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대학 도서관을 폭파하라-미친 등록금의 나라, 얻는 건 없다

패션 큐레이터 2011. 4. 4. 17:49

 

 

 

봄이오는 캠퍼스.....희망은 없다

 

봄이오는 캠퍼스는 등록금 투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늘 자 뉴스에는 이화여대의 학생들이 채플 수업을 거부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등록금 인상 반대와 학생들의 요구조건을 관철하기 위해 공통 필수인 채플을 접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수쳤다. 오랜만에. 말끝마다 OECD 기준을 들먹이며, 한국의 거시경제 지표를 들먹이던 자들은 반성하라. 이번에 밝혀진 건 한국의 대학 등록금 비율이 OECD 기준으로 볼 때, 미국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단다. 그래놓고도 뻔뻔스레,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피할 수 없는 인상이었다고 발뺌한다. 문제는 학비의 인상은 있어도, 교육의 질의 인상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요 며칠, 언론에선 대학도서관의 열악한 환경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나왔다. 뒤늦은 기사지만 쌍수들어 환영한다. 시대는 2011년인데, 최신판 책은 찾아볼래야 볼 수도 없고, 논문 아카이브나 정예자료들을 편람할 수 있는 시설은 더더구나 열악하다.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내가 경영학 석사과정을 다녔던 학교다. 참 치열하게 공부하던 시절이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건 각 단과대별, 중앙도서관에 수북히 쌓인 장서들을 볼 때였다. 물론 그 많은 책을 다 읽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중요한 건 도서관을 헤매면서 의외로 인간은 독특한 사유를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설가 보르헤스는 자신의 상상력을 '도서관의 상상력'에 비유했다. 원래는 이 책을 찾아야지......하고 갔다가 다른 책을 들고 오기 일쑤고, 그런데 이 과정에서 원래 생각했던 내용과 어긋나지만, 본질적으로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내용의 끈들이 엮인다. 축적된 도서의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물론 오늘날 하이퍼텍스트로 된 인터넷의 링크는 이 역할을 하긴 한다. 그런데 책의 축적이 주는 깊이는 현저히 떨어진다. 역사가들은 말한다. 오늘날 클레오파트라 시절의 알렉산드라 도서관이 불타지만 않았어도, 고전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바다처럼 넓고 깊어졌을거라고.

 

경영학과 건물 옆에 사진 속 장미정원이 있었다. 중앙 도서관에 가면 온갖 도록들이 즐비해서, 그 무거운 커피 테이블 북을 빌려 유리병에 담아간 커피 한잔 놓고 정원 앞에서 글을 읽다보면 안되던 '영어독해'도 더 잘되었다. 사계절 눈덮인 산과 바다, 초록빛 정원과 분홍색 장미가 흐르러지게 핀 곳에서, 사진사의 거장들의 작품을 읽거나, 세익스피어의 단편을 읽었다. 물론 경영학 책도 더 열심히 읽었다. 맨날 교과서 하나 원서로 읽으면 끝일거 같지만, 정작 가격정책론 하나를 공부하려고 해도, 다양한 산업군 내의 제품 가격들을 알아야 해서 마지막 학기, 제약산업을 연구하면서 바이오테크놀로지 도서관에서 살아야 했다. 북미에서 3번째로 큰 도서관이었는데 자료가 많다보니 돌아다니가 처음엔 많이 헤메곤 했다. 사진 속 배경이 바로 그 생물학 전문 도서관이다. 학생들에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널려있다는 건 공부하는 이에 대한 축복이다.

 

 

 

대학 도서관에 책이 많아야 하는 이유

 

왼쪽 사진은 인문학 도서관. 의외로 인문학 서적을 읽기보단 정오에 열리는 무료 콘서트를 보러 자주 갔던 곳이다. 봄이 되면 이 건물 뒤편으로 나 있는 길에 우윳빛 목련이 하늘하늘 피었다. 길을 걷다보면 문득 책을 읽고 싶었고, 그렇게 벤치에 앉아 한없이 하늘과 책을 친구 삼아 살았다. 오른쪽은 음악대학 도서관이다. 음악사를 비롯 엄청난 장서도 자랑거리지만, 역시 음대답게 구하기 힘든 악보들을 가져다 놓아 허락을 받고 복사할 수 있었다. 음대는 장서도 장서지만 악보가 관건이다. 특히 기악연주의 경우, 여전히 악보들을 구하기 위해 독일의 플리마켓을 비롯 다양한 소스들을 찾아 다니는 악보 사냥꾼들이 있다. 기보된 악보의 성격에 따라 연주의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악보도 도서관이 구비해야 할 자료다. 우리는 어떤가?

