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프랑스 현대미술의 산실, 퐁피두를 가다

패션 큐레이터 2011. 1. 6. 14:59

 

S#1 퐁피두에선 길을 잃어도 좋다

 

파리를 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퐁피두 센터다. 최근 정부는 각 부처와 공공기관이 소유한 미술 작품을 회수해 전문 미술관에 위탁하도록 하는 근거 법령을 내년 상반기에 마련할 방침이란다. 바로 한국판 퐁피두 센터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보인 것. 재정부는 "그동안 비전문가들이 캐비닛에 볼펜 보관하듯 방치한 국유 미술품을 전문가에게 위탁해 직접 관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나로서는 쌍수를 들어 환호할 일이다. 현재 정부는 프랑스 국유재산 정책을 참고하여 법령을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다. 프랑스는 엄격한 박물관국(DMF) 규정 때문에 국립근대미술관이 미술품 소장과 관리에 한계에 부딪히자 1975년 신규 법 제정을 통해 오늘날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산실인 퐁피두센터를 만들었다. 그런데 왜 난 정부의 이와같은 노력에 '한숨'부터 나오는 지 모르겠다. 비평은 뒤에 가서 하기로 하고 일단 퐁피두의 역사부터 살펴보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퐁피두의 속살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퐁피두 센터의 건축은 그 자체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영국출신의 건축가인 리차드 로저스가 이 건물을 디자인했다. 마치 공장건물을 리노베이션한 듯한 건물 외관은 오랜 고심끝의 산물이었다. 1977년 퐁피두 센터가 개장했을 때, 건물에만 쏟아진 찬사와 격정적인 반대의견은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포스트모던, 하이테크 건물이란 수식이 붙었지만, 정작 핵심은 이전의 박물관에 대한 사람들의 개념을 깨뜨리는 데 있었다. 엘리트주의와 상류층의 문화공간이라는 생각을 깨뜨리기 위해 건물의 기능적 요소에 칼라를 도입, 색채를 입혔다. 초록색 파이프는 배관용, 청색관은 기후통제용, 전선은 노랑색으로 감쌌다. 퐁피두센터에는 파리 국립근대미술관(MNAM), 공립도서관, 공업창작센터, 음악 탐구및 조정연구소 등이 있으며, 이 센터의 창설에 힘쓴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1977년에 개관했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전면부엔 프랑스가 배출한 많은 예술가들의 이름이 마치 배지를 붙여놓은 듯 달려있다. 루이 부르주아와 베이컨, 건축가인 르 코르비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마르셀 뒤샹 등 셀수없다.

 

 

입구를 지나면 우리를 맞는 다소 기괴한 두 개의 설치작품과 만나게 된다. 바로 프랑스 출신의 예술가 니키 드 생팔의 <결혼>연작이다.

 

 

퐁피두 센터 밖에 있는 아틀리에 브랑쿠시는 조각가 브랑쿠시가 사후, 자신의 작품 모두를 기증하면서 이를 보관하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곳에 가면 브랑쿠시의 대표작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프랑스 정부가 예술가의 지위를 둘러싼 예우와 관리방식이다. 인상주의 화가들도 마찬가지로 그들 사후에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을 기증, 철저하게 관리되도록 했다. 여기에 반해 한국은 어떤가? 그저 청와대에 1년에 두번 씩 그림을 바꾸는 건 몇몇 영향력있는 화주들의 몫일 뿐, 국가의 세금으로 이뤄진 미술품 관리에 대한 지침은 여전히 미숙하다. 한 마디로 영속적인 관리가 안된다.

 

 

퐁피두 센터 건물의 외양이다. 참 놀랄일이다. 옛스러움과 의고적인 풍취를 좋아하는 프랑스가 이렇게 첨단양식을 빌어 건물을 지었다는 점 말이다. 많은 여행객들이 유럽의 바로크/로코코 양식의 화려한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러한 역사주의가 그들의 큰 자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발전을 가로막는 버팀대가 되었다는 점은 인지 하지 않는다. 퐁피두의 개관은 바로 역사주의의 덫에 걸린 유럽이 현대적 정신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필자가 퐁피두에 갔던 12월 중순엔 <Elles>전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프랑스 출신을 비롯 현대 여성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한 특별전이었다. 한물 가긴 했지만 페미니즘 미술의 흔적으르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현대 사진작가 샌드 스코글랜드의 작품 설명과 함께 전시를 보았다.

