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는 연예계와 그리 다를 바가 없는 시장이다.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반짝이는 재능을 가진 재원들이 이곳에
진입하고 퇴출당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전설의 쿠튀리에들 또한 첫 등장과
더불어 많은 소문과 스캔들에 시달렸다. 화려한 광채의 세계, 우리는 그것을 흔히
글래머(Glamour)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글래머란 단어에 '어둠'이란 이중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말해주는 패션 저널리스트는 드물다. 올 봄/여름 시즌 가장 기다렸던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보고 있다. 바로 알렉시스 마빌이다.
파리 의상조합학교(Chambre Syndicale de la Haute Couture)를
졸업한 건 1997년, 프랑스 역사를 통털어 최고급 실크산지였던 리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웅가로(Ungaro)와 니나리치(Nina Ricci)의 패션 하우스에서 도제 생활을 거쳤다.
파리 의상조합은 다른 여타의 패션학교와 달리 전통재단기술의 발전과 계승이란 목표를
위해 설립된 학교다. 전통적 입체재단을 통한 의복구성이 주 수업이다 보니
실제 패션의 장인들에게 직접 수업을 듣고 그 아래서 배운다.
알렉시스 마빌은 크리스티앙 디오르 사에서 9년을 일했다.
그곳에서 아트 디렉터겸 수석 디자이너인 존 갈리아노의 패션쇼를 위해
섬세한 보석 디자인을 맡았다. 또한 하이디 슬리만이 관장하는 디오르 옴므 라인을
맡아 분주하게 디자이너로 성장하기 위한 자양분을 섭취했다. 그는 요즘 파리 패션계에서
주목 받는 신인이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최근 등장한 신인 중 오트쿠튀르를 가장 사랑하는 남자라는
별칭까지 붙여주었다. 그는 항상 현란한 댄디의 정신과 로코코적 휘발성, 기괴함을 사랑한다. 그러나 이
32살의 떠오르는 패션계의 스타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또 다른 별칭은 '장인'이다. 완벽한
재단기술과 신선한 디자인 감각, 무엇보다 장식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그다.
올 2011년 봄/여름 그가 보여주는 라인은 첫해 파리 패션계를 강타한
섬세함과는 다른 성향의 디자인을 보여준다.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멋. 언제든 옷장
에서 꺼내어 편안하게 다른 옷과 교차해 입을 수 있는 아이템들로 정리했다. 그러나 이렇게만
풀어내기엔 왠지 미진하다. 그의 옷을 자세히보면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옷을 한땀 한땀 설계하고
구성하는 누적된 시간의 몫이 그대로 그러난다는 점. 전통 재단기술을 철저하게 마스터한 이들이
새롭게 변하는 육체의 형상에 따라, 언제든 유연하게 변주할 수 있는 능력을 선 보일 수
있다는 점에 난 공감한다. 실루엣에 묻어나는 정교한 커트는 바로 사진작가
어빙 펜이 즐겨 사용한 조명 효과에서 영향을 얻었다.
면과 린넨, 저지 소재를 주로 이용한 이번 컬렉션은
신고전주의 시대의 단아한 정념을 품은 실루엣으로 더욱 눈이 부시다
여기에 실크처럼 부드러운 가죽과 데님을 사용해 만든 작품도 눈여겨 볼 만한다.
근대 프랑스의 화가이자 직물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린 라울 뒤피의 프린트를 적절하게
작품에 삽입, 자유롭고 전도유망한 시대의 정신을 그렸다. 예전 너무나 여성적이던 실루엣은 이번
봄/여름엔 활동적이고 현대적인 라이프 스타일로 새로운 적응단계를 거친 듯 하다.
라울 뒤피는 인상파의 영향으르 받아 그림을 시작했지만 이후 마티스의
야수파를 거쳐 다시 입체파의 영향을 받기까지, 다양한 미적 변천을 거쳤다. 그는 직물
디자이너로 작업하면서 입체적인 선묘가 잘 드러나는 프린트를 주로 선보였는데 이번 알렉시스
마빌의 작업은 이 프린트의 영향을 그대로 스커트에 찍은 것이다.
