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패션블로거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묻다

패션 큐레이터 2011. 6. 30. 05:25

 

각 브랜드별 2011년 가을/겨울 컬렉션들을 살펴보는 시간. 요즘 들어 내 성 정체성 때문인지, '나는 남자다'란 모토하에 남성복을 조금씩 곁눈질로 살펴본다. 물론 일본 패션의 거장들 작품을 살펴보면 요즘 유행하는 일본식 하라주쿠 스타일의 흔적들과 그 원천이 보인다. 물론 소수의 마니아 집단이긴 하지만, 요즘 남자들의 얼굴이며, 몸선이 확실히 90년대 초 대학을 다니던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느낀다.

 

 

벨기에 출신의 디자이너들을 좋아했었다. 항상 비대칭적이고 선이 살아있는 옷들을 좋아했는데 사실 한국에선 그런 옷들을 입어보기가 쉽지 않았었다. 요즘엔 A-LAND에 가보면 대학을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 디자이너들이 이런 스타일의 옷들을 종종 내놔서 자주 사입는다. 이 땅에서 남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패션이란 영역에 한정지어서, 남자패션의 고답적이고 한정된 복종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항상 좌절하기 일쑤다. 뒤집어보면 르네상스 이후로 바로크와 로코코를 거치며 남성복은 그 어느때보다 화려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로, 근대 자본주의 체계가 자리를 잡던 시기부터, 부르주아들은 기독교적 절제를 남성복의 체계에 빌려왔다.
 

 

최근 들어 성차의 구분을 없애고 옷의 본질적인 요소들, 실루엣과 색감, 유동적인 옷의 선들, 자연스러움을 표방하는 브랜드들이 속속 늘고 있어 재미난다. 어차피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차로 구성된 사회를 벗어나는 요즘, 옷차림에도 그런 변화가 생기는 건 당연한거다. 그렇다고 마냥 화장하고 꾸미는 꽃미남, 메트로섹슈얼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위버 섹슈얼이니 뭐니 하는 식으로 패션 저널리즘이 신조어로 만들어내는 말들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들의 삶이, 바로 지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기존의 성역할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며 그 역할의 역전 및 재배치가 이뤄지고 있기에 옷에도 변화가 있다. 이 정도로 말해두고 싶다. 용어 강박증에 걸리지 말자.

 

 

최근 내 촉수에 들어온 한 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우크라니아 출신의 안나 소스노브스카야다. 그녀는 요즘 SOSNOVSKA란 남성복 브랜드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리적으로 유럽 내의 국가들과 경계를 맺는다. 서쪽으론 폴란드와 헝가리, 슬로바키아 남 서부로 루마니아와 몰도바, 북쪽으로 벨라루스, 동쪽에는 러시아, 남쪽으론 흑해가 자리한다 아니나 다를까 우크라이나란 뜻 자체가 '경계선에 핀 나라'란 뜻이다. 예전 우크라이나를 여행하면서 우크라니아 재래시장을 돌며 전통의상들을 봤었다. 참 독특하다. 섬세한 서양자수로 장식된 의상들은 나이와 성별, 사회적 위치, 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행사에 맞춰 진화했다.

 

 

요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가 대세다. 기업의 사회책임, 블로거의 사회적 책임 등 그만큼 전 지구적으로 각 영역의 사람들이, 지구 공동체의 성원들을 위해 어떤 책임의식과 고통을 분담 한다는 측면을 강조한다. 남성복 디자이너 안나 소스노스스카야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녀는 7살 때부터 옷에 타고난 감성을 선보였고 최근 국제적인 경연을 모두 휩쓸면서 국제 패션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녀는 안티-에이즈 운동에 열을 올린다. 관련 재단과 사회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패션쇼를 통해 얻은 수익금을 에이즈에 걸린 개인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이외에도 <희망의 인형>이란 프로젝트를 통해 수익금을 아동들의 조기 암 발견에 사용한다. 그만큼 자신의 재능을 사회의 다양한 역할에 쓰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툭하면 패션 잡지나 블로그 혹은 인터넷 기반의 신문(이라 쓰고 찌라시라 읽어야 하는) 에 실리는 패션 칼럼에서 남발하는 국적 불명의 패션 용어들이 너무 많다. 네오 클래식, 참 좋다. 그런데 이 말을 하나씩 해석하려면, 네오와 클래식이란 용어를 정리하고 우선적으로 '동의'할 수 있도록 의미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이게 없다. 그냥 쓰면서 혼자 멋있는 줄 안다. 자칭 라이프 스타일 운운하며 관련 내용을 쓰는 블로거들 관련 패션 저널리스트들이 가장 잘하는 짓 중의 하나가 신조어 만들기다. 참 짜증난다.
 

