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패션 위크 중 하나인 런던 패션 위크에 발맞추어
최근 이스트 런던의 대표 복합문화공간인 바비칸 센터와 로열 아카데미에서는
<예술과 패션의 정체성 & 미래의 아름다움-일본패션 30년>을 전개했다. 패션을 화두로 하는
전시들이 부쩍 느는 것은 나로서는 기쁜 일이고, 이런 전시들이 열릴 때마다 부러운
마음도 한 가득이다. 미술과 디자인, 패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융합되는
현상을 사회변화의 큰 축으로 보고 있는 런던의 예술계의
적극적인 응답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본 패션에 관심이 많다.
일본 패션은 단순하게 하라주쿠 스타일로 대변되는 스트리트
패션의 매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상주의 시대부터 파리 박람회를 시작으로
유럽에 동양의 미학을 전파했던 건 일본이었다. 물론 루이 15세 시절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중국풍이 일부 귀족 사회에서 인기를 끌긴 했지만 이는 국부적인 사건일 뿐이고 실제
유럽사회에서 동양은 곧 '일본'이라고 할 만큼 그들의 예술세계는 유럽에서
항상 매혹의 진원지로서 역할을 다해왔다. 이번 전시도 일본에 대한
유럽의 사랑을 표현하는 또 다른 전시의 확장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물어봐야 한다. 왜 유럽은 일본 패션에 매혹되었는가?
단순하게 60년대를 시작으로 한 일본의 경제호황 때문만은 아니다. 패션은
한 사회의 경제적 지표를 미적으로 드러내는 도구다. 잘 사는 나라 패션을 모방하는게
사람 심리란 얘기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끝내기엔 일본 패션엔 동양을 넘어 서구를 질시하게
만든 무엇이 있다. 오늘 글은 바로 그 '무엇'에 관한 생각을 담을 예정이다. 패션이 타인의 모방대상이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그들의 욕망'을 깨울 수 있어야 하고 배울 수 있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로열 아카데미에서 열리고 있는 패션 전시의 제목은 <AWARE: Art Fashion Identity>다 'Aware'란
단어의 뜻 부터가 '인식한다 깨닫는다'라는 의미인 것을 볼 때, 옷의 의미 자체를 사회 내부의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하고 재봉하는 의미의 도구로 본다는 전시의 의미를 담는다.
일본의 현대 패션은 무엇보다 서구인들에게 자신들의 관점을 재고하고
반성할 수 있는 요소를 담았었다. 이세이 미야케를 위시로 하여 시작된 디컨스트럭션
바로 탈구조에 대한 천착이다. 서구의 옷은 인간의 육체를 최대한 드러내도록 각 신체부위의
비례와 형태를 살린 재단법을 만들어냈지만, 동양의 패션은 인간의 몸을 옥죄기 보다는
자연스레 포개고 감싸고, 덮는 의복문화를 완성해왔다. 사실상 서구에서 여성의
코르셋 문화에 종지부를 찍게 한 데도, 일본의 기모노가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2011년 패션 컬렉션을 봐도 무채색과 심플리시티,
신체의 유기적인 측면들을 고려한 디자인들이 눈에 띤다. 이런 측면이
바로 일본패션에서 서구가 차용한 복식미학의 한 요소들이다. 다양한 동양자수의
화려함, 레드와 화이트, 블랙과 같은 강렬한 단색 위주의 배색과 색의 충돌을 중화시키는 문양들의
배열이 눈에 띤다. 일본의 전통복식은 다양한 문양과 표현기법, 염색기술의 발달로 옷을 하나의 그림으로
간주한다. 일본 복식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의 전통 정원축조 방식과 다도, 선종 불교의 영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인들의 미의식을 설명하는 두 개의 단어가 있다.
바로 와비와 사비다. 와비란 동사는 와부(わぶ)의 명사형으로
자주 쓰이는 형용사 와비시이의 의미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훌륭한 상태에 대한
열등한 상태"를 뜻한다. 이 의미가 바뀌어 조잡한 모양, 또는 간소한 모양이라는 뜻을 나타내게 되
었으며, 극단적인 해석으로는 가난한 모양, 가난등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 와비는 이후
귀족들의 '꾸밈의 미'에 반대되는 '정신의 절제'와 연결, 일본미의 한 축을 이룬다.
이 절제된 정신의 미는 서구의 패션계에 신체와 옷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을 허물어 뜨리는 혁명을 일으킨다.
이번 전시는 4부로 이뤄져 있다. 정중동의 세계를 옷을 통해 표현한
일본복식의 미를 살펴보는 <In Praise of Shadows> 일본패션의 한 특성인
평면성을 종이접기라는 방식으로 드러냈던 이세이 미야케의 의상을 중심으로 테마를
잡았던 <Flatness> 기모노란 전통의상에서 빌려온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패션을
중심으로 한 <Traditional & Innovation> 마지막으로 현대 일본 패션에서 주목할만한
거리패션과 로리타 현상, 코스프레 등의 문화사회적 현상들을 중심으로 다룬
<Cool Japan> 섹션이다. 우리시대의 쿨함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코너여서 전시도록을 받고 이 부분을 유심히 봤다.
올 2011년 S/S 시즌 컬렉션 북을 살펴보다 문득 들었던 생각은
일본 패션이 서구 유럽을 강타했듯, 한국 패션은 서구에게 어떤 상상력의
지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였다. 이번 시즌을 보니, 한국의 갓과 여밈선을 이용해
컬렉션을 구성한 외국의 디자이너가 있었다. 뉴욕의 한국박물관을 이잡듯 뒤졌다고 했지만
자료의 부족 때문인지, 컬렉션 전개가 미흡한 느낌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들이 점점 더 한국의 쉬크한 매력에 빠져들고, 우리의 것을 차용해
서구의 패션으로 결합시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언젠가는 우리도 예술의 진주만을 습격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그 날을 위해 뛰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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