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행기로 돌아옵니다.
시사적인 글을 쓸때마다 뭔가 동참한다는 느낌
내가 여전히 목소리를 내며 살아있다는 감정은 확인하지만
항상 뒤가 좋질 않습니다. 행여나 글로 인해 이견을 가진 분들이 남기는 글들에
상처를 잘 받기 때문이죠. 참 걱정입니다. 문화/예술로만 글을 써서 많은 인지도를 얻을 수만
있다면 시류에 따른 호재들을 글의 소재로 따오진 않을텐데 말이지요.
오늘은 모든 걸 다 잊고 쇤부룬 궁전에서 보낸 시간을
정리합니다. 오스트리아 바로크 건축과 미술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무엇보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딸, 아니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단두대에서 그 생을 다한 황후 마리 앙투아네트가 태어나 자라난 곳입니다. 패션의
역사를 다룬 <샤넬 미술관에 가다>에서 상당한 페이지를 할여해 설명한 것이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녀의 궁정화가 비제 레브룬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베르사이유의 화려한 패션과
그녀의 럭셔리란 삶을 떠올리지만, 그녀의 평전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그녀는 더욱 견고해지는 가부장제의 희생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쇤부룬 궁전의 대회랑 모습입니다.
다양한 컷을 찍었는데, 다음에 따로 회차를 마련해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벽화들과 천정화를 세밀하게 읽기가
쉽질 않아서 저도 자료를 따로 사서 정리하면 읽고 이해를 더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베르사이유의 영광>展과 함께 연결지어 설명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전시를 보신 분들은 제 글이 더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해요.
대회랑을 비롯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활동한 방, 무엇보다 어린시절의 모짜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거울의 방 등 다양한
방의 양식과 역사를 통해, 바로크와 로코코에 이르는
서양 근대사 중 가장 화려한 시대를
짐작해 보실 수 있어요.
제가 책에 썼던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이미지 중
저는 이상하리만치 이 그림이 끌리더군요. 혁명의 기운이 끌어오르던
시절, 그녀는 무능한 남편의 통치능력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롱을 드나들며 정치토론을 하고 자신의 친정이었던 오스트리아에 특사를
보내 현 프랑스의 정치상태를 알리고 도움도 요청했던 여자죠. 이런 내용은 철저하게
삭제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녀는 당대의 패셔니스타였습니다. 그건 아쉽게도
그녀만의 몫은 아니었죠. 궁정에서 여왕은 그 나라의 섬유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다양한 스타일을 일부러 섭취해야 하는
일종의 모델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후, 나폴레옹 조차도
조세핀이 당대에 유행하던 엠파이어 라인의
드레스를 입는 걸 불만스러워 했습니다. 왜일까요? 그녀를
따라 많은 여자들이 모슬린 소재의 옷을 입는 통에 리용산 고급 실크를
내수경기 진작을 위해 팔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쇤부룬 궁전은 합스부르크가의 '
여름 별궁입니다. 뭔 뜻인가 하면 별궁이란 말
자체가 여름 한철, 사냥을 즐기면서 보내기 위해 지은 특별궁전
이란 뜻이죠. 광대한 부지위에 180미터의 길이로 쭉 펼쳐진 바로크 양식의
거대한 궁전입니다. 쇤부룬이란 말은 '아름다운 샘'이란 뜻인데요. 베르사이유 궁
전의 모습을 본따, 이곳에 아름다운 궁전을 지었지요. 그래서인지 많은 부분 베르사이유와의
비슷한 면모들이 발견됩니다. 특히 거울의 방과 대회랑은 아예 특징을 모사했다고
해도 될만큼 양식적인 특징이 비슷합니다. 1441개의 방을 가진 거대한 궁전이죠
가지런하게 구획된 길을 따라 걷습니다.
사진 속 언덕 위에 보이는 곳은 전몰자 기념관인 글로리에테입니다.
1757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프로이센과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며 전몰자들을 위해
'신의 영광을 위하여(글로리에테)'란 뜻으로 세운 건물입니다.
제가 비엔나를 간 게 11월 9일입니다.
2주 넘게 비엔나와 3개국을 돌아다녔는데요.
이때만 해도 만추의 시간이라, 글로리에테로 걸어가는 길에
조락의 풍경이 곱게 수놓아 있습니다.
중간에 만나는 분수대고요
바다의 신 넵튜을 소재로 분수대 위의
장식으로 사용했습니다. 유럽여행을 하시는 분들이
종종 하는 말 중에, 여기 가도 저기 가도, 너무 고전적인 양식들이
많아서 처음에는 진귀했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지겨워진다고 잘들 그러죠.