 

이런 짜증의 와중에서 소스노브스카의 옷을 발견한다. 앞에서 신랄하게 비판한 네오 클래식한 느낌의 옷이 바로 이것인데 여기에서 클래식이라 함은 비례와 균형, 절제의 미를 염두에 둔 것이며, 네오라 함은 기존의 클래식이 갖는 의미들을 현대적 맥락에 따라 뒤집거나, 전복하거나, 혹은 변형시킨 것을 의미한다. 그녀의 옷에는 현재 북유럽의 디자인이 우리에게 말하는 찬연한 자연스러움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녀의 옷에 끌린다. 입고 싶다. 아니....구매신청도 해놨다.
 

 

오늘날의 패션 저널리스트들은 많은 반성이 필요하다. 여학생들은 패션 에디터가 뭐 대단한 직업인양 아직까지도 자신의 커리어 노트에 올려놓고 좋아하는 것 이해한다. 패션을 좋아하니까 란 한 마디 말로 변호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직업에 임하는 태도이며, 자신이 일하는 영역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지금껏 해온 것들이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근거없이 함부로 겉멋 든 표현들이나 수사나 남발하면서 있는 척 하는 꼬락서니는 멈추었으면 좋겠다. 해외 브랜드들의 선전장이 된 패션잡지들이, 그들의 광고비로 먹고 살면서 악덕 변호사로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를 그들에게 말을 걸어본다.

 

 

신조어를 만드는 행위 자체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 특정한 기류, 혹은 흐름을 읽어내기 위해, 감지된 사회적 변화를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서도 신조어를 만드는 행위는 필요하다. 중요한 건 이런 기류를 주관적인 감성만 갖고 읽는 건 안된다는 거다. 그만큼 탄탄한 이론과 사실관계에 근거해야 하는데, 그저 아는 척, 있어보일려고 사용하는 언어들은 현실을 해명하는 힘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나는 패셔니스타란 단어를 싫어하지 않는다. 뭔가 앞서가야 하고 진보적인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진보란 게 별것인가? 세상을 좀 더 나은쪽으로 가게 하기 위한 노력아닐까? 이를 위해 육체적으로 때론 감수해야 할 것들을 몸으로 받아내야하고.......말이다.

 

옷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이 얼마나 많은가 남자로서의 정체성, 성역할, 자신의 입장과 태도, 무엇보다 내가 아닌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태도와 반응이 옷으로 표현되어야 할 것 같다. 우리시대의 네오 클래식이란 바로 옷을 통해 통어되는 당신들의 입장임을......그러니 물어봐라. '당신은 어떤 남자인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하기 위한 노력을 하다보면 이 자체가 사회적 책임임을 알게 되지 않을까?

 

 

무슨 이 나라의 패션 블로그엔 옷 잘입는 법, 연예인 따라잡기, 여자가 싫어하는 남자패션

이 따위 글들 밖엔 없을까? 그래놓고 왜 바깥에 나가선, 옷 좋아하는 사람들이 '된장녀' 취급을 받냐고

한탄하면 안된다. 당신들 스스로 패션을 통해, 삶의 인문학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탓임을 잊지마라. 모든 건

자업자득일 뿐이다. 몰개념과 무개념으로 무장한 이 땅의 패셔니스타들이여, 정신 좀 차리자.

이런 글 쓰는 날엔 꼭 "여자가 싫어하는 남자패션 꼴불견" 이 따위 글들이 메인에

뜬다. 그러니 도전해보라. 메인뜬다에 백원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