과 자연이

적절하게 결합되는 건축물을 만들지요. 그만큼 건축의

기본 언어인 선과 면의 결합에 힘을 쏟습니다.

 

 

문제는 건축 언어를 옷으로 푸는 일입니다.

단순하게 미니멀리즘과 같은 테마로 풀어서는 극도로

제어된 공간 속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인간의 삶을 놓치기 쉽죠.

자신과 다른 길을 갔던 장르를 자신의 언어로 푸는 일이

어려운 것은 이런 맥락을 풀되, 패션처럼

상업성과 예술성을 결합해야 하는

이중의 숙제 때문입니다.

  

 

하이메 아욘의 동화적인 상상력을 풀어낸 작품이네요.  

패션은 결국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라고 할 정도로, 환상의

힘으로 앞으로 나갑니다. 모든 패션은 초현실의 적자인 셈입니다. 현실에

뿌리를 두되 꿈의 세계를 가감승제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죠.

 

 

졸업 전시회를 마지막으로

이제 치열한 패션산업의 현장으로 가야하는

학생들의 작품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집니다.

하나같이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말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현격히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다들 해외명품브랜드의 바이어나 이런 쪽을 선호하죠.

그만큼 디자인이 어렵고, 소기의 결과를 내고 그만큼의 사회적인

우대를 받기까지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 긴 탓입니다.

 

학생들을 키워내는 일도 쉽지 않지만

지금같이 국내 패션 산업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학생들이 갈아 엎어야 할 묵정밭의 깊이와 넓이는

만만치 않을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열정과 옷에 대한

사랑이 지속되기를 희망합니다. 무엇보다 박수쳐주고 싶고요.

 

 

언젠가 이 45명의 학생들 중, 뒤의 누군가가

그들의 작품을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를 꿈꾸길,

그런 퀄리티의 작업을 보여주는 멋진 디자이너들이 되길

바랍니다. 졸업전시회의 런웨이가 평생 그들이 걸어야 할, 생의

무게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쇼는 계속되어야 하고 '

삶의 런웨이 또한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것이.......오랜동안 힘든 손길로 전시를 준비해온

이들에게 세상이 줄수 있는, 아니 그들의 손으로 쟁취해야 할

멋진 세상인 것이죠.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