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패션-장인의식을 만나다

패션 큐레이터 2011. 4. 8. 19:12

 

 

이번 4월달 브뤼트 매거진을 장식한 특집 기사는 바로 <패션, 장인의식을 만나다>입니다. 50여 페이지에 달하는 특집 기사인데 저 혼자 다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욕심쟁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브뤼트 매거진에서도 특집의 경우, 너무나 많은 양을 혼자서 다 소화하기 어려울 거라고 조언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인의식(Craftsmanship)이란 화두를 풀어내는 과정을 저 만의 시각으로 풀어내고 싶었고, 저의 색깔이 한땀한땀 입혀진 텍스트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무리수를 두고 끙끙 앓으며 고생했습니다. 단순하게 차별화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이땅에 패션과 큐레이션의 만남이 전무하기에, 우리가 패션을 바라봐야 하는  또 다른 시각과 대안에 대한 접근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우리 현대인이 잃어버린 손의 정신과 핸드 메이드의 역사, 오트 쿠튀르의 역사, 패션계의 장인이라 불리는 이들을 재조명하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중세 공방에서 부터 현대의 마지막 비스포크 수트에 이르는 손의 정신을 담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잃어버린 것들을 사유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특집기사는 바로 이런 정신을 담았습니다.

 

 

루이 14세 시절의 집단 공방에서 보여준 엄준한 장인들의 공예정신에서 현대의 명품 시계 보석의 명가, 까르띠에를 통해서는 시대를 해석하는 장인의 눈을 통과해 최상의 가죽 제품을 만드는 펜디의 공방 과정을 살펴보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공방과 그의 작업 모습에 드러난 구두공의 마음을 추적하며, 제 마음도 추스렸고 모자 장인 스테판 존스의 작업을 보며 모자가 부릴 수 있는 호사로움의 끝을 만나야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 유행어가 되어버린 한땀한땀이 패러디되지 않고, 그 진실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번 여행을 통해 조금은 해소되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오트쿠튀르의 정신을 역사적으로 찾아가는 여행은 지난하지만 제겐 많은 도전점을 시사해준 시간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오트쿠튀르 장인들, 아놀드 스카시와 발렌티노 전에 대한 기사를 정리해 한 꼭지를 썼습니다. 섬세한 기예와 장인정신이 어우러진 작품을 보면서, 결국 얻는 결론은, 모든 것은 디테일의 녹아있다는 세삼스런 결론입니다. 이 장구한 기사를 쓰면서 피부는 문드러지고, 대상포진 초기까지 갈뻔 했습니다. 정말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기사 전체를 쭉 보고나니,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합니다. 패션 에디터나 저널리스트라는 자들이 보여주는 스타일의 글을 벗어나 패션 큐레이터의 관점에서 패션을 풀어내는 참신한 시각의 글로 여러분과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번은 그저 시작일 뿐입니다. 더 깊고 흥미로운 내용을 단행본으로 엮어 세상에 내 놓으려 합니다.

 

이번 기사 쓰면서 지면이 부족해서 '정신의 측면'들을 깊게 드러내지 못하고 약간 맛베기만 한게 뭇내 아쉬웠는데요. 이탈리아 공방과 디자이너들, 혹은 프랑스 파리를 비롯한 시골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다양한 공예인들과 프랑스의 오트쿠튀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딱 1년에 한점 만드는 작품들. 이런 것들을 다루지 못해 아쉬웠거든요. 다행히 현지 공방에서 작업과정을 담은 작품사진들을 다 제공해 주신다고 해서, 이번 단행본에 깔끔하게 집어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사 쓰면서 유럽의 공방들을 다니며 배웠던 정신이 과연 우리에겐 없나?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항상 제 답은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아니 더 깊다면 깊고, 발굴할수록 끝이 안보이는, 그러나 몰락 직전까지 몰려있는 이 땅의 장인과 그들의 정신이 있습니다. 문화부가 놓치고 있는, 행정과 관치가 놓치고 있는, 그래서 여전히 스폰서십은 생각도 하지 못한채 자구로 버티며 유지해내고 있는 이 땅의 장인들이 있습니다.

 

문화예술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찾는게 아니라, 디자이너들이 찾아 발굴하고 협업하면서 그나마 이름을 알리고 그렇게 약간의 부조라도 얻을 수 있다면 기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패션을 읽는 것이 사회 정치적인 맥락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일겁니다. 그러나 해내야지요. 내 생에 참 단아하고 깊은 한 권의 책으로 곧 만나겠습니다. 물론 마무리 되지 못한 원고들을 정리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떻게서든 올 안에는 해결을 봐야 할 거 같아요. 상상 이상의 책이 될 겁니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 이후로 참 오래 기다려준 분들에게도 면목이 섰으면 합니다. <불멸의 보석 컬렉터들(가제)>도 어제 새벽 최종 원고를 넘겼습니다. 이제 곧 나오겠지요. 올 한해,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오늘도 열심히 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