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패션계의 악동, 장 폴 고티에-옷은 시대를 거스르는 기호

패션 큐레이터 2011. 6. 23. 21:36

 

장 폴 고티에, 박물관의 런웨이를 걷다 

 

지난 6월 17일, 캐나다 몬트리올 파인아트 뮤지엄에서는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첫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10월 하순까지 이어질 전시의 제목은 <장 폴 고티에의 패션의 세계-곁길에서 캣워크까지>입니다. 1976년 자신의 프레타 포르테 라인을 시작해서 98년 자신의 쿠튀르 하우스를 설립한 그 장엄의 역사를 하나씩 되집어 가는 전시입니다. 요즘 회고전들이 꽤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선 알렉산더 맥퀸의 <야생의 아름다움>이란 부제의 패션전시가 연일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도 할 수 없이 이 전시를 연구하기로 마음을 먹고, 7월 20일날 뉴욕으로 출발합니다.

 

 

패션 전시란 것이 박물관을 옷을 걸어놓는 행거 정도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패션이란 현상과 오브제를, 일반 관람객들에게 통어할 수 있도록 메시지들을 기획하고, 디자이너의 세계를 조명하면서 현재의 의미를 끌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죠. 결코 쉽지 않습니다. 패션은 태생적으로 워낙 학제간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인간이 태어나 옷이란 기호를 매일 걸치고 살아가는 한, 여기엔 다양한 의미가 담길 것이고 이것을 역사를 통해 하나씩 풀어내야 하는 과정이니 더욱 그렇지요.

 

 

장 폴 고티에는 1970년대 첫 출발과 함께 파리 패션계의 고질적인 정신의 관행을 깨뜨린 디자이너입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도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들)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만큼 그는 남성성/여성성을 비롯한 당대의 사회적 조건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굳어질대로 굳어져 각질이 붙어버린 미적 코드를 변형시켰고 자기 나름의 철학으로 비틀었지요. 70년대 프랑스는 아버지 세대와의 결별과 더불어 새로운 사회의 형식을 요구하고 있었고, 다문화사회(지금은 스스로 실패했다고 자인하는)의 문제들을 짚어갔습니다. 이 전시는 앞으로 댈러스 미술관과 샌프란시스코 파인아트 미술관으로 옮겨져 순회전을 계속 할 예정이라네요. 7월에 뉴욕에 다녀온 후, 늦 가을 쯤 다시 한번 미국으로 가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에게 끌린 이유-위대한 휴머니티

 

이번 전시를 기획한 몬트리올 파인아트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나탈리 봉딜은 "내가 이 전시를 시작하게 된 것은 고티에게서 발견한 휴머니티 때문이다" 라고 지적합니다. 오랜동안 오트 쿠튀르를 거쳐 획득한 기술적 장인의식과 굴레에 묶이지 않는 다양한 상상력의 방식을 넘어, 그의 작품 속에는 다양한 현대예술의 영역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열린 사회의 시각과 내면의 광기, 감성, 즐거움, 개인들 각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투쟁할 수 있는 '시건방진'느낌의 사회를 보는 시각이 함께 녹아있다" 라고 논평합니다. 그녀와 디자이너의 인터뷰를 보니 이런 내용이 잘 녹아 있는 것 같아 재차 봐야 했습니다.

 

 

120여벌의 앙상블이 섬세하게 정리되어 전시된 이번 회고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최측에 교신을 해서 받은 내용들을 보니, 1976년부터 2010년까지의 프레타 포르테 기성복 이외에도, 각종 스케치와 영화와 런웨이쇼, 콘서트 뮤직 비디오와댄스 공연 등에 사용된 작품들이 다수 전시되어 그의 다양한 영역별 디자인의 특성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파리" "혼융" "다양한 젠더" "유로 트래쉬/접근금지" "메트로폴리스"라는 4 가지 섹션으로 나뉘어서 그의 세계의 단면을 깊게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큐레이터들이 디자이너들을 분석하고, 여기에 따라 전시의 성격과 섹션을 나누는 부분을 보면, 여전히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게 됩니다. 더 노력해야죠.