 

핵심은 한국의 대학 도서관이 도대체 신규 도서들을 구매할 생각을 하지 않는 점이다. 한 학생별 도서장수가 100권이 넘는 대학이 서울대 한 곳이니 할 말 다했다. 등록금은 1천만원을 넘어가는데, 책 구입 예산이 1퍼센트니 증가하는 지식의 양을 축적하고 정리해야 할 본원의 도서관은 그 의미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대학 도서관은 대학의 자존심이다. 소장 도서의 질이 학문적 성과를 결정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땅의 도서관은 자료를 찾고 연구하는 곳이 아니라, 독서실이 되었다. 고시준비 서적으로 무장한 노땅 아이들의 무대일 뿐.  학생당 장서 숫자가 적다는 건, 그만큼 상상력의 미로에 빠져 허우적거릴 시간이 짧아진다는 뜻이며, 더 이상 깊은 사유와 결과가 등장하기 어렵다는 뜻도 된다.

 

 

 

대학은 뻘짓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대학 수준을 높이려면 자체 박물관과 미술관, 대학 출판부와 도서관의 질을 높여야 한다. 하버드 포그 미술관의 소장목록들을 보면 놀랍다. 우리나라 국립 미술관에도 없는 세계 명화들이 즐비하다. 물론 교육체계가 다른 유수의 대학과 일대일 대응 비교를 하는 건 무리다. 그러나 말끝마다 OECD 기준을 들먹였던 건 정부다. 왜 대학 도서관을 비롯 대학 교육의 질을 담보하고 감찰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인가? 교과부는 뭘하고 있나? 사립대학 재단들의 전입금 수준이 조 단위를 넘어가면서, 학생들을 위해 도대체 뭘 했는지 감사를 하긴 한건지. 사진 속 토템들은 UBC가 자랑하는 인류학 박물관의 소장품이다. 북남미의 다양한 텍스타일 양식과 위빙을 공부하기 위해 자주 들렀던 곳이다. 유수의 대학일 수록 돈이 안되는, 기초분과에 투자한다. 한국은 어떤가? 맨날 돈이 없다고 볼멘 소리는 하는데 재단 전입금이 수천억인 나라. 이제 솔직해지자.

 

나는 예일대 출판부에서 나온 책들을 자주 읽는다. 여기에서 간행된 미술사 서적과 복식사 책들은 세계적인 정평이 나 있다. 이 책들이 많이 팔리는 책이냐면 그렇지 않다. 학술서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수요가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꾸준히 좋은 양서를 낸다. 이것이 대학의 공공성을 위해 산하 출판부가 해야 할 임무이자 사회적 책임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얼마나 자체 대학 출판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학교 자체내의 연구 성과를 정리해 단행본으로 출판해야 할 임무가 있는 곳에선, 이런 일을 과연 얼마나 하고 있는지 물어볼 일이다. 맨날 기초분과에 대한 투자만 늘여달라고 하기 전에, 제발 그 수많은 학비를 거둬 이런데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의상학과 교육이 반 세기가 지난 지금, 이 땅의 의상학 코너에 있는 책들을 한 번 보란 말이다.

 

그 많은 등록금은 누가 다 먹었을까? 미친 등록금의 나라. 그러나 아이들에게 돌아갈 혜택은 전무하고 교육의 질은 변화가 없는데 여전히 학비의 앙등엔 군말없는 이 정부나 교육부나 '졸업할 때까지만 버티자'며 방관하는 학생들 모두 공범이다. 사회의 빛이 되고 싶었지만 학비 때문에 '빚'이 된 아이들. 기성세대의 쪼들린 빚을 온 몸으로 안야할 너희들에게 미안하다. 그래 썩은 책으로만 가득한 대학 도서관을 폭파하라. 툭하면 설비 짓는데 돈 들이는 거. 터트려 버리고 새로 짓자. 지을 때 모두 신규 양서로 다 확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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