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여자 아나운서에게 '강용석'사태를 묻다

패션 큐레이터 2011. 1. 12. 20:50

말의 시대를 넘기 위하여

 

인터넷 공간이 뜨겁다. 여자 아나운서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불구속 기소된 강용석 의원 재판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강용석 의원의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이후 아나운서 협회는 그의 성희롱 발언에 수치심을 느꼈다고 증언한 사실을 담은 동영상을 법정에 증거로 제출했다. 일부 여자 아나운서는 법정 진술까지 나서면서 사태추이는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한국 아나운서 연합회의 성세정 회장은 오늘 오후 이 사건의 재판이 열린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강 의원 측이 아나운서 수백명이 정당한 위임절차에 따라 자신을 고소했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기에 전국 8개 지회에서 동영상을 제작해 증거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동영상에는 위임절차의 문제가 없음을 확증하는 206명 여성 아나운서의 출근증과 사원증이 함께 들어있다.

 

강용석 의원 사태는 출당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발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고 국회의원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토론 내용을 안 듣는다. 참가자들의 얼굴을 본다” 라고 하질 않나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는 여학생에게 “그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 남자는 다 똑같다.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옆에 사모님만 없었으면 네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아나운서를 지망한다는 한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특정 사립대학을 지칭하며 “OO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는 막말을 내뱉었다. 특정 직업에 대한 편견으로 고착된 허위사실이 아닐 수 없다. 아나운서 협회는 성명과 함께 사과를 요구했지만 강용석 의원은 발언사실을 공표한 언론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그런말을 한 적이 없다며 끝까지 을러댔다. 아나운서 협회가 명예훼손으로 고소장을 내자 이백 여명이 넘는 아나운서로 부터 의견을 적확하게 취합했다고 볼수 없다는 둥, 위임절차에 문제를 제기하며 부동의 의견을 낸 채 시간끌기에 돌입했다. 법을 안다는 국회의원다운 대응이지만 참 치졸하다.

 

 

아나운서의 길, 신지혜 아나운서에게 묻다

 

오늘 공판에 증인으로 신지혜(CBS), 김부긍(PBS), 이은정(TBS), 김성은(KBS), 이렇게 4명의 여성 아나운서가 출석했다. 사진 속 주인공은 바로 오늘 증인으로 나온 신지혜 아나운서다. 작년 제천영화제에 갔을 때 찍었던 사진이다. 내 블로그를 읽는 분들을 잘 아실터다. 그녀는 제천국제음악 영화제를 비롯, 많은 모임을 함께 다니는 필자의 가장 멋진 인생 선배다. 그녀는 왜 법정에 서야만 했을까? 속이 상했을거다. 그녀는 12년째 <신지혜의 영화음악> 지기로 살고 있다. 대중음악의 편중현상때문에 영화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 소개 프로그램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묵묵하게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 있다. 일에 대한 자부심을 넘어 '아나운서의 길'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다. 후배들을 위한 멘토링도 지치지 않고 해내는 억척스런 고참 선배이기도 하다. 오늘 법정에 다녀온 후, 통화를 했다. 지친 목소리다. "이렇게 법원에서의 재판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한지 오늘 처음 알았다"고 하는 걸 보면 순탄치 않은 재판과정이 기대되기도 한다.

 

어느 사회건 특정 직업에 대한 일종의 환상과 편견은 존재한다. 특히 미디어를 이용하는 직업일수록 타인의 눈에 노출되기 쉽고, 그만큼 선호와 인정을 받기도 하지만 근거없는 매도에 시달린다. 통화를 하면서 신지혜 아나운서가 내게 요구한 것은 "감정싸움을 하기 보다 지금껏 자신이 밝혀왔던 '아나운서의 길과 존재론에 대해서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오히려 "왜 자신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서고 법의 논리에 의지해가며 싸움을 하는지, 그것이 왜 여성아나운서들이 명예훼손으로 그를 고소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더욱 명징하게 드러낼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맞다. 강용석 의원을 동일한 막말로 대응하고 감정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오히려 "아나운서들의 무너진 자부심의 근저에 있는 상처와 분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양은수 혼합재료_인터렉티브 설치_2011

