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짇고리를 샀어
초등학교 5학년 실과시간, 처음으로 단추다는 걸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이후 다른 건 몰라도 단추를 달거나 헤어진 것들을 이어 붙여 기우는 재미를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봉제를 제대로 배운 건 아니지만 타인의 옷을 보면서 실밥이 터지거나 혹은 4개 구멍 단추의 한면이 떨어져 위태위태할 때, 유독 눈이 갔던 걸 인정해야겠습니다.
최근 인터넷을 뒤지다가 포슬린으로 만든 앤틱 느낌의 반짇고리가 있어 새로 구매했습니다. 반짇고리의 여밈이 가위의 형상으로 되어 있는 점이 눈에 들어왔지요. 가지고 다닌다기 보다는 그냥 예쁜 소품으로 갖고 싶었는데 문제는 소재가 포슬린이란 점이죠. 말 그대로 도기입니다.
반짇고리를 이상하리 만치 좋아했던 건 큰 가방 속에 넣어다니면 사실 쓸일이 많지 않지만, 꼭 한번 쯤, 실밥이 터지거나 옷의 일부가 떨어졌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임시처방이라도 하기엔 이 보다 좋은게 없습니다. 엄마의 함을 뒤져 항상 바늘쌈지와 골무, 여러가지 실들이 놓인 풍경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입었을 옷들, 어린 시절 덮던 이불이며 이 모든 것들의 마무리엔 저 실과 바늘이 함께 했지 싶습니다.
'내 기억의 황금빛 화석'을 이루는 생의 소품인 셈이지요. 이번 아름다운 상자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림과 골무액자 중 어떤 것을 할까 이걸로 한 3일은 고민을 한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판화가의 AP판 을 내눃아야 하나 아님 소목장이 나무결을 깍아 만든 액자에 한땀한땀 골무를 이어붙여 만든 액자를 낼까.......영국와 프랑스는 공히 침선 장구를 항상 이 포슬린 반짇고리에 담아 다녔습니다. 한국만 침선장이 있는게 아닙니다. 결국 침선장이란 것도 역사를 보면 바느질 솜씨가 좋아 귀족 가문으로 불려다니며 옷과 이불등을 제작하던 서구의 침선장들이 있었죠. 이들이 르네상스를 넘어 바로크 시대로 가면 본격적으로 일종의 조합도 만들고 오늘날의 '오트 쿠튀르'의 전신을 이루게 되요. 침선의 기본은 무엇보다 바늘과 실입니다. 한자 뜻 부터가 바늘과 실을 의미하잖아요. 봉제와 자수 장식성 공예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라, 사실 이 침선은 서구의 오트 쿠튀르와 같다고 봐야 합니다. 마름질한 옷감의 가장자리가 풀리지 아니하도록 꿰매는 휘갑치기, 사뜨기 기술은 우리의 전래침선 기술이자, 서구와 비견할 수 있는 우리만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넘쳐나는 중국산의 세계 속에서.......골무를 찾아간다는 것은)
이 침선장구에 꼭 들어가야 할 또 다른 소품이 있습니다. 바느질하는 여린 여인의 손을 보호하는 골무입니다. 최근 인사동에 나가면 정말 많은 골무들을 기념품처럼 팝니다. 다들 중국산이죠. 2천원에서 만원짜리에 이르기까지 참 잘도 만들어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진짜 골무의 의미도, 혹은 우리나라의 각 지역별로 어떤 골무 문화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화려한 색실로 수놓아 만든 골무 정도지요. 공산품이 되어버린 골무 앞에서 슬픈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사랑과 기억조차 공산품이 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반짇고리에서 또록 굴러 떨어진 / 가죽골무 / 바짝 마르고 뻣뻣해도 / 여전히 엄마의 검지 / 엄마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면 / 고즈넉한 풍경 속 슬픔은 /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지고 / 검지 뒤쪽으로 난 엄마의 길 / 비밀 부호처럼 희미하게 떠오른다 / 아이처럼 뒤뚱뒤뚱 / 한 걸음씩 걸음을 떼다 멈추어 서면 / 실핏줄처럼 퍼져 가는 섬세한 손놀림 / 아직도 늙지 않은 엄마는 새파란 시간의 그물을 곱게 짜 물려 입을 배냇저고리 하나 깁고 있다 / 엄마의 가죽골무 / 나의 태궁은 오늘도 따뜻하다.
강학희 <엄마의 골무> 전편
경북 상주 지역의 골무는 실의 또아리를 틀어 바늘에 찔릴 수 있는 부분을 이중으로 보호하는 형태입니다. 몇 겹의 천을 싸고 위에 백색 실로 또아리를 틀고 그 위로 감치기를 해서 완성을 합니다. 흰색 실을 바탕으로 4 가지 색을 기본으로 배색하는 구조이지요. 백색 실 사이로 또 배색의 실을 넣어 장식한 것이 이 지역의 특색입니다. 삼각형으로 천을 잘라 좌우 대칭형으로 구성합니다. 인사동에서 2천원에 파는 골무는 바로 이 또아리 처리가 안됩니다. 공산품의 한계지요. 만 이천원 정도에 파는 골무 중엔 종종 이 처리가 되어 있긴 합니다만, 이 또한 공산품입니다. 배색과 감치기 처리의 마무리 수준을 보면 다 드러납니다. 골무의 가장자리를 엮는 실의 비탈길을 따라 가다 보면, 그 골무를 꼈던 여인의 삶이 보입니다. 수많은 찔림 속에서 한땀 한땀 완성해간 우리 내 가족의 이부자리며 옷자락의 흔적이 녹아있는 것이죠. 그래서 소중한 겁니다. 요즘 사람들은 그저 돈만 있으면 다 살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관계 중독 사회를 살아가면서 받는 상처들을 돈이 대행해서 처리하거나 치유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어린시절 유독 손가락에 과자를 끼워먹는 걸 좋아했던 버릇 때문인지 이 골무만 보면 손가락에 끼운채 한참을 보곤 합니다. 찔림을 막아주는 방패막이. 골무가 여전히 제 망막속에 맺히는 건 상처로부터의 보호란 기호적 의미 때문일 것입니다. 초록과 빨강, 노랑과 분홍을 기본으로 5개의 골무를 액자 속에 박아넣었습니다. 당신의 다섯손가락이 이 신산한 삶의 과정속에서 오롯히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이 풍진 세상에 태어나 영혼의 골무 하나 끼고 오늘 하루 살아내야 겠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나를 지켜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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