 

 

개인적으로 이 전시를 보고 싶어서, 급하게 아마존에 도록을 프리오더 시킨 후 각종 자료들을 찾았습니다. 주최측에도 프레스 키트와 대표 이미지컷을 받아서 보고 읽고 생각하고 있지요. 생각보다 고티에에 관한 외국 단행본은 지금까지 3 권이 나왔습니다. 물론 다 갖고 있긴 합니다만, 만약 이 전시를 한국에 가져와서 할 수 있다면, 적어도 조금은 방향성에 우리의 색을 더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것은 고티에의 콜라보레이션입니다. 그는 영화 감독인 피터 그린어웨이나 뤽 베송, 카로와 주네, 페드로 알모도바르, 현대무용의 거장이자 안무가인 모리스 베자르, 팝의 디바 마돈나와 레이디 가가 등 정말 많은 기라성 같은 스타들과 그들의 무대에 함께 했습니다.

 

 

장 폴 고티에는 흔히 말하는 유수의 패션학교를 졸업한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스케치는 항상 거리에 관심을 두었고 새롭게 등장하는 하위문화의 다양한 영역들에 그 촉수를 갖다대었죠. 우리는 흔히 이런 경우 교양의 문제를 들먹거립니다만 한국에선 유독 교양의 차원이 '학교를 어디까지 나왔나"의 문제로 아주 단순하게 환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이런 사회에선 장 폴 고티에 같은 귀재들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저는 패션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닙니다만, 솔직히 유명 패션 스쿨을 졸업했다고 다 스타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아주 일부죠. 초기엔 학교가 주는 일종의 아우라를 이용할 수 있겠지만 이 시간은 오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통찰력이고, 시적 통찰력과 관찰력이 결합된 상상력의 힘을 촘촘하게 연결해가는 '디자이너 자신의 기술적 숙련도'도 중요하지요. 맨날 학교 어디 출신입네 하는 이들에겐, 저는 딱 한마디를 할 뿐입니다. "Show me the Money"라고요. 패션은 상업과 예술의 두 경계위에 서 있습니다. 자본으로 환원되지 못할 작품만 죽어라 하는 건, 아티스트고요. 자본의 세계속에 편입된 세계가 '기존의 세계를 비웃을' 힘을 갖는 것. 이것이 진정한 힘이고 풍자이며, 변혁을 위한 칼날입니다. 자체의 영역 안에서도 넉넉하게 비판할 수 있는 시선과 상상력.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상상력의 요체는 깊은 인문학과 미술사의 지식을 갖추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왜 우리에겐 위대한 패션 디자이너가 없을까?

 

우리는 툭하면 '변혁' '혁명'이란 단어를 잘 씁니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 어떻고 자신의 틀을 깨뜨리라고 말하는 어줍잖은 자기개발서들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이런사회는 안타깝게도 기존의 것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그 틀속에서 나오기 싫어하는 사회인지도 모릅니다. 기존의 질서를 깨고 싶다면서도, 기존의 문법을 철저하게 알아야만 흔들리지 않고 거스를 수 있지요. 이것이야 말로 인문학이 주는 힘이 아닐까요? 이런 전시를 볼 때마다 역시 떠오르는 건 우리에게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입니다.

 

이게 깊지 못하면 반짝이는 상상력도 일회로 끝날 가능성이 많죠. 대학원 작품전에서 주목 한번 받았다고 그걸 교수가 되어까지도 '시그너처'란 미명하에 연구나 노력, 그 어떤 땀도 흘릴 생각없이 각종 전시회에 내놓는 이런 몰상식이 뻔뻔스레 통하는 사회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디자이너 한명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전시를 '그들의 전시'로 볼 수 밖에 없는 지도 모르지요. 안타깝지만 포기하진 않아야 겠습니다.

 

 

Image Courtesy By Montreal Museum of Fine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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