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아름다운 영혼의 정원에서
비엔나 여행 이틀째 벨베데레 궁전에 갔습니다. 오스트리아 바로크 건축의 거장인 필데브란트가 설계한 건축물입니다. 벨베데레란 말 그대로 아름다운 곳이란 뜻이구요. 이곳은 상궁과 하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그 사이에 프랑스식 정원이 완만한 언덕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바로크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장식을 이루는 무늬들이 무한반복된다는 데 있습니다. 웅장하고 장쾌한 느낌의 실내와 외부가 조화를 이루죠.
프랑스식 정원의 모습입니다. 유럽과 동양 모두, 궁정에는 항상 정원양식들이 존재합니다. 정원은 단순하게 풀과 꽃과 나무를 키우는 장소가 아닙니다. 유럽에서 정원은 당대 귀족들이 처한 일시적 상황을 재현하는 일종의 대리물이죠. 정원의 양식과 그 풍모는 '낙원의 나날'을 표현합니다.
정원에서 바라본 하궁의 모습입니다. 상궁은 주로 19-20세기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고 하궁은 중세와 바로크 미술품을 컬렉션하고 있죠. 벨베데레를 3 일간 다니면서 작품들을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상궁을 중심으로 정리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도 좋아하는(그 이유는 자신들도 잘 설명 못하는) 구스타브 클림트의 키스가 있습니다. 벨베데레 미술관은 세계에서 클림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죠. 한국에서 열린 클림트전 때도 이곳에서 소장품을 대여한 것입니다. 그때도 키스는 오지 않았죠. 국가적으로 '키스'는 타국에 절대로 대여하지 않습니다. 독일 정부와의 수년에 걸친 지리한 법정 싸움 때문이지요. 내부 촬영은 안되기 때문에 벨베데레 특별 도록을 사서 그날 보면서 제 눈에 들어왔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 <성 베르나르를 넘는 나폴레옹>
1801년, 캔버스에 유채, 벨베데레 미술관
자 이 그림을 모르는 분은 없을겁니다. 뒤집어 말하면 어.....이 그림이 이곳에 있구나라고 말할수도 있겠네요. 예전 중학교 완전정복 참고서 표지를 장식하던 그림이잖아요. 성 베르나르 고개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격해가는 나폴레옹의 모습입니다. 그림은 매우 커서 세로 3미터 정도가 되죠. 흔히 황실에서 왕을 그리는 초상화들은 이렇게 보는 이들의 눈 높이에서 '숭상하듯' 바라보도록 그려졌답니다. 나폴레옹의 삼각모와 타이트한 바지도 눈에 들어오더군요. 자크 루이 다비드는 혁명 이후 궁정화가로 들어가서 왕의 영광을 칭송하고 혁명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그림을 그리던 화가였습니다.
신고전주의 작가인 프랑수와 제라르와 퓔러의 그림입니다. 이 때의 의상에 대해서는 이미 제 책 <샤넬 미술관에 가다>에서 잘 설명드렸을겁니다. 남성들은 검정색 정장 수트를 본격적으로 입기 시작했고 여성들은 허리선이 가슴 바로 아래 내려오는 엠파이어 라인의 드레스를 입었지요. 오른편의 주인공은 귀족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르네상스 시대부터 착용한 거대한 네크라인, 러플을 달은 벨벳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이제 비더마이어 시대로 들어갑니다. 비더마이어란 1815년 비엔나 의회가 성립되었다가 48년 혁명으로 허물어질 때까지의 시기를 총칭합니다. 오스트리아 회화는 이 당시 중산층의 미감을 드러내는 건축과 실내장식, 새로운 부를 자랑하기 위해 화려한 패션을 걸친 사람들의 초상을 담습니다. 패션을 하는 저로서는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죠.
위의 그림은 비더마이어 시대의 대표적인 인테리어 양식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실용주의에 근거한 단순미를 자랑하는 가구와 건축을 설계했지만 뒤로 갈수록 신흥 부유층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 장식적 요소들이 많이 가미되었죠. 어느 시대나 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티내는 건 똑같습니다. 한국의 졸부만 너무 야단치지 마시길.
제가 좋아하는 프리드리히 폰 아멜링의 그림들입니다. 제가 아기그림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레 그의 그림과 친해졌는데요 벨베데레에 소장된 많은 작품들을 보니 기분이 환해졌답니다. 저렇게 이쁜 공주님좀 낳고 싶어요. 아이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산층의 정서적 가치에서 아이들의 양육이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페르디낭 게오르그 발트뮐러 <교회의 아침>
1857년, 캔버스에 유채, 벨베데레 미술관, 비엔나
오스트리아 비더 마이어 시대의 거장 발트 뮐어의 그림입니다. 당시 초상화가로 이름이 높았던 화가인데요. 루드비히 판 베토벤의 초상화도 이 화가의 손을 통해 그려졌죠. 거장의 손길을 모사하는 것으로 미술의 기법을 익혔던 화가입니다. 그림 속 밝은 아침의 교회에서 아이들이 선데이 베스트(교회올때 입는 최고로 좋은 옷)을 입고 흥겹게 노는 모습이 즐겁네요.