 

방송은 소통의 꽃을 피우는 작업이다

 

신지혜 아나운서는 항상 사석에서도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넘친다. "아나운서는 뉴스 진행을 할 때 단순하게 주어진 스크립트를 읽는 앵무새가 아니다. 그 사안의 경중을 이해하고 정서적인 깊이를 갖고 대할 때, 내가 읽는 뉴스는 단순한 사실의 전달이 아닌 공감의 대상이 된다"고 말하는 그녀였다. "뉴스의 사안과 성격에 따라 아나운서의 목소리, 음조, 높이, 음색이 달라진다. 뉴스 전달자가 사안을 명확하게 시청자에게 전달했을 때의 기쁨은 너무나 크다.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아나운서임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아나운서는 언어를 지키는 사람이다. 언어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하게 문법을 지켜 언어를 구사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실 전달을 위해, 소통을 위해 언어에 정확한 감정의 결을 따라가며 길을 찾아 전달한다는 뜻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내 자신도 하루하루의 방송을 잘 했는지에 대한 판단이 서더라"고 말했다.

 

대학 방송반 시절부터, 아나운서를 꿈꾸었다고 했다. 치열하게 준비하고 노력한 결과로 방송인이 되었다. 그렇게 장수프로그램 <신영음>의 지기가 되었다. 방송대상도 받았다. 말을 들어보니 이 때 처음으로 비싼 미장원에 가서 스타일링도 받아봤단다. 그저 아나운서 하면 예쁘게 메이크업하고 멋드러지게 차려입고 다니는 줄 알지만 부시시한 머리로 새벽에 나가 가장 먼저 뉴스를 전해야 하고 점심먹은게 소화되기도 전에 달려가 마이크를 잡는게 이 직업이다. (어떤 직업이든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다 힘들지만) 어려운 점은 가려지고 겉으로 드러나는 '멋진 일면'만 부각되기에 특정 직업에 대한 오해는 계속해서 커진다.

 

소통은 이렇게 어렵다. 오늘 작가 양은수의 '소통'연작을 올려놓은 건 바로 이런 이유다. 그녀는 센서 장치가 된 인터렉티브 화면위에 꽃을 그린다. 말 그대로 전자장치와 작가의 손이 오차없이 만날 때라야 비로소 연분홍 꽃이 그려진다. 항상 임시적이고 불완전한 미디어의 장에서 꽃을 피워내기 위한 최소의 조건은 바로 '공감과 타이밍'이다. 이 두가지를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훈련해야 하는 아나운서의 어깨는 항상 무겁다. 그녀들이 법원에 간 까닭은 아마도 단순한 여성 비하 때문이 아닐 터다. 오랜동안 방송을 하면서 지켜온 최소한의 언어를 지키는 사람의'자존감'마져도 뭉개어진 분노 때문일거다. 어느 사회나 특정직업에 대한 오해는 상존한다. 함부로 그 내면을 보지 않고, 실제 필드에서 경험해보지 않은 채, 그저 '누가 그러던데.....란 식의 무책임한 말 속에서 '환상을 품거나 비난하는 것'에 동참할 때, 사실 우리는 강용석 의원과 동일한 실수를 범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재판과정은 지리할 것으로 보인다. 법을 잘아는 율사인만큼, 강의원의 대응은 철저한 시간끌기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그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막말은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모욕을 넘어 '언어를 지켜 세상과 소통하는'이들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한 것이라고" 그러니 빨리 재판에서 결과를 내고 결자해지 하자고 말이다. 그저 룸살롱에서 '자연산'이나 찾는 당신이 그곳의 여성들과 언어운사를 혼동한 그 막말의 혓바닥에 법의 심판이 있길 바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