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 너무 많은 미술관이 산재합니다.
여러분이 한번 쯤 들르는 비엔나미술사 박물관과 더불어
오늘 소개할 무제움 크바르티어에는 무려 10개의 미술관이 자리랍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에곤실레의 작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는 레오폴드 미술관이 있고
현대 미술의 첨단을 소개하는 근대미술관이 있습니다. 비엔나에 있는동안
주로 전시만 보면서 한국 내의 큐레이터쉽과 비교도 하면서
천천히 느린 호흡으로 그림을 읽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하이퍼리얼>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극 사실주의 미술작품들을 모아, 테마로 잡은 전시였는데요.
극 사실주의란 19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미술 경향입니다.
물론 같은 시기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도들이 있었고
이를 통칭하여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하죠. 극단적인 사실적 묘사를 핵심으로 하는
경향입니다. 만화경처럼 돌아가는 세상에서, 사진으로 찍어 정지시킨 화면 같이, 광경을 일순간
응고시켜, 핵심을 강조해 표현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사진을 빌어 말하자면 삶의 한 장면에 모든 초점을 맞춘다는
뜻에서 샤프 포커스 리얼리즘이라고도 합니다. 작품 속에 드러난 일상적인
현실들은 현실보다도 더 현실답죠 그만큼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을 덮고
있는 은막을 거둬냅니다. 주로 작가들은 자신의 주관을 배제하고 중립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풀어가거나 제작합니다. 그만큼 보는 이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고 여백에 참여시키기 위해서이죠.
사진 속 작품은 한국에서도 자주 전시했던
척 클로스의 작품입니다.
극 사실주의는 사실주의의 일종이지만
그만큼 현실의 허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이
가진 맹점을 공격하기 위한 새로운 논리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일상의 베일에 쌓인 허구들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죠.
저는 극 사실주의 풍의 작품들을 마냥 좋아하진 않지만
보다보면 쓸쓸한 일면들이 하얗게 묻어나는 것 같아 외롭고 힘이 들땐
미술품들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습관이 있어요. 우리는 눈으로 모든 걸
볼 수 있는 것 처럼 이야기 하지만, 정작 육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정교한 세계를 확대시켜
보여주면 현실은 정말이지 착잡하다 못해 차가운 세계가 됩니다. 그 세계를
다시 한번 바라보자는 반성적인 움직임이 바로 극 사실주의의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옷의 디테일을 정확하게 한 올 한 올 그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이자 무대 디자이너인 도메니코 놀리의
작품이 흥미로와 계속 봤습니다. 이 사람의 도록을 사고 싶더군요.
지향점없이 어딘가를 바라보는 이들
미디어란 것이 결국 우리와 우리 사이를 매개하는
어떤 것일텐데, 소셜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이 사회에서 정작
오프라인에선 개인의 소외와 정서적 동떨어짐이 더욱 강해지는 이 조류를
어떻게 풀어갈까요? 툭하면 팔로워가 몇 명이고 1촌이 몇 명이고
하지만 현실 앞에서 '말 거는 법' 조차도 익숙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청소년들은 누가 책임져야 하나요.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조각도 보이더군요.
극사실주의가 조각에 적용될 때는 삼차원이라고 하는
조각의 기본 요건에 따라 한층 실물에 가까와지기 때문에 보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정도가 더욱 강하죠. 듀안 핸슨의 조각을 보는 시간, 벌거벗겨진
세 남자의 비참한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소비사회에서 버려진 이들의
모습이겠죠.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 스스로 떠올리려 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일 수도 있을거구요.
이외에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이나
비즈니스 정장을 차려입은 컬렉터의 모습은, 미술품을 상업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가진 인간의 음험함을 드러내기엔 안성맞춤입니다.
토요일 오전인데 미술관은 관람객으로 가득합니다.
듀안 핸슨의 또 다른 조각이네요.
미식축구 선수들이 서로 공을 얻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치열한 경기의 한 장면을 묘사한 듯한
이 작품을 통해 여전히 미국사회의 60년대부터 지속된 소비주의와
스펙터클을 상품으로 파는 시대의 정신을 고발합니다.
삶이 무거울 수록, 찬란한 현실의 아픔과 깊이가 클수록
우리는 쇼설 네트워크란 가상의 세계 속에 몰입하며 '대면해야 할' 현실로부터
회피하죠. 현실을 확대할수록 잔혹하고 기괴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전에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안경의 채도와 색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작품들 앞에서 사물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기괴함보단
'그래도 해볼만하다'라고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사회에 대해 심미적인 이성을 갖고
싸워나가고 고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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