구스타브 클림트 키스
1907-08, 캔버스에 유채와 금분, 180 x 180 cm
벨베데레 미술관, 비엔나
사실 벨베데레의 소장품은 단순하게 클림트의 키스 하나만 보러 들어가기엔 방대한 깊이를 자랑합니다. 저로서는 클림트 보다 1800년대 중 후반 흔히 미술사에서 <비더마이어 시대>라 규정하는 시대의 작품들이 더 끌렸습니다. 이 시대의 미술은 당시 발흥하던 중산계층의 정서와 미감을 잘 표현한 건축과 실내 인테리어, 개인 초상화들을 통해 패션을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주변까지 환해지는 듯한 환상에 빠집니다. 그만큼 금분처리한 화면에서 빛을 머금고, 입맞춤의 농밀하고 따스한 순간을 응고시켜내기 때문이겠죠. 이 그림을 그릴 때만 해도 이미 클림트는 당대와의 불화를 넘어 화해와 회복을 꿈꾸던 시기였습니다. 클림트 만큼 당대와 치열하게 싸웠던 예술가 겸 싸움꾼도 드뭅니다. 우린 그런 맥락을 잘 모르죠. 그냥 키스의 화려한 순간만을 인상적으로 좋아할 뿐입니다. 키스를 그리던 시절, 그는 화가-장식가로서의 역할로 돌아옵니다. 싸움이 지쳤던 시기였지요.
클림트의 <키스>는 그의 황금빛 스타일을 정점으로 끌어올린 작품입니다. 사실 그의 모든 그림 중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죠. 당대에도 마찬가지이긴 했어요. 그림을 자세히보면 이전에 그가 추구했던 사실주의적 저항은 사라지고, 상징주의의 초기로 접어드는 걸 알수 있습니다. 키스의 순간, 여인의 옷 자락엔 타원형의 꽃무늬 상징으로 가득찹니다. 반면에 남성의 옷에는 검정색 장방형 무늬가 아로새겨져있죠. 이건 원래 제우스의 남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남성의 정액을 모아담는 창고처럼 보이도록 장방형의 무늬를 새겨넣은 것은 클림트의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꽃은 합일의 순간에 응결되어 피어납니다. 이 보다 에로틱한 그림이 있을까요?
구스타브 클림트 <신부들> 1918년
165 x 191 cm 캔버스에 유채와 금분, 벨베데레 미술관, 비엔나
그의 말년작 <신부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세상과의 불화 속에 지쳤지만, 그의 내면에는 응축된 성의식이, 건강한 에로티시즘의 힘이 피어납니다. 신부들은 바로 그런 정신의 도정위에서 태어난 작품입니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직접화법 대신, 우의적인 세계를 선택하여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은 세상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지요.
여름에 갔더라면 분수대와 더불어 더욱 환하게 피어나는 정원을 봤을 텐데 아쉽긴 합니다.
하궁 쪽으로 걸어가다 상궁을 찍은 사진이구요. 옅은 청록과 연노랑 벽면이 서로
보색을 잘 이루지요.
벨베데레 미술관의 소장품 중 극히 일부를 꺼내 여러분께 이야기 했습니다.
글을 쓰다가고 이 정도 작품만 소개할 거면 아예 하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벨베데레는 클림트의 <키스>하나를 보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님을 천명하기 위해 이렇게 포스팅합니다.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루브르에 가면 <모나리자> 보려고 줄서있고, 이탈리아 아카데미아에 가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앞에서 사람들은 웅성대죠. 그러나 그 미술관엔 대표적인
거장 이외에도 함께 곰삭여 볼 만한 수많은 명작들이 있다는 거. 잊지마세요.
'Life & Travel > 해를 등지고 놀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쇤부룬 궁전에서-마리 앙투아네트를 만나는 시간 (0) | 2010.12.10 |
---|---|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미술작품들-비엔나의 근대미술관<하이퍼리얼>전 (0) | 2010.12.04 |
여행의 기억은 거품처럼-명멸하는 것들에 대하여 (0) | 2010.12.03 |
정신분석학의 탄생-비엔나의 프로이드 박물관 (0) | 2010.12.03 |
이곳에선 누구나 모델이 된다-비엔나의 쿤스트하우스빈 방문기 (0) | 2010.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