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옷은 혼돈과 고요를 담는 그릇-이낑 인의 작품을 보다가

패션 큐레이터 2011. 3. 26. 23:16

 

 

이번달 파리판 보그(Vogue)에 실린 한 디자이너의 옷을

물끄머리 바라보고 있다. 2시간째......시간의 흐름은 마치 그녀가

디자인한 옷의 주름 속에서 응고된 채 움직이지 않는다. 하긴 이번 보그에 소개된

그녀의 전시 제목은 '꿈'이다. 꿈의 속성은 깨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닐까. 무거운 현실의 벽에서

신음할 때, 꿈은 억눌린 우리의 내면을 깨우고 상처의 힘을 모아두는 저장고다.

  

 

중국 디자이너 이낑 인(Yiqing Yin) 누군가 했다.....왠지 낯이 익더라니

2010년 S/S 시즌 때 서울 패션위크에 초청되었던 3명의 차세대 동양인 디자이너다.

당시 이에르 패션 컨테스트에서 올해 한국인 최초로 선발된 김윤정 디자이너, 파리에서

가정부로 생활비를 벌며 패션공부를 시작하여 현재 이자벨 마랑을 비롯한 파리패션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몽고 출신 디자이너 ‘촐로먼드크  문크(Tsolmandakh Munkhuu)

와 함께 컬렉션을 발표했던 따끈한 신인이다.

 

 

이낑 인, 그녀는 중국인이다. 재능으로 똘똘 뭉쳐있는 디자이너다.

그녀의 이름을 풀어보면 '혼돈 후에 찾아오는 고요함'이란 뜻을 갖고 있다.

4살때 베이징을 떠나 파리로 떠나야 했던 건, 오로지 아버지가 천안문 사태를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정치적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자신이 태어난 모국을 떠나 생경한

생의 주름을 잉태하기 위해 도착한 파리는 짙은 갈색눈의 중국인에겐, 너무나 다른 색감과 리듬을

가진 나라였을 터. 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 패션을 공부한 후, 파리 의상조합학교에서 정통

오트쿠튀르 재단법을, 런던 컬리지 오브 아트에선, 현대미술과 결합된 의상의 논리를

익혔다. 2010년 파리간 선택한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되었다.

  

 

26살, 신인답게 그녀는 패션작업을 개념화하고 생각의

실타래를 풀듯, 자신의 의상을 한땀 한땀 디자인한다. 제2의 피부인 옷을

만들면서, "옷을 만드는 과정은 내 자신으로 회귀하는 과정이다. 감정과 신체가

하나로 묶여진 실체, 옷은 곧 나다"란 점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4살때의 망명 경험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그녀의 정신성에 상처를 남겼다. 두 나라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돈을 느꼈던 것은 당연할 터. 그녀에게 옷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와 대면이라는 이중의 무대를 제공한다.

  

 

그녀의 옷을 찬찬히 보고 있자면 두드러지는 건, 바로 옷의 본질을

추구하는 태도다. 바로 생의 시간 속게 겹쳐지는 역동적인 플리츠 주름의

잠재력이다. 그녀는 주름을 통해 우리가 살고, 경험하고 꿈꾸는 세상의 구조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형과 변주의 과정 속에 놓여 있음을 설명하고 싶어한다. 신체를 둘러싼

직물은 여백과 주름을 통해 '텅 비어있음'을 표현한다. 건축에서는 실제 자재가 조형하는

실공간과, 공간 사이에 놓여진 '허공간'을 구분하는데, 그녀는 이 두개의 공간 사이를

오가며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작업' 속으로 몰아간다.

 

 

주름은 무섭다......오로지 주름의 힘으로 움직이는

누에고치처럼, 기존의 구조를 허물고, 균형을 창조한다. 어디 이뿐일까

물흐르듯 유연한 공간과 조형된 공간 사이에서, 언제듯 터져 나올듯 한 생의 강렬한

외마디 외침이 주름 하나하나에 올올이 박혀 있다.

  

 

물이 흐르듯, 신체를 따라, 중력의 힘에 순복하며 흘러내리는

저 주름의 다이나믹한 힘을 보라.

 

 

현실이 버거울수록, 사람들은 초현실의 공간 속으로

빠져들고 싶어한다. 복식사를 통해 등장한 초현실주의의 의상들은

바로 이런 인간의 의식들을 담아낸 그릇에 불과할 뿐이다. 왜 우리들은 치열한

현실의 모습을 질끈 눈을 감고 거부한 채, 꿈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일까? 도처에서 펼쳐지는 폭력과 상처의 풍경이 더이상

몸과 마음으로 받아내기엔 너무 힘든 지경까지 도달한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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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Courtesy by Yiqing Y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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