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중력의 힘에서 자유롭기-안진우의 도발적인 사진들

패션 큐레이터 2010. 3. 7. 17:13

 

 

안진우_어떤 바람2-1_울트라 크롬 프린트_100×100cm_2009

봄이다. 차가운 겨울외투를 벗어던진 거리의 풍경은 가볍다.

올 한파를 견디려 마련했던 미끈한 부츠도 벗어던졌다. 청록과 화이트

두 줄 스트라이프 무늬가 고운 니트에, 스키니 돌청을 입고 거리를 걸었다.

바람이 분다. 겨우내 너무 차가운 공기를 폐부 가득히 들이붓는게 힘들었다. 횡경막이

벌어지게, 가슴을 펴고 대기를 마신다. 이제서야 좀 살것 같다. 그렇다. 우리의 몸은 호흡을

필요로 한다. 숨을 쉰다는 것은, 주변주와 나와의 호흡을 조율하고 맞춰가는 일이다.

그 호흡의 결을 느낄 때, 나를 둘러싼 사물들 또한 중력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사물과 나는 하나가 되어

소통하고, 그들의 속살을 꿰뚫고 들어가 하나가 된다.

 

안진우_어떤 바람1-1_울트라 크롬 프린트_100×100cm_2009

5cm 높이는 나를 불안하게 한다 / 하이힐을 신고 밖을 나서면
낯익은 생활에서 5cm 쯤 벗어나고 / 5월의 녹음이 나를 잡는다
연둣빛 내음에 손을 길게 내밀 때마다 / 발목이 몇 번이나 흔들린다
평소보다 5cm 높아진 시야가 / 몸안 궤도를 이탈하려고 한다
네가 끌어당기는 힘으로 지탱하고 있던 나는 / 너와의 거리만큼만 편안함을 느낀다
일상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한계는 5cm이다

 

나는 김선호의 <중력>이라는 이 시를 좋아한다.

2002년 학기 때였나 <시인정신>에 실린 이 시를 읽었었다. 읽고

또 읽었다. 안진우의 사진을 보다 꽤 오래전 읽었던 이 시를 떠올리고선 다시

시집을 꺼내 읽었다. 여자가 하이힐을 신는 이유는, 중력으로 부터, 킬힐의

높이만큼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고, 편안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 시인의 견해가 남다르게 와 닿았다.

 

안진우_어떤 바람1-2_울트라 크롬 프린트_100×100cm_2009

사진작가 안진우는 중력없는 몸의 유희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우주공간을 가로질러, 태고적 어둠에서 헤엄쳐 나온 몸의 형상들, 사진 속

이미지는 엄마의 자궁 속에서 인간의 신체기관들이 형성되는 순간의 모습을 담는다.

양수 속에 위치한 인간의 모습 위로, 부드럽고 조용한 영혼의 소리가

흘러간다. 프쉬케의 소리다.

 

안진우_어떤 바람1-3_울트라 크롬 프린트_100×100cm_2009

사실 작가 안진우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작품들과는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작품들이다.

그의 사진은 인간의 내면 속에 담긴 무기력과 분노, 그리움과 외로움에

쩔어있는 인간의 소외의식을 다루었다.

 

죄로 점철된 육체는 대지의 힘에 굴복한다.

인간의 운명도 그렇다. 작가 안진우는 그런 죄스런

운명의 사슬을 벗어던지고 싶었던 걸까? 원초적 탄생 상태의

인간, 어미의 자궁 속에서, 머리터럭 하나 하나가 만들어지는 상태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다. 형성 이전으로 돌아가, 자신과의 몸과

화해하기를 꿈꾸는 인간의 욕망이 드러난다.

 

 

안진우_어떤 바람2-2_울트라 크롬 프린트_100×100cm_2009

크롬 프린트로 찍어낸 사진 속, 암흑의 세계는

무의 세계이고, 아무것도 없는 공허의 세상이다. 그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표면을 향해 얼굴을 드는 것은, 바로 다름아닌 원초적인

육체의 기운이다. 겨우내, 회색빛깔로 도배된 거리에 연두빛 봄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란 유채꽃 위에 앉아서 계절의 몸살을 앓다가, 코발트색 하늘에 머리를 처박은

푸른 바닷가에서 발을 씼는 봄의기운이, 인간의 육체를 통해 드러난다.

저 아스라한 육체의 선을 따라, 유동하는 기운생동의 세계.

 

 

안진우_어떤 바람2-3_울트라 크롬 프린트_100×100cm_2009

성경에도 써 있다. 모든 사물위에 신의 호흡이

숨결이, 홀연히 하나의 바람처럼 다가와 그들을 되살린다.

바람은 그렇게 인간과 꽃을 생육하고 성글게 한다. 봄바람에 실린 포자가

땅의 혼과 부딛치면 망울이 되고, 아름다운 생각과 만나 피어나면 꽃인것을. 바람은

그렇게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생명의 꽃을 피운다.

 

 

안진우_어떤 바람2-4_울트라 크롬 프린트_30×30cm_2009

봄바람을 맞고 싶다. 지친 슬럼프의 시간도 이제 가라.

정말이지 지리하고 비루한 겨울의 시간 속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

푸른 슬픔의 시간을 넘어, 바람아 불어라, 상처로 찌든 내 육체, 가득가득

피부에 불어, 겨우내 생채기들 고운 딱지 앉도록, 부드럽게 불어라.

 

바람부는 날엔.......

거리를 걷고 싶다. 사진 속 육체에 고운 옷 한벌 입혀.....

봄엔 전시장과 갤러리를 더 열심히 다녀야겠다. 함께 갈 사람들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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