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비카 이바노바의 사진 세계-못으로 그린 과로사회의 풍경

패션 큐레이터 2013. 6. 18. 00:41


현대 한국사회의 표제어를 뽑으라면 역시 과로사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승철 교수님이 쓴 <피로사회>를 넘어 한국사회의 정신적 단면을 설명하는 책이

또 나왔더군요. <과로사회> 네 음절의 제목을 똑똑 끊어 읽어보는 데, 가슴 한구석이 애립니다

예전 뉴질랜드에서 살 때는 서점인 윗쿨만을 제외하곤, 7시면 왠만한 술집이며 다 문을

닫아서 조용했지요. 물론 어학연수를 온 젊은 친구들은 이런 문화가 짜증난다

며 제게 이런 재미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너무 심할 정도로 

야근을 자주하고, 노동강도가 강한 것은 아니냐고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도

이건 아빠의 성향이나 성격, 혹은 가부장 운운하기 전에, 솔직히 아이들과 놀고 싶어도 

너무 늦게 퇴근합니다. 이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구조도 참 답답하고, 문제는

기업들은 이걸 너무나도 당연스레 말하는 거죠. 농업적 근면성이란 말.



저도 한때는 일중독자였습니다. 컨설팅 회사를 다녔고, 전자회사의 전략기획과

해외마케팅의 수장을 지냈죠. 처음에는 외국 출장가는 재미로 한 3년은 그렇게 살았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주말을 꼭 끼고 가는 출장은 언제부터인가 쉼의 시간을 

빼앗아 가더군요. 우리는 흔히 충격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란 단어를 언론에서 심심찮게 발견합니다. 

특정 상처, 마음의 아픔을 경험한 이후, 우리도 모르게 이와 비슷한 경험에 노출되거나 대면

할 때, 우리 스스로 피하게 되고, 두려움에 떨게 되며, 그 상처가 타인을 향한 원망과

폭력으로 나오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첫 직장을 패션 바잉이란 멋진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두었을 당시, 저는 몸이 매우 불어있었죠.



먹지 못하는 술, 야근, 코드 따기, 신상품 정리와 기획 등 무거운 회사

내의 숙제를 다 풀었고, 칭찬을 받고, 기획대비 수익율이 좋은 평가를 받아도 

언제부터인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시간은 회사를 다니는 것만으로 충족되지

않고, 퇴근 이후의 만남과 회식, 다양한 방식의 상호교류를 통해 확장되어야만 했습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선 의무였지요. 그걸 당연하다고 믿으니, 직장 내 동료들 외에는 다른 관계

는 소원해지기 일쑤입니다. 토요일 그나마 빨리 퇴근하는 날에는 저도 뭔가 배우

고 싶고, 그렇게 학원도 끊고 해봐도 다닐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게 실제죠.



이런 과잉노동시간에 대한 반성이란 건 꿈꾸지도 못했습니다. 적어도 

조직의 논리를 배운 제겐 더더욱이죠. 조직 안에서 한정된 자원과 의사결정권

을 놓고 경합하는 모델을 만들고, 그 속에서 성공의 피라미드를 오르기 위해서는 야근이나

오랜 동안의 노동시간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작 창의적인 

바잉 작업, 구매를 위한 연구나 또 다른 저 만의 개발과정과 시간은 얻기가 힘들었습니다. 정작 열심히 한들

조직은 개발한 능력을 결코 중용해주지 않았고 말로는 전문가를 표방하지만, 정작 전문가가 되면 

조직을 떠날거라고 믿는 정서가 회사에 너무 많았다는 것이죠. 그것이 우리사회의 기업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동일 수준의 노동과 그 단위노동의 강도만 높일 뿐, 

실제로는 창의적인 작업이 결코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영선 교수님이 쓴 <과로사회>는 우리에게 결국 우리가 가진 인생관

노동관, 시간에 대한 관념을 근본적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절대공감

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어떤 사안에 대해 철저하게 두 가지 방법의 해결책만을

내놓았던 것 같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책은 이제 중년을 대상으로 한 '마흔은 아프다'

류로 지속적으로 변하면서, 결국 모든 상처를 해결해야 할 몫은 개인의 몫으로 환원하는 것이죠. 아니면 

구조의 변화만을 줄창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저는 구조만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좋아하지 않고, 개인으로 환원하는 

문제도 싫어합니다. 두 개의 문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에 대한 시각

타인들과의 경쟁을 바라보는 관점, 일을 생산적으로 하는 것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 리프레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말 그대로 다시 틀을 잡는 것입니다. 제가 

비카 이바노바의 사진작업을 보면서 느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매일 매일 



분쇄기를 향해 우리 몸을 찟고 발리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우리 안에 있는 노동에 

대한 생각, 연봉에 대한 생각, 참 다양한 생각의 실타래를 다시 풀어보고 싶습니다. 장시간

의 노동에 노출되면서, 자기가 몸담고 있는 큰 사회, 더 나아가 지역과 우리 삶의 모본과 갈등에 대해

고민하지 못하고, 아예 생각할 시간도 벌지 못한채,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자신들이 되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어깨에 못질을 하며, 무거운 것을 옮기는 우리들은, 죽는 날까지 노동의 죄악을 

껴안아야 하는 시지프스일까요? 일이 우리를 해방시킨다고 하는데, 정작 일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

하기 보다, 그 속에서 소진되어 가니 어디에서 답을 찾아야 할까요? 이바노바의 사진 속 못으로 형상화

된 인간의 모습이, 그들의 무거운 노동이 유독 눈에 걸리는 하루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