 

 

샌디 스코글랜드는 이미 한국에도 자주 소개된 작가다. 그녀는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만든다.”라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유명하다. 원래 조각가 출신이었던 그녀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찍기 보다, 배경과 소품을 만든 뒤, 카메라로 담는다. 한마디로 연출사진인데,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작품의 결과 보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투자한 노력과 시간, 무엇보다 그 배후의 철학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주길 바랬다

 

 

너무나 유명한 게릴라 걸스의 포스터를 만났다. 가부장적인 질서가 여전히 유지되는 세계에서 미술계라고 별 다를게 없었다. 60년대 이후 자신의 작품에 여성의 목소리를 담기 시작한 급진적 예술가 집단이 나타났는데 바로 이들이 게릴라 걸스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글과 유머러스한 이미지로 나타낸 포스터를 거리 곳곳이나 버스에 붙였고, 대학이나 학회, 전시장에 나타나 유인물을 배포했다.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가?"는 이들의 가장 유명한 포스터다. 이것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된 여성작가의 작품은 전체 소장품의 3%에 불과하지만 누드 작품의 83%는 여성 누드라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작가 실비 플뢰리. 그녀는 몬드리안의 구성 작품이 너무나 남성적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일까, 여성적 특성을 드러내는 모피를 격자무늬에 붙여 따스한 느낌을 선사하려고 했단다. 약간의 익살과 즐거움이 느껴진다.

 

 

여성사진작가들의 작품을 꼼꼼히 살피는 시간, 항상 가면을 쓰고 남성 중심적 사회의 일부로 살아야 했던 여성의 이미지들을 다룬 작품들이다.

 

 

깊게 패인 여인의 얼굴의 상처는 바로 남성의 폭력에 의한 상처다. 페미니즘 미술은 한때 남성중심적 사고에 많은 비판과 대안을 제시했었다. 적어도 내가 과거형이라고 쓰는 이유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목소리가 가진 힘이 예전같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보여지듯, 항상 피해의식을 드러내는 데 너무 치중한 나머지, 여성의 자의식을 고양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절반의 타자인 남성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말하는 데는 익숙지 않았다. 그들이 작품이 점점 잊혀지는 이유다.

 

 

파리를 갈 때마다 항상 부러운 것은 미술관에 와서 현장수업을 하는 아이들을 볼 때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시각으로 볼 때나, 왠지 널브러져있고 질서도 안지키는 듯 보이는 아이들, 그저 미술관에 와서 자유롭게 앉아 설명을 듣기도 하고, 또 안들어도 그만인 아이들. 그러나 끊임없이 노트에 자신의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럽다.

 

 

피카소를 비롯한 브라크와 마티스 등과 같은 근대미술 작가들의 방이 따로 있다. 퐁피두 센터 내에 <프랑스 근대미술관>이 있다.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한권의 근대미술사 책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다.

 

 

페르낭 레제의 거대한 캔버스가 걸린 방을 넘어.......

 

 

퐁피두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건물의 각각 요소에 조각품을 위치시켰다.

 

 

여기는 색채의 마술사 로베르 들로네의 방

 

 

퐁피두내 근대미술관의 동선을 따라 걷다보면 색채의 마술사 샤갈의 멋진 두점의 작품과 만나게 된다.

 

 

한국내에서도 샤갈의 인기는 뜨겁다. 샤갈의 그림 속 주인공의 의상을 돋보이게 하는 칼라의 형태와 주름이 눈에 들어온다.

 

 

세계적인 화가들의 화구를 모아 전시해 놓은 곳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발튀스의 그림 앞에서 한 동안을 서 있었다. 발튀스는 기존의 전통적 기법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풀어내 주목을 받았다. 그의 그림은 항상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측면들이 있다. 그의 어머니는 시인 릴케의 연인이기도 했는데, 그 영향인지 모르지만 그의 그림 속엔 항상 어머니의 이중적 존재인 묘령의 여인들이 등장한다.

 

 

퐁피두 내의 옥외카페의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카페보단 1층의 서점을 주로 간다. 이곳에서 운이 좋으면 5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좋은 미술책들을 살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국판 퐁피두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지금, 박수를 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것들이 있다. 프랑스를 비롯 퐁피두가 유럽 현대미술의 산실이 되기까지 그 과정에서 발생한 것들을 우리정부는 참 모른다. 툭하면 외국을 벤치마킹한다고 하고, 어설프게 베끼는 작업은 하지만, 정작 국공립미술관의 역할조차 제대로 정립시키지 못한 이 나라에서, 툭하면 한국판 ****을 만든다는 정치적 수사를 들을 때마다 깊은 우려의 감정만 솟아나올 수 밖에. 문화관광부 자문위원을 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이 땅의 행정관료들은 하나같이 재경부같이 경제를 주무를 수 있는 곳을 선호하지, 결코 문화/예술/복지와 같은 영역에서 일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같이 세상의 출세기준이란 것이 권력에만 맞춰있으니, 말로는 문화예술로 기억되는 한국을 운운하지만 그들의 보고서가, 기획서가 항상 허황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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