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델피르와 친구들 展 리뷰-세계최고의 사진을 만나는 방법

패션 큐레이터 2011. 1. 7. 21:27

 

 

델피르와 친구들 전에 다녀왔다.

사실은 오프닝날 이미 다녀왔는데 이제서야 포스팅을 한다.

많이 게을러진 탓이다. 요즘 정신의 각질이 수도 없이 두텁게 생겨버린 탓에

마음 한구석을 감도는 쓸쓸함을 이기지도 못하고, 이렇게 작은 글을 쓰는 것으로 연명하고 있다.

한때 사진에 관한 글을 열심히 썼던 적이 있었다. 캐나다에서 유학하던 시절, 도서관에

널브러진 수많은 사진북들과 카탈로그를 하나씩 재미삼아 번역하면서

사진작가들을 연구하는 즐거움이 솔솔했었다.

 

 

이미 대학시절 열화당이란 출판사의 사진문고판 작품들을

즐겨읽었던 나로서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 셈이었다. 그때 사진문고판이

바로 오늘 소개할 델피르란 출판업자가 만든 <포토 포슈>란 걸 알게된 건 그리 오래지 않는다.

 

 

요즘처럼 사진으로 먹고 살기 힘든 시대가 있나 싶다.

누구나 사진작가라고 지칭하고 다니는 시대다. 디지털의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무한촬영과 삭제가 가능하니, 예전 힘들게 필름으로 찍어가며

익혔던 감을 요즘은 더욱 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일거다. 사진기 기종도 점점 좋아져서

요즘은 기능에 대한 세부적인 지식이 없어도 아예 사진기가 알아서 포착해준다. 참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진기 기종은 좋아지고 사진 자체가

대중화 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사진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사진의 존재이유와 그것을 어떻게 읽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 왜 찍어야 하는지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우리는 여전히 어색한 손머슴들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델피르와 친구들>은 바로

포토 포슈(주머니 속 사진이라는 뜻) 시리즈를 기획하고 많은 신인 사진작가들을

발굴해 사진예술의 영역을 넓혔던 로버트 델피르의 평생의 업적을 살피기 위한 특별전이다.

그는 주머니에 시집처럼 넣어다닐 수 있는 사진집을 기획, 언제나 사진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고 이로 인해 사진의 대중화를 이뤄냈다.

 

 

많은 관람객들이 놓치기 쉬운 것 중에 하나가

세계 최고의 사진을 만나는 방법이란 부제의 전시에 들어가

다소 산란하게 정리된 전시장을 거닐며, 사진작가의 작품에 신경을 쓰는 나머지

그가 편집자란 사실을 망각하는 점이다. 이 전시는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전시지만

또한 사진과 잡지, 책과 같은 언론매체들이 어떻게 어우러져야 하는지 그 편집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기에 꼭 추천한다. 이 점을 간과하지 말고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는 편집자로서 많은 사진작가들을 발굴하고 마케팅을 했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가 사진사를 통해 배운 요제프 쿠델카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물론 이건 지나친 예단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사진을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

기술적인 내용들은 책을 통해 조금씩 배웠지만

이건 엄밀하게 사진에 대해 배운게 아니다. 사진을 배운다는 건

사물을 보는 방법을 다시 한번 나 스스로 정립한다는 뜻이다. 우리말에도 있지 않은가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 이 말......참 무서운 말이다. 뒤집기 어려운.

 

 

밀도높은 패션사진이나 다소 지루한 다큐 영상에 새로운 바람을 넣고 싶다면

이번 전시는 꽤 재미있는 항독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사진이란 영역이 지금까지

다른 매체와 어떻게 협업을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언어를 정립해왔는지 한번 쯤 생각해보기엔 안성맞춤인 전시일 테니 말이다.

 

 

사진 속에 빼곡히 정리된 책들이 바로 포토 포슈다. 서점에서

이와 비슷한 사진집들을 보았을거다. 바로 그 책의 원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항상 매그넘의 사진작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작업해왔다.

그에게 있어 작가들과의 교류는 하나의 살아가기 위한 유기체의 호흡방식이었다.

때론 이념적 차이로, 미학적인 차이로 열띤 싸움도 벌였을거다. 그러나 공동작업의 과정에서

이런 일은 언제든지 벌어진다. 델피르는 우정과 합의는 다르다고 말한다. 우정은 깊은 이해심에서

시작되지만 합의는 일종의 '나눔'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꼭 사진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전문가들과의

공동작업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주고받기를 통한 합의가 아닌, 깊은 이해심이다. 나이가 들수록 타인을 깊게 이해하는 것이

쉬우면서도 또한 어렵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단면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는 나이여서 겠지만

무엇보다 타인을 이해하기 보다, '나를 먼저 인정하라'는 욕망이 강한 탓일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이 전시 한번 꼭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사진보다 작업 속에 묻어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심을 배우는게 이번 전시의 핵심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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