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갈리아노의 해고, 그 파장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들
온라인이 뜨겁다.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크리스챤 디올 사로부터 '정직' 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새벽까지 원고를 쓰다 트위터를 통해 디올(Dior)사는 최종적으로 그의 '해고' 통지와 함께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대체 무슨 행동을 한걸까? 지난달 24일 밤(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도심의 한 카페에서 옆자리에 있던 한 남녀에게 '나는 히틀러를 사랑한다'라고 말했단다. 동석자들에게 '너같은 유태인들은 엿이나 먹으라'며 갖은 비난을 쏟아냈던 모양이다. 이들은 한 명은 프랑스, 또 다른 이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유태인이 아니었지만, 그의 취기어린 행동을 비디오로 담아 공개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반유태주의적 발언은 징역 6개월형이 가능한 범죄다. 본인은 혐의를 극구 부인했지만 '반유태주의'적 발언 앞에 디올사는 '지금껏 디올사가 추구해온 가치에 역행하는 발언'이라며 일언 지하에 그를 해고시켰다. 배우 나탈리 포트만은 이 소식에 경악하며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뿌리깊은 배제와 편견'을 드러내는 사건이라며 논평했다. 포트만은 미스 디올 쉐리 향수의 얼굴이다. 그녀는 줄곧 오스카 상 수상식에서 디올의 옷을 입었지만 사건의 충격으로 이번 아카데미 수상식엔 영화 <블랙 스완>의 디자이너 로다테의 옷을 입고 등장했다.
존 갈리아노는 누구인가?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는 1960년 11월 28일 영국 지브롤터 지역에서 스페인 계통의 엄마와 영국 토박이자 배관공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출생했다. 최근 패션계의 거대권력을 이룬 영국의 세인트마틴 예술학교에서 의상을 공부하고 1984년 일등상을 받으며 졸업했다. 87년과 94년 95년, 97년 연속해서 '올 해의 영국 디자이너'상을 수상할 만큼 재능과 실력 모두를 가진 그였다. 그의 졸업작품전 테마는 <앵크르와야블> 불어로 '놀라운 사람'들이다. 이 용어는 원래 프랑스 혁명 이후 변화된 남성의 옷차림을 뜻하는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옷을 좋아했다. 복식의 역사로 부터 차용한 주제들을 변주하는 놀라운 능력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매년 컬렉션을 볼 때마다 다양한 역사적 상상력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영국 특유의 펑크정신과 저항, 기존 체계에 대한 조롱 등 그가 보여준 행보는 가히, 영국 패션의 전성기를 이끄는 견인차였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말 그대로 영국패션의 시그너쳐가 되었다. 2009년 1월 그는 프랑스 정부로 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레종도뇌르 훈장까지 하사받는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이 정도의 영예를 누린 이가 있을까 싶다. 지방시의 후계자였던 고 알렉산더 맥퀸도 이 정도의 호사는 누리지 못했다. 그만큼 존 갈리아노는 패션의 전설이었다.
유태인을 비난하면 잘린다?-안티 세미티즘을 둘러싼 오해
존 갈리아노가 기소된 이유는 <반유태주의> 때문이다. 사람들은 의아해할지 모른다. 왜 유태인을 비난하는 것이 이렇게도 자신의 이력까지 무너뜨리는 사회적 파장을 낳는지. 반유대주의의 의미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유럽인들이 왜 이 용어 앞에 몸서리를 치는지, 패션이 전설 조차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유태주의(anti-Semitism)은 유대인에 대한 공공연한 편견과 적대감을 뜻하지만 그 배후에는 인종적 배경, 문화적 종교적 차이에 기인한 뿌리깊은 '인간증오'를 바탕으로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보여준 태도가 이 반유태주의다.
반 유태주의는 역사만큼이나 그 뿌리의 스펙트럼이 넓다. 유태인을 향한 증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입말에서 부터 유태인 공동체에 대한 집단적인 군사행동, 경찰들의 폭력을 다 포함한다. 인종주의 발언은 한국사회의 성희롱 발언만큼, 강력한 제어력을 발휘한다. 결국 성희롱이란 것도 완력이나 사회적 권력을 가진 이가 자신보다 못한 이에게 가하는 폭력이듯, 유럽은 인종을 근거로 한 부당한 편견의 이미지를 유포하거나 발설할 때 철저하게 제지한다. (물론 이 부분에서 프랑스는 샤넬에 대해서만큼은 이중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녀는 나찌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열심히 부역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유독 이 부분을 언급하길 꺼린다) 미국에서도 과학계의 전설이라 불리던 제임스 듀이 왓슨(1962년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으로 노벨상 수상) 도 흑인에 대한 인종편견이 담긴 발언을 한 탓에 연구소장에서 사임했다.
1096년 1차 십자군 전쟁 시절의 유태인 박해에서 부터 시작된 이 반 유태주의의 역사는 1290년 영국에서 '유태인 전원을 추방하는 사건'으로 연결되며 1492년에는 스페인에서의 '유태인 추방' 과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 나찌의 홀로코스트에 이르기까지 유서깊다. 대전 이후 유럽은 반유태주의가 파시즘과 나치즘과 같은 극단적 증오와 결합되어 빚어낸 인간역사의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반유태주의에 대한 제동을 걸었다. 반유태주의에 관한 오해 중 하나가 유태인에 대한 증오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이유를 '유태인이 경제적인 힘을 통해 미국을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믿는 것이다.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반유태주의란 단순하게 유태인 핍박을 넘어 사회적 소수자, 인종을 매개로한 인간에 대한 극단적 증오 등을 모두 아우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프의 슬픈 역사-패션, 인간을 배제하다
13세기 독일에선 이 유태인들과 유랑민, 매춘부, 나병환자들에게 줄무늬 옷을 입힘으로써 일반 시민들과 '그들'을 구분했다. 옷을 통해 인간을 배제하는 표식을 다는 역사를 시작한 셈이다. 지난 학기 학생들과 <패션, 영화에 홀릭하다>를 강의하면서 마지막으로 봤던 영화가 있다. 바로 마크 허먼 감독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내 눈에 들어온건 아우슈비츠의 유태인들이 그들을 식별하기 위한 기호로 사용한 저 줄무늬 옷이었다. 유태인이 아니어도 그 줄무늬 옷을 입는 순간 '유태인'이 되어 가스실에서 죽는다. 이 간단한 진리가 영화 속에선 슬픔을 자아내는 가장 비극적인 코드로 사용된다. 개인적으로 존 갈리아너의 패션 세계는 존경하지만, 역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그는 누구보다도 복식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디자이너일텐데 왜 옷에 담긴 그 역사를 공부했을 그가, 반유태적인 발언을 했을까다. 인간의 실수가 역사를 통해 반복되는 이유일까?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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