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아이 껴안은 이병헌-최고의 따도남 등극하다

패션 큐레이터 2010. 12. 19. 10:00

 

 

                          ⓒ 김홍기

 

인사동에 나갔습니다. 사진가 조세현 선생님의 '천사들의 편지'展을 보러 뉘엿뉘엿 겨울 햇살이 밤의 그리움과 만나는 시간. 인사아트센터를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이번 '천사들의 편지'전은 대한사회복지회와 조세현 작가가 부모 없는 천사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고양하고 새로운 양부모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전시회입니다. 올해로 8년째 한국의 톱스타들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참여해 조세현 선생님의 카메라 앞에서 아이를 안고 포즈를 취합니다.  

 

 

                          ⓒ 김홍기

 

대형 흑백 프린트로 찍어낸 프레임 위에는 아이들을 껴안은 스타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박혀 있습니다.

 

 

                          ⓒ 김홍기

 

사랑의 사진전 '천사들의 편지 8-행복'은 입양을 기다리는 영아들과 이병헌, 김희애, 이승기, 장근석, 이민정, 윤시윤 등을 모델로 촬영한 입양문화 활성화 캠페인 사진전입니다. 한국에서 스타들의 표정을 가장 잘 포착하는 작가 조세현의 눈과 손은 2003년부터 8년관 한국사회의 지지부진한 입양문제를 집요하게 다루었습니다. 입양이란 문제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일조했지요.

 

 

                          ⓒ 김홍기

 

저는 8년째 빼놓지 않고 사랑의 사진전을 보러갑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입양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견고한 가부장의 뿌리는 여전합니다. 혈연중심 사고 때문인지 입양에 관해선 세계 어느 나라보다 부정적 시각이 팽배한 한국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6.25, 전쟁의 곤궁 속에서 전쟁고아들은 속출했고 국내 사정상 수용할 수 없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해외로 입양되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고도 성장기인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해외 입양자 수가 더 늘었다는 것입니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미혼모와 아이들이 급증한 것이죠. 경제성장과 도시 발전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성의 상품화와 성 의식의 부재 또한 원인입니다. 최근엔 가정의 해체화 경향이 더욱 커지며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은 10년 전보다 58퍼센트가 증가했습니다.

 

 

                          ⓒ 김홍기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논리 앞에서 해체된 아이들이 새롭게 '입양아동'의 숫자에 포함되고 있는 것이죠. 혈연을 강조하는 문화 속에 비밀입양의 원칙을 준주했지요.성인이 된 아이가 '자신이 이 집안의 핏줄이 아니다'란 사실을 알게 될 때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문제도 흔하게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입양을 공개적이고 타인의 축복 속에 새로운 생명을 가정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생의 소중한 이벤트로 만들지 못한 탓입니다.

 

 

                          ⓒ 김홍기

 

최근 <메리는 외박중>에 출연중인 장근석씨의 표정이 아주 해맑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공개입양을 찬성하고 저 스스로 실천할 준비를 하려 합니다. ‘공개입양’이란 입양을 준비할 때부터 가족과 친지에게 입양을 알리고, 아이가 성장할 때 자연스럽게 입양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대학시절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입양될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놀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하면서도 아렸습니다.
 

 

                          ⓒ 김홍기

 

최근 홀트아동복지회 통계를 보니 국내입양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지요. 비밀입양의 경우 혈연중심주의 사회의 특징답게 여아의 사례가 전체 입양자수의 70퍼센트를 차지했는데요. 이 추세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외국 사례를 보면서 '우리자신을 비난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특히 장애자에 대한 입양문제가 그랬죠. 해외로 입양된 장애아들이 성장과정에서 '육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승리를 이룬 사례들을 볼 때마다, 왜 한국사회는 이런 기적을 만들지 못하는가. 이 원인을 찾고 사회전체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를 토론할 때, 우리사회는 더욱 성숙한 면모를 갖게 되리라 믿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가정단위에서 책임지며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사회. 우리가 꿈꾸는 사회입니다. 비록 지금은 복지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개발이란 논리앞에서 철저하게 부정당하고 짓밟히고 있지만 봄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 김홍기

 

예전 부모님과도 이 문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요. 나이 많은 분들의 인식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남의 자식 데려다 키우는 거 좋지, 문제는 잘 될때는 상관이 없는데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저 내 배아파서 낳은 자식이면 숙명이다 생각하고 버텨보겠는데 결국 남의 자식은 그게 잘 안된다'란 논지입니다. 기른정과 낳은 정 중에 후자가 승리를 거두는 경우지요. 여러분은 전자와 후자 중 어디에 서 있습니까? 아이를 껴안은 배우 이병헌의 시원한 미소를 보며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따듯한 도시남자의 면모가 녹아나지요? <아이리스>의 근육질 첩보원의 이미지는 간데 없고, 아이들과 한없이 교감하는 삼촌의 모습만 보이네요.

 

 

                          ⓒ 김홍기

 

입양은 단순히 한 가정을 위해 아이를 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전체가 다음 세대의 양육을 책임진다는 태도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죠. 한 입양부의 말을 적어봅니다. "입양을 한다는 것은 '부모가 되는 과정'을 매우 심오하게 변화시키죠. 부모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습성이 있고 아이들 또한 그래요. 그저 최선을 다해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우리 자신과 아이들 양쪽을 자비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 과정에서 '부모되기(parenthood)란 끝없는 균형대 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임을 아는 게 중요해요" 라고요.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사진 앞에서 계속 서 있었네요. 여러분도 한번 쯤 전시회에 가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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