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비엔나에서 베토벤과 인증샷을 찍는 방법

패션 큐레이터 2010. 12. 14. 20:35

 

 

비엔나 여행기 이어집니다. 트램 71번을 타고 내린 곳은 젠트랄프리트호프역. 이곳에는 비엔나에서 가장 유명한 묘역이 있습니다. 비엔나에는 50여개의 크고 작은 묘지들이 있는데요 이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중앙묘역입니다. 음악인을 비롯하여 당대 대통령과 최고의 가묘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속적으로 말씀드리는 것 중에 하나가 이 비엔나가 동유럽의 근대화, 바로 모더니티의 자궁과 같은 역할을 하던 도시라는 점입니다. 1900년대 산업혁명과 더불어 비엔나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로서, 정치/문화적 역할과 더불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를 낳는 산고를 겪어내야 했던 도시였습니다. 원래 이곳 중앙묘역도 1863년 도시가 팽창하면서 묘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1869년 시의 외곽에 지금 보시는 거대한 면적 240헥타아르의 중앙묘역이 세워진것이죠. 그 규모는 유럽 최대를 자랑하고요. 이 과정에서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같은 음악인들의 묘도 이 곳으로 이장을 한 것입니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맨 처음 사진에서 보인 칼 보로메오 교회입니다. 하지만 실제 이름은 오스트리아의 초대 수상인 칼 뢰게의 묘가 교회 아래 안장되어 있다고 하여 칼 뢰게 기념교회 라고 부르지요. 이 중앙묘역은 카톨릭과 개신교 소수의 러시아 정교 신도, 유대인 묘지로 나뉘어 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나찌는 이 유대인 묘지도 파헤치는 악을 자행했습니다. 여기엔 유대깊은 금융가문인 로스차일드와 작가인 아서 슈니츨러도 묻혀 있지요.

 

 

이번 비엔나 여행을 하면서 제가 얼마나 무지한지, 그림과 공예를 비롯한 디자인 분과에만 관심을 가졌지, 정말 빈에 있는 수많은 음악의 전설들과 작곡가들의 생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뼈져리게 느껴야 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작곡가 브람스의 묘비구요.

 

 

여기는 왈츠의 거장 요한 슈트라우스의 묘지입니다. 많은 음악인들이 묘비에 와서 자신의 염원을 담은 붉은 초를 올려놓고 기도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제가 간 날도, 한 일본인 음악학도가 바이올린을 맨 채, 베토벤의 묘지 앞에서 물끄러미 비석을 바라보고 있더라구요.

 

 

여기는 슈베르트의 묘비

 

 

제가 우울할 때 자주 듣는 <경기병 서곡>을 작곡한 프란츠 주페의 묘비입니다. 정말 많은 음악가들의 묘비가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는 즐거움이 있죠. 영화 <아마데우스> 에서 모짜르트를 평생 애증하던 작곡가 살리에리도, 조성을 무너뜨린 무조음악을 통해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인간의 다양한 광기와 상처, 아픔을 드러냈던 작곡가 쇤베르크, 어린시절 피아노를 배운 분이라면 반드시 쳐야 했던 체르니 교본을 썼던 음악 교육가 칼 체르니도 이곳에 묻혀 있습니다. 비록 그들은 대지에 뭍혔지만, 음악가의 영혼과 함께 인증샷을 찍고 싶다면 3시간 여쯤 시간을 내어 쭈욱 돌아보는 것도 은근한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히틀러의 조카이자 연인으로 알려진 안젤리카 게리 라우발, 비엔나 중심부의 건축양식 중, 기능주의 건축철학을 확고화게 세웠던 건축가 아돌프 로스, 록 가수였던 팔코도 이곳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곳이 칼 뢰게 기념 교회구요. 앞에 원형 디자인은 바로 역대 대통령이 안장된 영역입니다. 칼 뢰게는 오스트리아의 수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분이긴 하지만 딱히 좋아하진 않습니다. 바로 히틀러의 통치방식의 모델이 되었던 분이기 때문이죠.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악성 베토벤의 묘지입니다. 앞에 높여진 꽃과 화환들은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로 부터 나온 것이겠죠.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음악의 진정한 천재 그 영혼에 대한 찬사와 멜로디가 흘러나올 것만 같습니다.

 

 

이외에도 당대를 호령하던 비엔나 시 내의 유력 가문들의 가족장묘가 눈에 띄더군요. 유럽의 장묘문화 중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바로 이 가족묘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문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기념묘지라고 해야죠. 보통 지면에서 50여센티 미터를 높여서 화강암이나 대리석과 같은 고급석재를 써서 펼쳐놓은 형태입니다. 그 아래로 대대로 가족들이 인장된다고 하더라구요.

 

 

인장된 묘지들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묘비 장식에 주로 사용되는 뱀 문양의 표식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서양에서 뱀은 오우로보로스라고 해서 죽음과 생명이 맞물려 돌아가는, 영원한 회귀를 의미하지요. 예전 고대 이집트에서 부터 시작되어 유럽 전역에, 여전히 뱀 형상의 문양들이 많은 것을 이런 바램을 현생에 실현하기 위한 인간의 의지일겁니다.

 

가족묘의 규모가 정말 후덜덜입니다......

 

 

위의 사진은 아이를 위한 비석입니다. 1년전에 죽었던 것 같습니다. 철제 토끼 다리 위에 누워있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때 한 마리 새가 허공을 길게 날며  하늘에 줄을 긋습니다. 남아있는 자들의 거친 호흡과는 상관없이 주위의 풀과 나무는 고요하기만 합니다. 이 낮과 밤이 교차하고 나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지만 이 곳에서의 시간은 영원히 멈춰있겠죠. 그 침묵의 시간을 관통하는 이른 아침의 묘지 산책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저는 각 도시에 갈때마다 묘지들을 들르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긴 묘비라기 하기엔 거의 관광코스가 되어버린 곳들이 많지만요. 워싱턴의 앨링턴 국립묘지나 파리 묘지도 그렇지요. 기억속에서 끄집어낸 오랜 유령을 만난다는 생각보단 죽음이란 강력한 힘, 누구도 피해갈 수없는 생의 필연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곳 비엔나의 중앙묘지에도 저명한 정치가들의 묘비가 많더군요. 당대의 권력을 쥐고 호가 호위 하며 현생의 시간을 누린 그들의 삶도 결국, 죽음 후에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한 기념탑과 교회를 지은 들, 그 삶의 진정성에 대해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무덤 주위는 삭막함으로 가득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이곳도 그랬구요. 누군가의 묘비를 본다는 것은 생의 이면을, 그 결과값을 살펴보는 시간이 아닐까 싶네요. 그러니 자신의 세대 보다 표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은 이런 곳에 한번쯤 가서 느끼고 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베토벤과의 인증샷을 찍고 싶은 분들은 한번쯤 가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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