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패션초상사진의 달인, 파울로 로베르시를 만나다

패션 큐레이터 2011. 4. 12. 22:07

 

 

지난달 22일 저녁 7시, 청담동의 꼬르소꼬모 서울의

특별 전시실에서 우리시대의 패션사진작가 파올로 로베르시의 전시를

봤습니다. 오프닝에 맞춰 한국을 찾아준 작가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영광이었죠.

 

 

그의 작업을 알게된 건 우연하게 보그와의 한국의 재발견 시리즈 화보를 통해서였습니다. 당시 모델이 송혜교씨였지요. 고혹적인 황진이의 모습에 눈을 감을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이미지의 현상학의 배후에 놓인, 한 명의 작가를 만난다는 건 매력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번 꼬르소꼬모에서의 전시 제목은 "포토그래프"입니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의 꼼므 데 가르송과의 작업을 묶어 <리브레토>란 패션 사진북을 편찬했고 이외에도 누디, 스튜디오 북등을 출간했습니다. 다작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상업사진의 총화인 패션사진가로서만 그를 규정하는 것을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는 패션과 정물, 누드 사진을 결합한, 하나의 복합적 이미지를 만들고, 동화 속에서처럼 이미지들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함께 견고한 의미들을 발화할 수 있도록, 철저한 연출을 이루어낸 작가였습니다.

 

 

그의 누디<Nudi> 시리즈는 파올로 로베르시의 독특한 누드 사진에 대한 소개입니다. 그는 유명과 무명이라는 두 개의 인식적 표찰을 넘어, 자신을 위해 포즈를 취해 준 모델들을 하나같이 빛의 형상으로 조형합니다. 사진의 행간을 통해 읽혀지는 여인의 몸에는 건강한 에로티시즘이 봄꽃처럼 뭉게 뭉게 피어나지요. 감각적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게 아닐까요?

 

 

파올로 로베르시는 1947년 이탈리아의 동북부에 위치한 라벤나란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0대 시절 우연하게 가족과 함께 했던 스페인 여행에서 자신의 망막을 덮는 스페인의 열정을 찍고 싶었다고 하지요. 이후 무조건 암실을 만들고 자신만의 흑백사진을 현상, 인화하는데 몰입합니다. 1970년 문학평론가이자 모더니스트 시인이었던 에즈라 파운드의 장례식 취재를 시작으로 연합통신과의 사진 협업을 시작합니다. 이후 자신의 고향인 라벤나에 포트레이트 스튜디오를 차리면서, 인물의 초상사진에 몰입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그는 패션 매거진 엘르의 저명한 아트 디렉터인 피터 크냅을 만나면서 그의 초청으로 파리에 입성했고 이후 그곳에서 계속 작업중입니다. 이후 당대 최고의 패션 사진작가였던 악명높은(제자들이 대부분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것으로)로렌스 사크만의 휘하에 들어가, 패션 사진의 진수를 배웁니다. 군대처럼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도 눈과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피사체를 찍는 강훈에 돌입한 것이죠.

 

 

이번 사진전은 그가 20년째 지속해온 스튜디오 포트레이트 사진 분야의 총 결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파리의 스튜디오에서 8×10 폴라로이드로 촬영하면서 폴라로이드 필름이 틀에 제대로 밀착되기 전에 막을 제거해 이미지가 바랜 듯한 기법을 완성합니다. 근거리에서 장노출을 설정하는 기법은 스튜디오 포트레이트 사진 분야의 초창기부터 사용된 미적 기법이지만, 그는 도큐멘팅과 일루전, 즉 환영과 기록의 중간 의 어느 지점에, 자신의 이미지의 위상을 배치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사유에 빠지도록 했습니다.

 

 

처음엔 예전 기획에 참여했던 패션사진의 거장 사라문의 작품과도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패션 사진만큼 현실과 환상이란 두 개의 벡터를, 세계를 오가는 장르가 있을까 싶습니다. 다른 현실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이나, 아예 초현실적인 영역을 다루는 사진과는 판이하게 다른 이유입니다. 그만큼 호흡을 조절하고 이미지를 조작해내야 하기 때문이겠죠.

 

 

세상에서 제일 찍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라고 합니다. 저는 사진작가들의 이 공통된 답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만큼 광대한 자연보다, 정밀한 사물의 초상보다, 포착하기 힘든 것이 변화무쌍한 인간의 이미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죠. 얼마나 복합적이고, 얼마나 다양하며, 얼마나 때로는 올곧고 편벽된 존재던가요? 화가들도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며,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듯, 패션 사진은 그 과정을 통해 패션과 모델, 그 중간의 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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