저도 대학시절 처음 유럽을 봤을 때는
진귀함 더하기, 진부함이 다가왔어요. 그러나 미술사를
공부하고 건축과 당대의 양식들을 공부하면서 그것들의 가치를
재발견 하게 됩니다. "왜 이들은 그리스 로마 양식에 자꾸 메이는가?"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서양문명의 본류를 괜히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으로 나누는게 아니구나란 생각.
그리스 로마문명은 그들에겐
일종의 정신의 척추와 같아서, 그리스와 로마가
쌓아놓은 고대 문명을 숭상하고 이를 뛰어넘는 것이 그들에겐
일종의 숙제였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지금까지도 제가 라틴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과 그리스 문명사를 재독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해를 등지고 서서 놀고 싶었던 시간
초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따스한 뺨을 스치고
궁전의 속살을 살피며 걷는 여행자의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말씀드렸듯이 이 곳은 여름철 사냥터였습니다.
왕의 세력권을 떠나 여름 마실을 보내는 왕의 시간은 어땠을까요?
언제든 반란의 위협이 있던 시절이었기에, 그는 수만의 귀족들을 함께 대동하고
이곳에서 먹고 머물며 사냥을 합니다. 그래야만 어느 지역의 귀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함께 지내고 있는 귀족을 볼모로 협상을
할 수 있었을테니까요. 궁전의 크기가 장엄해진건
이런 이유입니다. 1441개의 방을 기억하세요......
어디 이곳만 그랬나요? 우리의 역사에도
호족의 반란을 막고자 항상 왕은 호족의 일가를
볼모로 서울에 데려와 상주시켰잖아요.
그리스 양식으로 지은 글로리에테의 횡면이구요.
쇤부룬 궁전의 기본적인 색상은 황금색입니다.
노을이 빛나는 시간, 혹은 새벽의 여명을 넘어 햇살을 반사하며
토하는 건물 외벽의 색감은 철저한 황금색입니다. 오스트리아인들에게
황금색은 영원한 완벽함을 상징하는 빛깔이죠. 클림트가 인간의 성욕과 에로티시즘을
황금빛 분채로 그려낸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죽음의 본능과 삶의 본능, 그 경계에
영원히 죽지 않고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니까요.
글로리에테 안에 있는 레스토랑입니다.
여러분이 흔히 비엔나 커피라고 알고 계신
멜랑주와 사과맛이 나는 파이를 먹었습니다.
겹겹이 보드랍게 부서지는
달콤한 파이를 먹으니 지친 발걸음도
다시 힘을 얻네요. 이번 비엔나 여행은 사실
식도락 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스트리아의
자랑인 케이크를 먹고 다녔습니다. 원래도 빵을 좋아하는 체질이긴
하지만, 비엔나는 다른 유럽지역에 비해, 케이크를 비롯한 머랭이 다양하게
발달한 곳입니다. 레시피도 수천이구요. 이틀에 한번 꼴은 점심에
커피와 파이, 케이크로 배를 채워야 했다니다.
멜랑주 커피....입니다.
지겹게 자주 마셨습니다.
여행을 하는 건 새로운 호흡을 갖고
돌아오기 위함인데, 돌아온지 며칠 되지도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일 투성입니다. 회사며 원고며, 방송이며
그 어떤 것도 잘 풀리지가 않아서 속이 상하고 화가 나고 그랬답니다.
글을 쓰며 사진을 정리하고 당시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시간은 다시 타임머신처럼
저를 그곳으로 이끄는 군요.
유럽의 많은 건축물을 보면서 항상 드는 생각은
왜 이들은 유독 신의 영광을 기리는 건축물을 이렇게도
강박적으로 화려하고 장엄하게 만들었을까? 라는 것입니다.
중세부터 시작된 기독교 문명의 세례, 그 영향 속에서 자라난 그들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방편이었겠죠.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뭔가를 이렇게
강박적으로 자꾸 높이 높이, 화려하게 쌓아가는 건물을 보면 불안합니다. 마치 자신의
내부에서 '신에 대한 사랑'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타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허세를 부리려는 듯 말입니다.
원래 비엔나 기행에 대해서 깊이있게 쓰려면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에 대해서 한번쯤은 참......긴
글을 세번은 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배경 하에서 비엔나 역사 박물관이며
근현대의 미술에 관한 이야기도 해야죠. 블로그로 30여회 쓰고 나면 비엔나에 관한
한권의 책 분량이 될 것 같습니다. 서점에 가니 비엔나에 관한 책이 너무 없더라구요. 기껏해야
인문학서 하나, 여행책 두 권이 전부였습니다. 그만큼 역사지리를 이용한
다양한 지역연구가 없는 나라지요. 이 나라는요.......작은
갈증을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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