그는 리본에 미쳐 있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컬렉션에서 1500개의
리본을 단 것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디오르에서 보낸 9년의 시간동안
악세서리 부문에서 일하며 디테일로 사용하는 보석들을 만든 탓이기도 하지만 그는 리본을
모든 옷에 마치 브로치처럼 단다. 컬렉션의 정신을 반영하는 가장 좋은 소품이라니 우선은 지켜보는 수 밖에
그는 리본을 가리켜 '부르주아 계층의 허위를 비꼬는' 가장 좋은 소품이라고 소개한다. 뭐 그리 틀린 말은 아닐거다.
바로크에서 로코코까지 왕과 귀족들은 하나같이 앞다투어 구두와 드레스, 모든 소품에 장식용 리본을 달지 않았던가 말이다.
이번 드레스와 함께 선보인 힐도 그리스 시대의 신발 크레스핀의 형태적 특성을 본받아 디자인했다.
발의 중심점을 따스하게 껴안으며 당당한 실루엣을 그리는 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목선을 파이핑처리해서 단아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전통 아플리케 자수를 소매에 처리하여 여성적이면서도 깔끔한 분위기를 선보였다.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데님 소재의 바지와 뷔스티에 느낌이 나는 상의
상체를 연한 황색 실크위에 갤론으로 수를 놓은 프랑스 풍의 볼레로를 입혀 보강했다.
옷은 항상 전면과 더불어 후면도 함께 살펴야 한다.
흑요석과 다이아몬드 큐빅으로 가지런히 배열한 볼레로 배면의 곡선이
눈에 들어온다. 더불어 뷰스티에 후면의 곡선을 더욱 살려줄
조임선에서도 섹슈얼리티가 그대로 우러나온다.
그의 옷에선 봄의 시간을 지나 여름날의
뜨거운 열정이, 옷을 통해 마구 마구 키스를 퍼부을 것 같다.
라울 뒤피의 텍스타일 디자인에서 영향을 받은 흑과 백의
대조가 이뤄내는 효과에 주목해보라. 물론 여기에도 디자이너는 자신이 너무나
좋아하는 리본을 달았다. 이 정도면 거의 병에 가깝긴 하다. 프랑스 패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리본이 자주 사용되던 시기 이후엔 꼭 혁명이 있었다. 지나친 여성성은 인간을 배려하고 안기 보다는
병적일 정도로 자폐된 공간에 스스로 갖혀, '자신만의 세계'를 꿈꾸며 사는 인간들의 성격이었다.
이번 알렉시스 마빌의 작업이 마음에 드는 건, 그런 부르주아 사회의 위선을
조금은 간편하고 가볍고, 명징하게 털어내고 있다는 점일 거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패션계의 스타가 되기 위해 저 무대로 뛰어든다
스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뭘까? 학벌? 아니면 툭하면 언론이 자주 써먹는
미인 디자이너 혹은 엄친딸 이따위의 수사학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타란
시대의 좌표를 읽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패션이 시대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기에
더욱 그렇다. 과거의 패션에서 정수를 뽑아 적용할 때도 오늘날, 그 과거가 줄 수 있는 가르침을
현대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런 사람. 때때로 과거를 발굴하기도 하지만 당대의 시점에 맞춰
뒤집고 비틀고 전복할 수 있는 용기와 맞섬. 스타가 되어 사람들에게 희망의
좌표를 제시하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정신의 태도다.
Image Courtesy by Alexis Marbille
(디자이너와 홍보팀에 직접 허락을 구해서 등재합니다. 허락없이
함부로 사진을 퍼가서 올리셨다가 큰코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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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본격적으로 트위터를 시작했습니다. 페이스북에 이어
저도 쇼설 네트워크의 바다로 뛰어드네요. 아직 모르는게 너무 많지만 함께 해주세요.
https://twitter.com/fashioncu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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