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올 겨울 스위스 바젤에서 본 쿤스트 뮤제움 이야기나
한번 할까 합니다. 바젤이란 도시의 면면에 대해서는 다음에 한번 길라잡이
형식으로 다루겠습니다. 미술시장에 관심을 갖고 컬렉팅을 하다보니, 해외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에 종종 갑니다. 바젤에서도 세계적인 아트페어가 열리지요. 4번째 가는 바젤여행입니다.
바젤에는 규모는 아담하지만 내실있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습니다.
이번에도 포스팅을 위해 종이박물관과 장식미술 박물관, 만화 박물관을 들렀고, 독일을 비롯한
현대미술 컬렉션을 자랑하는 쿤스트 바젤과 쿤스트 뮤지엄을 다녔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쿤스트뮤제움 바젤
(쿤스트는 독일어로 예술이란 뜻이에요)은 홀바인을 비롯한 현대미술작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간 12월 초에도
앤디워홀의 1960년대 회화와 판화 작품 기획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15세기에서 17세기, 19세기와 21세기 사이 라인강 북부지역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주로 사들여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곳에선 홀바인의 작품을 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루카스 크라나흐, 마틴 숀가우어,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죠.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의 깊이 만큼, 그 역사를 보면 스위스란 나라가 갖고 있는 문화적 저력을 느낄수 있습니다.
바젤 지역의 법조인이었던 바실리우스 아머바흐가 사모았던 미술품을 1661년 시 당국이 다시 사들여
세계 최초의 시민을 위한 시립미술관으로 변모시키죠.
이후 20세기와 그 이후의 미술작품을 대거 컬렉션하면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 레제를 비롯한 근대미술의 거장작품들을
소장하게 되었고 이후 독일 표현주의와 추상표현주의, 1950년대 이후 미국의 미술작품까지
사들이면서 명실공히 현대미술의 메카로도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미술관 자체를 시민들을 위한 철저한 휴식공간으로
재배치하고 설계한 일면이 아닐까 싶네요.
거장의 작품을 앞에두고
그 사이로 얼린 빙판을 지치며 노는 아이들과 가족들의 표정이 유난히 밝아 보입니다.
미술관 내부로 들어갑니다.
유리 벽면에 새긴 현대적인 느낌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눈에 들어오네요.
피카소의 작품들이 있는 방이구요
좀 따분해 보이기도 하죠?
바젤 아트페어는 2000년대 초기만 해도
유럽 최고의 현대미술 아트페어였답니다. 그만큼 현대미술의
가장 핵심이었던 개념미술과 추상미술의 메카였지요. 요즘은 미국의 자본력에
밀려 마이애미 아트페어에 밀린다곤 하지만 여전히 유럽인들이 미술에 쏟는 애정과 저력은 대단합니다.
우리는 항상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먼저 큐레이터나 도슨트를 찾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만큼 익숙하지 않은 미술작품에 대해 설명을 듣기 위해서인데요.
저는 좀 반대입니다. 미술관은 말 그대로 작품을 소장한 곳입니다. 이곳에선
미술과 역사를 비롯한 문화적 감성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는 곳이긴 하죠. 하지만 더 중요한게
있습니다. 전문가의 설명없이, 문턱을 낮춰서, 시민들이 언제든 들어가 작품을 보고 '나름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을 풀어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줘야 한다는 것이죠.
어머니와 아이들이 미술관에 와서 도슨트의 설명만 충실히
적어가며 방학숙제를 하는 것보단, 그냥 작품 앞에서 자신들도 미지의
세계인 작품을 놓고 오랜시간, 왈가왈부하기도 하도, 수다도 떨고, 그냥 뭐든
자신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바젤에서 열린 아트페어에 갔다가 어느 부스에서
그림 소품 한장을 사러 왔던 4인 가족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때
감동을 받았던 것이 그림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었습니다. 그건 꼭 해박한
미술사나 지식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림이 좋아서 집 벽면에 걸어야 하는데, 누구
방에 걸어야 하는지, 왜 걸어야 하는지를 4일 내내 동일 부스에 40대 초반의 부모가 자신의 아이들을 대동하고
와서 지속적으로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꼭 미술사의 지식이 필요한 건
아니죠. 오히려 아이들의 욕망이, 그림이 왜 자기방에 있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과정이
어찌나 정교하던지 놀라왔던 겁니다. 사교육 시킬 시간에 차라리 이렇게 하면
논술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맞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아버지와 아이의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스케이트를 타다가 쉴수 있도록 목의자를 만들고
그 위에 담요를 가져다 놓는 배려까지 했습니다. 작은 거지만
왠지 이런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저 한국에서 블록버스터급 전시들만
유치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 국내의 국공립/시립 미술관은 이런 작은 차이들을 봤으면 합니다.
시민들이 미술관에 가서 소양을 키우고 작품을 보며 미술에 관한
지식을 쌓기도 하지만 이렇게 예술작품이 바로 보이는 공간 속에서 얼음을 지치며
어린시절부터 편안하게 예술작품에 노출될 수 있는 것. 이런게 정말 멋진 문화행정이 아닐까 싶네요.
마냥 한국이 잘못되었다고 탓을 하는 건 아닙니다. 지가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서울에선
사실 뭔가를 기획해보려고 해도 선뜻 이뤄내기가 쉽지 않죠.
아이와 함께 얼음을 지치는 아빠가 한없이 부러워서 였을까요?
스케이트에 지칠 무렵, 따스하게 무릎담요도 덥고 차 한잔 마시고 미술품을
보러갈 수 있는 그들의 여유가 마냥 부럽습니다. 아이들과 겨울 탐구생활을 마치기 위해
방과후 숙제를 위해 가는 의무적인 미술관 마실보다, 놀고 즐기고, 마시고 그림 보며 자연스레 하나가
되는 우리나라 미술관의 풍경을 꼭 보고 싶습니다.......언젠가는 될거에요.
이 믿음 하나로 지금껏 버텨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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