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내 안의 소리를 듣는 법

패션 큐레이터 2010. 9. 6. 02:08

 

 

스테파노 보나지_The last day on earth 01_디지털 C프린트_60×40cm_2008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오전시간을 강타한 뇌우가 잠시 정전상태다. 글을 쓰는 지금, 밤이슬과 뒤섞여 혼음하는 벌레들의 소리만 비릿한 내음을 내며 울려퍼진다. 글을 쓰기 싫을 때 종종 눈을 감고 집에 모든 불을 끈 채, 귀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시각과 혼융되어 사물을 인식할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느낌이 마음 깊숙이 차오른다. 내면의 소리를 듣는 일은 쉽지 않다. 과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개인적 지식>에서 대상과 그를 설명하는 연결어로 구성된 언어의 개념을 이해하는 일만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깨달음은 단순히 텍스트를 생산하는 언어들의 규칙과 문법만을 이해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깨달음의 차원은 항상 상황에 달려있고, 깨달음이 주어지는 순간 조차도 이 법칙을 따른다. 최근 글이 자꾸 막히는 느낌 때문에, 귀에만 의존해 외부의 소리와 내 안의 소리가 만나는 접점의 잡음을 잡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소리를 평가하는 일을 좋아한다. 세상의 모든 음에는 세가지 영역이 결합된 것이다. 고역과 중역, 저역대의 소리가 합쳐져 나온다. 전문가들은 항상 소리를 듣고 각 영역에서 나오는 소리를 분리해서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지식도 그렇고 각종 인터넷에 떠도는 모든 유령같은 말들도 그렇다. 인터넷은 활자화된 유령을 만나는 공간이다. 시각과 인식이 연결되어 있다 보니 내밀하고 세미한 언어의 뼈들이 부딛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시인 기형도가 소리의 뼈가 있다며 외쳤던 건 아마도 이런 이유일지 모른다.

 

스테파노 보나지의 사진을 보는 시간, 실재와 환상을 넘나들며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세계를 '지구 최후의 날'이라는 관점을 통해 보여준다.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실재 사물들의 세계가 사뭇 신기하다. 왜 그는 의자와 텔레비전 가방을 가져다 놓았을까? 의자는 누군가를 위해 준비한 자리이거나, 혹은 우리가 지금껏 점유해온 권력과 영역들의 은유일터. 텔레비전은 시각에 사로잡혀 내밀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온 현대인에 대한 반성이다. 그렇다면 가방은 뭘까? 이 세상 이후의 어떤 세상이 있다는 걸 말하려는 걸까? 여행용 가방속에 무엇을 챙겨넣을 지 고민해 보라는 뜻일까? 복잡하다. 작가의 시선 앞에 오늘은 조용히 말을 아끼고 싶다.

또 한주가 시작된다. 언어를 아끼고, 타인의 말을 듣는데 더욱 신경을 써야겠다. 그렇게 한주 살아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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