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데르트 바써 展이 시작된지도 이제 한달이 넘어갑니다. 국내 첫 전시 답게 많은 언론들의 관심과 주목을 끌고 있지요. 사실 처음 바써를 연구하기 위해 비엔나로 떠나면서, 한국사회에서 바써의 메시지가 과연 잘 전달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개발지상주의가 여전히 우리 한국사회의 맹목적 신념이기에 재활용과 환경친화를 최상의 가치로 삼는 그의 건축과 미술의 철학이 한국에서 오롯하게 연착륙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요.
오늘은 비엔나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훈데르트 바써의 꿈의 동산, 바로 블루마우 온천장에 대해 소개하려 합니다.
사진 속 집들의 형상이 독특하지요? 블루마우는 훈데르트 바써가 꿈꾸었던 또 하나의 소우주였습니다. 조화로운 삶을 꿈꾸었던 작가 훈데르트 바써는 자신의 이름답게 '백개의 흐르는 물길'이 삶과 환경, 건축, 패션 모두에 녹아가기를 소망했습니다. 블루마우란 작은 소읍은 건축에 관한 자신의 비전을 투영할 수 있는 장소였지요. 이곳은 온천이 발견되면서 개발의 물꼬가 트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이라면 당장 부동산 광풍이 불고, 개발업자들의 이권싸움이 점입가경에 접어들겠죠. 오스트리아 정부와 바써의 협업은 이런 세상적 관심을 넘어갑니다.
온천은 서구나 동양 모두, 물의 치유력을 알고 오래전부터 발전시켜온 대안적 문화입니다. 특히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헝가리, 프라하 등지의 동유럽엔 최상의 수질을 자랑하는 많은 온천들이 자리하고 있죠. 중세 말의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그림을 보면, 이때에도 공중 온천탕이 있어 그곳에서 '천수의 삶'을 기원하며 몸을 담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이때도 부자들은 개인탕을 선호했다죠? 바써에게 건축은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을 넘어 제 3의 피부였습니다. 집과 인간이 하나로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지점으로 자리잡도록 하는 것. 그것이 화가의 꿈이었지요.
루카스 크라나흐 <영원한 젊음의 샘>
패널에 유채, 122 × 186,5 cm, Gemäldegalerie
근세 온천장의 탄생은 중세시대 종교상의 성지순례라는 오랜 관습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성지순례의 목적은 외면적으로는 면죄와 기복을 위한 위한 것이었지만, 중세 사람들에게 내면에 잠복해 있던 놀고 싶은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일종의 휴가여행을 가능케 한 기제였지요. 중세 사람들에게 종교적 순례는 오직 종교적 신앙심만을 고취하는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성인의 발차취를 더듬어 영혼을 정화함으로써 천국행을 꾀한다는 원칙적 이상아래 순례는 실제적으로 현세에서의 어려운 삶 속에 구제와 희망을 주어 그 삶을 지속시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니까요.
도착했던 날 오후 늦게 여우비가 내렸습니다. 건물 외관을 둘러싼 기둥과 투명유리로 빗물이 하나둘씩 자신의 고향을 향해 모여듭니다. 아스라히 번지는 저녁기운을 투영하는 빗물은 빛물이 되어 단단한 초겨울의 체기를 녹입니다. 마치 여린 음표처럼 주룩주룩 알레그로로 떨어지는 천장 위의 빗망울. 바로 스스로 물의 고향이 되고 싶었던 훈데르트 바써의 혼이 이곳에 머물기 때문일까요?
2인실에 들어가 가볍게 짐을 풀고 웰컴 푸드로 나온 초컬릿도 하나 먹고요. 위의 가운은 온천에서 사용하는 용도로 나온 것입니다.
부페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난 후 좀 쉬었다 바로 온천으로 내려갑니다.
