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정신분석학의 탄생-비엔나의 프로이드 박물관

패션 큐레이터 2010. 12. 3. 07:26

 

 

빈 대학이 보입니다. 이제 여기서 코너를 돌아 오늘은

여행책자에서 항상 푸대접을 받는 작은 박물관을 찾아갑니다. 멀리 고딕 첨탑이

아름다운 보티프 교회도 보이네요. 교회에 대해서는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빈 대학 맞은 편엔 오스트리아 인들이 건립 후

가장 후회하는 라인운하가 있습니다. 물의 흐름은 역시 나선으로 흐를 때,

그 생명력의 원천을 담아내는 자궁의 실루엣을 가장 잘 드러내지 않나 싶네요. 직선으로 마치

시멘트 공구리를 치듯 만들어놓은 운하는 썩 자연스런 운치가 없어 보입니다. 

 

 

트램을 타고 Schlickgasse에서 걸어도 좋고

트램보단 전철이 익숙해진 여행자에겐 지하철 2호선

Schottenring에서 내려서 4분 정도 걸으시면 Bergasse가 보이고 이곳

19번지에 바로 프로이트 박물관이 있습니다.

 

 

지난 포스팅 때부터 말씀드렸듯 이번 비엔나 여행은

훈데르트 바써란 작가에 대한 개인 연구의 목적과 더불어 비엔나란

동유럽의 근대정신을 탄생시킨 거푸집을 면면히 살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여행을 할 때 꼭 지적인 충족만을 위해 여행을 하지는 않습니다.

시/공간을 넘어 '지금 걷고 있는' 이 도시의 과거와 역사가

현재 우리의 모습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편이지요.

 

 

(박물관 2층에 올라가면 생전의 프로이트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정리해놓은 공간과 만납니다)

 

 

비엔나 하면 구스타브 클림트의 <키스>를 떠올립니다.

제자인 에곤 쉴레, 표현주의 화가였던 오스카 코코슈카에 이르기까지

비엔나는 수없이 많은 예술가들을 탄생시킨 도시인건 맞습니다. 문제는 그 탄생의 배후에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있다는 사실은 간과합니다. 프로이트는 바로 이곳에서

1891년부터 나치스에 쫒겨 런던으로 망명한 1938년까지 살았습니다. 이곳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며 근대의 꿈을 잉태시킨 <꿈의 해석>을 썼죠.

 

 

어디 미술에만 국한될까요? 인간의 광기와

극한의 감정을 소설 속에 편입시켜 인간의 내면을 누구보다

황량하게 잘 표현했던 스테판 츠바이크도 프로이트의 정신적 세례를

입었습니다. 클림트의 당대로서는 불가해했던 대학 벽화 작품의 배후에도 바로

이 프로이트가 숨쉬고 있답니다. 현대의 비엔나란 도시가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이해하려면

사실 그 깊은 정신의 내면을 살펴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박물관은 작은 단서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분석학의 효시이자, <꿈의 해석>이란

저서를 통해 현대문명의 관점을 바꿔놓은 작은 거인. 프로이트. 이 사람에 대한

이해없이 현대의 비엔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거짓말과 같습니다.

 

 

프로이트는 일찍이 영화예술이 가진 능력

즉 "환영을 창조하는 기술"을 꿰뚫어보았습니다.

그는 영화가 자신이 천착하던 "꿈의 해석'에 단초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하죠. 그래서인지 박물관 2층에선 초기 무성영화

와 심리학의 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풀어놓고 있습니다.

 

예전 영화이론을 공부할 때

정신분석학 공부를 위해 두껍고 머리아픈

책들을 읽어내야 했던 시절이 떠오르더군요. 공부를

위해서가 아닌, 누군가를 치유하고 그의 심연에 접근하기 위해

공부하지 않았던 탓에, 수업시간에 자주 졸던 저였습니다. 반성합니다.

 

 

이곳은 환자들의 대기실이구요.

 

 

프로이트가 치료한 환자들의 면모들을 소개해 놓은 곳입니다.

이 외에도 옆에는 3만 8천권의 텍스트가 있는 심리학 아카이브가 있는데요.

독일어가 짧다보니 영어판본을 읽다가 와서 아쉽습니다. 프로이트의 가족, 진료과정

그의 소사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붉은 색감의 벽면이 따스하게 느껴지더군요.

 

 

놀라운 건 이미 이 당시에 프로이트가

여성의 동성애 문제와 같은 것들에 대해 깊이있는

이해를 하고 있었고 치료를 위해 발군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겁니다.

'환우와의 대화'를 통해 심리의 내면에 접근하는 정신분석학의 임상실험을

만들었고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한 점. 적어도 그 당대에선 쉽게 먹혀들지 않았을

거대한 생각의 조류를 만든 '현대의 거인'앞에서 머리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인간의 삶을 규정하고 이끄는 주요한 힘으로서의

성적 욕망에 대해 그가 밝히고 연구하지 않았다면 클림트의

에로틱한 그림들, 에곤쉴레의 성감대를 자극하는 강렬한 드로잉과 그림들은

등장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저 천재여서 홀로 짠 하고 등장하는게 아니란 것이죠.

오늘날의 인문사회학에서 왜 프로이트와 니체를 그렇게도 강조하는지 다시 한번

박물관 마실을 통해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이건 프로이트가 환자 치료를 위해 필요한 기구를 만들던 기계라고 하네요.

이름을 잊어먹었습니다.

 

 

프로이트의 막내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박물관 관장이 된 후

현대미술의 컬렉션을 곁들이며 더욱 풍성한 박물관으로 성장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현대의 팝아트에서 고전적 화풍의 회화작품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상설전시관이 있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발견하는 벽면에 쓰여진 그의 어록들입니다.

타나토스의 에로스에 관한 글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생에 대한 욕망과

죽음에 대한 욕망, 이 두가지의 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생의 기술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컴플렉스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 오히려 친숙하게 지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이 컴플렉스야 말로 정당하게 우리들의 행동을 세상속으로 이끌어주는 것일테니"

저도 뒤집어보면 워낙 컴플렉스 덩어리라, 내 안에 숨기고 있는 약점들, 누구에겐가

내밀고 싶지 않은 젖는 구두같은 내 에고를 다시 한번 보게되었네요.

 

 

심리학에 깊은 이해가 필요한 분이나 혹은

연구가 필요한 분들에게도 이곳 프로이트 박물관은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무엇보다도 혼란의 1900년대 비엔나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에 관한 통찰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클림트와 에곤쉴레

코코슈카에 이르는 다양한 비엔나 분리파를 비롯한 화가들을 소개할 텐데요. 그저 도록만

보고 '이 그림을 보았다'에서 만족하지 마시고, 그 내면의 자궁을, 치열한 정신의

도열을 산출한 시대의 아픔들을 함께 느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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