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여행의 기억은 거품처럼-명멸하는 것들에 대하여

패션 큐레이터 2010. 12. 3. 10:35

 

여행을 다녀온지도 수 일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올려야할 포스팅은 산재합니다. 특히 다음에선

유독 인기가 없는 미술 분야. 툭하면 일상이란 이름 하에 묻혀버린

예술의 정신을 쓰는 블로거에겐 글쓰기는 고독입니다.

 

 

지경부와 문화부는 수천억 예산을 들어

한국에도 명품 브랜드를 만들자고 갖은 캠페인을

벌이지만 정작 명품을 만들어야 할 국민성이란 것이 심미적 이성은

커녕, 어젯밤 본 드라마 스토리에나 목숨을 거는 사회니 그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합니다. 여행을 하는 목적도, 그저 '몇 개국을 내가 발로 찍고 왔다'에 머물 것이라면 여행은

과연 왜 해야 하는가. 항상 존재론의 문제에 부딛힙니다. 과시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나 어디 가봤는데'라는 말로 끝날 여행......툭하면 어줍잖은

한국사회와의 비교는 늘어놓지만, 근본으로 파고들어

해결책을 나름 찾는 것에는 어수룩한

우리들의 모습......

 

 

 

비엔나 구 왕궁으로 들어가는 광장 앞에서

거품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뭐 평범한

풍경이겠지만 명멸하는 거품의 형상들을 보다 문득 생각에 빠지네요.

1900년대의 비엔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첨예하게

충돌하며 가치관의 새로운 대오가 만들어지던 시대였습니다. 어느 시대나 '시대정신(zeit-geist)'란게

있지요. 우리 한국의 시대정신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전이 성장중심적 사고가 팽배하고

뒤쳐져 있는 것들에 대해, 소외된 것들에 대해 눈돌리지 않는 것.

 

 

외국의 거리를 걸을 때마다 멋들어진 고색창연한

건물에 눈을 돌리기 보다, 정작 보행자를 가장 우선으로 두는

그들의 교통체계가 고맙고, 보행자에게 우선적으로 권리는 주는 그들이

놀랍습니다. 한국같으면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쌩쌩 달리는 자동차의 눈치를 봐야 하는

우리로선 그저 부럽지요. 말끝마다 '한국의 교통상황'을 들먹이지만 정작 자신만이라도 희생해서

하나씩 바꿔갈 생각은 안하는 사람들.....언제든 터질 것 같은 거품궁전 속에서

변화의 가장 근본적 주체인 '자신'을 변화시키는데는

발뺌으로 일관하는 우리들을 생각합니다.

 

 

대기 속에 몇 초후면 터져버릴 것만 같은

거품의 형상이 마치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찍어낸

정신의 지도같아 불편합니다.

 

 

거품은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은유입니다.

지금은 모든 걸 장악하고 있는 듯 보이는 정치권력도, 군사력도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경제적 논리도, 결국은 저 시간이란 대하 앞에서

무릎을 꿇죠.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자신들은 자랑하겠지만 역사 속에서

준엄하게 그려지게 되는 것일테구요.

 

 

여행을 하고 나서 뒤를 돌아보면

뭔가를 배웠다는 느낌보단 앞으로 공부해서

극복해야 할 거리들을 더 많이 찾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질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자리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우리가 자생적으로 만들어내야 할 인간의 자리와 우리만의

목소리를 찾는 것일테니까요. 여행은 바로 고유한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내기 위해 참조해야 할 문헌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을 통해 뭔가를 배우기 보단

그저 아울렛 매장에서 국내에서 수백만원하는 제품

반값에 산다니 복볼복 해가며 자신의 스타일에 맞든 안맞든

명품 브랜드 로고가 박혀 있으면 쟁여놓고 보자는 식의 쇼핑 관행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집니다. 누구나 다 들고 다니는 루이비통 백을 언제까지 명품이라고

말해줘야 할지 모를 이 시대에, 도대체 더 여행객들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지

묻고 싶을 때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아울렛가서 명품을 반값에 사면 여행본전

뽑았다고 말하는 그 입술엔, 여행의 목적이 당췌 보이질 않더군요.

 

 

예전 <럭스플로전>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시아의 광풍에 휩싸인 명품시장과 소비자들의 행태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였죠. 분명 우리가 명품에 홀릭하는 이 시대의 한 단면들도

분명 우리시대의 소비자 코드가 맞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지요.

일본과 중국, 한국은 앞 다투어 모방욕구에 빠진채

서구유럽의 명품을 사들입니다.

 

 

그 명품을 입고 걸침으로서

스스로 명품이 될수 있으리란 환영, 일루전의

힘이 이다지도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는 나라는 처음입니다.

패션은 한 인간의 외적 면모를 둘러싼 장식이기에 앞서, 그 시대의 미감을

육체를 통해 드러내는 지표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인 지표값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명품을 바르긴

하는데 속된 말로 '뽀대'가 안다는 거죠.

 

 

여행의 기억이 저 거품처럼 사라지기 전에

빨리 응고시켜 이 곳에 토해내야 겠습니다. 비엔나의 1900년대를

연구하기 위한 여행이지만, 지금으로 부터 100년도 훨씬 지난 이 시대를 보면서

여전히 정치 문화적 길항 속에 있는 한국사회를 생각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비판과 더불어

우리가 갈 길에 대해 모색하는 것이고, 그 해답은 여전히 길 위에서 펼쳐지지 않을까 싶네요. 모든 건

그리움이 해결해 줄 겁니다.....그리움을 그린 것이 그림이듯, 우리 생의 단아한 해답을

낼 수 있는 것도 결국 우리 손에 오롯하게 쥐어져 있음을 믿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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