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인체의 집을 짓는 과정이다.
우리는 천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는다. 옷을 만드는 과정은
집을 짓는 과정과 그리 다르지 않다. 옷은 제 2의 피부로서 인간의 몸을
건축하고 영혼을 조형한다. 절대로 폄하할 수 없는 그릇이다.
최근 동경에서 11월부터 열린 이세이 미야케 전이 마무리 되었다.
파리를 강타했던 일본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세이 미야케다. "나는 늘 한 장의 천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옷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
이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는 디자이너. 패션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분이라면 그가 10년째
실제로 자신의 컬렉션을 하지 않는 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을 터. 그러나 2년 전 그는
돌아왔다. 132.5라는 독특한 숫자를 딴 신규 라인의 수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번 도쿄 미드타운 디자인 사이트에서 열린 <Reality Lab 창조/재창조>展은
그가 오랜 동면의 기간을 깨고 다시 한번 과학과 예술의 결합을 꿈꾸는 그의 비전을 선보인
전시다. 그래서인지 현실을 만드는 실험실이란 뜻에서 랩이란 표현을 섰다.
이세이 미야케는 이번 전시를 통해
"패션 디자인은 상상을 현실화하고 소비자에게 전해질 때까지
계속 이어지는 적극적인 구애"라는 자신의 관점을 관철시킨다. 이 정도의 철학이라면
언제든 그 구애를 향해 손을 뻗고 싶을 정도다. 무엇보다 디자인의 미래란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다는
점에서 그의 실험에 항상 귀추가 주목된다. 미야케 디자인의 핵심에는 일본의 종이접기
바로 오리가미가 있다. 극도의 섬세한 주름접기는 바로 이 종이접기 방식에서
나왔다. 일본의 오리가미 방식에는 우리가 미쳐 알지 못하는 요소가
숨겨져 있다. 바로 칼과 가위로 종이를 자르지 않고도 접기만
으로도 형상을 재현해내는 기술이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런 오리가미 방식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확장한 전시다.
예전 일본의 수제 종이인 아부라 가미(우산 제작에 사용되는 종이)를 이용해 촘촘한
주름을 만들었던 그는 이번 전시에선 도대체 정체가 뭔지 모를 차곡차곡 접혀진 한 장의 보자기를
들고 나왔다. 천 조각의 끄트머리를 잡고 올리면 한 벌의 의상이 짠 하고 나타난다.
작품이 하늘에서 뱅그르르 돌면서 펴지고 자연스레
한 벌의 의상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다. 그때서야 왜 132.5란 숫자를
붙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한장의 천(1)이 입체적 형상(3차원)이 되고 다시금
평면(2차원)으로 돌아가는 132 5 의상의 의미다. 이때 마지막 5란 숫자는 한 장의 천이
한 벌의 의상으로서 누군가의 모을 감싸는 오브제가 되었을 때,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5차원)이
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옷 한 벌에 한땀 한땀 담긴 건축 조형의 의미를 되새김질
해볼 수 있는 멋진 전시인 이유다. 이런 전시를 볼 때마다 부럽다.
한 장의 천은 질료다......그 속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숨쉰다.
종이접기란 것도 그렇다.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의 힘을 갖고 접는가에 따라
향후 튀어나올 대상의 그림이 달라진다.
접히는 과정에서 주름은 만들어진다.
그 주름속엔 다양한 삶의 의미들이 촘촘이 배어나기 시작한다.
쓰쿠바 대학의 미타니 준 교수와의 만남은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삶에서 가장 큰 영감이었다.
종이공예를 좋아한 미타니 준은 자신의 취미를 과학화 하고 싶었다.
입체 종이접기의 도면을 설계할 수 있는 컴퓨터 그래픽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Reality Lab이라는 프로젝트 팀을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 팀의 모토가
참 좋다.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 위한 디자인의 역할을 되살리는 것. 결국 일본 전통 공예와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과학화하려는 노력이다. 패턴 엔지니어와 텍스타일 엔지니어가 함께
협업을 통해 지금 보시는 종이접기 방식을 개발하고 이를 한 장의 천에 직접
적용해 다음과 같이 눈을 뗄 수 없는 매혹적인 옷으로 변모시켰다.
혹 이 전시 소개를 보고
이깟게 뭐야라고 폄하하는 분도 있을거다
요즘처럼 대중을 위한 패스트 패션이 일종의 대세가 되고
한 시즌에도 여러번 상품이 갈리는 시대에서, 종이접기니, 주름이니
인체를 하나의 건축물로 생각하는 사유가 얼마나 힘을 잃는지도 잘 안다. 그러나
한 마디만 하고 싶다. 맨날 쉽게 입고 쉽게 버리는, 그래서 패셔니스타란 딱지를 얻고 싶은
당신들이 버리는 옷이 일년에 얼마나 많은지......한번 쯤 반성해보라고 말이다.
당신들이 버리는 것들, 쉽게 소비하고 버리고 명멸시켜 버리는 것들
때문에 이 모든 걸 안고 얼르며 살아야 하는 지구가 참
많이 아프다는 걸......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에코니, 친환경이니 뭐니 하는 개념들을 나열하기 전에
우리의 옷 입는 방식 하나부터 고치면, 많은 게 나아진다. 종이접기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재단을 통해 버려지는 천이 없이
한벌의 옷으로 완성되는 그 철학에 있다.
많은 걸 쉽게 소비하고 쉽게 버리고, 그렇게 인간의 관계도
변모한다. 한 벌의 옷을 입고 시즌이 되면 바꿔입듯, 사랑도 그렇게
버리고 명멸한다. 한 벌의 옷을 입을 때, 고를 때 우리가 더욱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더욱 견고하게, 한 장의 천으로 자투리로 버려지는 것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몸이 한 채의 집처럼 견고하게
오래 오래 버텨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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