열탕과 온탕, 사해라는 이름의 소금 농도가 짙은 온천이 함께 있는데요. 사해에선 준비된 튜브위에 몸을 엊고 쾌적한 초겨울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을 세는 즐거움이 있답니다. 조쉬 그로번의 목소리로 부르는 Starry Night가 듣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요. 온천 속으로 깊이 자맥질을 하니, 물 속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설비를 해 놓은 겁니다. 저의 물속 자맥질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태어나기 전 양수 속을 유영하는 따스한 느낌. 온전한 보호를 받는다는 느낌이 세포 하나하나에 박혀옵니다.
훈데르트 바써는 자신의 그림을 포함한 모든 건축물의 색상이 비오는 날 가장 아름답게 빛이 난다고 말을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저는 아침 여명이 뜨는 시간, 그의 작품 속 빛깔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스한 온천물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벗삼아, 진초록과 연두, 코발트빛 하늘을 배경으로 바써가 건축한 독특한 형상의 집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집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족들의 집으로 새롭게 변형되어 사용되기도 했죠. 아이디어를 차용한 겁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반지의 제왕은 뉴질랜드에서 촬영을 했는데 어떻게 오스트리아 외곽의 건축물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을까요? 이것은 훈데르트 바써가 삶의 후반부를 뉴질랜드에서 오랜동안 보내며 많은 작업을 한 탓입니다. 그에게 있어 친환경적인 뉴질랜드의 마을과 삶의 철학은 생을 가장 아름답게 살수 잇는 인간의 장소로 자리매김했죠.
물에 몸을 담그니 답답했던 가슴도 뚫리고 마음의 각질도 벗겨지는 것 같습니다. 푹 젖어 쉽게 알몸이 되는 것 알면서도 부끄러워 앞을 가리지 않죠. 흠씬한 물의 열기와 알싸한 꽃향기, 배면위로 흐르는 하늘 가득 어제밤엔 별이 내려왔습니다.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여행 전 왠지 모를 답답함과 상처, 삶의 역겨움은 물을 만나 반란을 일으키기라도 한듯 피부위로 솟아나며 스멀스멀 진득한 두려움을 토해내지요.
여기는 온천장 내부에 있는 실내온천장이구요
이곳은 여전히 건축중입니다. 사진 속 미니어처는 화가 훈데르트 바써가 꿈꾸며 건축하고 있는 장구한 블루마우 프로젝트의 세부적인 면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온천을 한 후 가운을 입고 풀밭위나 길 위로 잠시 산책을 나가셔도 좋답니다.
이곳이 저는 재미있었는데요. 두더지 굴의 형상으로 만든 곳이라고 해서 궁금했는데 이곳은 장기체류자들을 위해 만든 시설이라고 하네요. 주방을 갖추고 있어서 스스로 요리도 해먹고 오랜동안 지낼 수 있도록 한 곳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듯, 바써의 건축엔 결코 직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령 창틀에 보이는 직선 조차도 그로시한 타일로 일일이 쪼개어 붙여서 갈음을 했죠. 2차대전 당시 비처럼 수직으로 쏟아지는 폭격의 상처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수직선은 형태상 혹은 힘의 방향으로 볼 때도, 철저하게 위계화된 세계를 드러냅니다. 잔잔한 수평을 지운 독점적 횡포는 배제를 생산합니다. 인간이 자신과 같이 호흡하는 인간을 배제하고 밀어내는 것. 그렇게 인간과 인간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이 쉽지 않기에, 저 또한 수직선을 볼 때마다 두렵습니다. 부족한 인간의 마을을 얼르며 도는 물의 흐름처럼, 훈데르트 바써는 항상 나선의 형상으로 모든 건축물을 지었습니다.
가로를 허용하지 않는 세로는 세로를 견제하지 않는 가로는 불안한 균형을 흔들고 불안한 상황들을 만들어내죠. 화가가 자신의 건축물에 왜 수직적 구조들을 철저하게 피하려 했는지 이제서야 조금씩 심정적으로 이해가 갔습니다. 훈데르트 바써전은 100일동안 진행됩니다. 그의 이름의 뜻을 따서 한 것인데요. 저는 정말 한국분들이,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 분의 작업에 친숙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더 이상 재개발의 폭력과 개발지상주의에 찌든 세상을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지요. 혹독한 한국의 겨울을 나며,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블루마우 생각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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