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이곳에선 누구나 모델이 된다-비엔나의 쿤스트하우스빈 방문기

패션 큐레이터 2010. 12. 2. 15:04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으로 용해된다 -마르크스 경제학 노트 서문 중에서

All that solid melt into the air

 

S#1 이곳에선 반드시 사진을 찍어라-쿤스트하우스빈 파사드

 

건물의 외벽이 너무 멋지지 않나요? 이곳은 훈데르트 바써의 모든 컬렉션을 모아 전시하는 쿤스트빈하우스의 전면 외벽입니다. 흔히 미술과 건축에서 건물의 앞 전경을 파사드(facade)라고 표현하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이 파사드란 단어가 참 재미있는게 '감정을 속이고 억누른다'고 표현할 때도 이 파사드란 단어를 쓰거든요. 쿤스트 빈 하우스의 건물은 유독 체커보드 무늬를 대칭적으로 사용해 디자인한 건물입니다. 이 앞에서면 저 처럼 못생긴 남자도 배경덕에 사진을 찍으면 멋져 보인답니다. 이번에도 파사드는 제 얼굴의 결점들을 속이고 감춰주는군요. 화이트와 블랙, 여기에 옅은 감청색 창틀이 어우러져 감성어린 후면을 만들지요.

 

미술관에 들어가면 우선 작은 분수대가 보입니다. 훈데르트 바써는 모든 건축물을 '식물의 성장과 생육'과 연결 지어 사유했기에 그는 모든 거주지엔 물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지요. 이 미술관은 1892년에 지어진 토넷 가구공업소 건물을 리노베이션 한 것입니다. 이 토넷이란 회사도 언급할 만한 것이 가구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보았을 '비스트로 의자'(지금껏 500만개 이상이 팔린 디자인 의자)를 만들던 곳이랍니다. 1989년에서 91년 사이 훈데르트 바써는 이 건물의 재건축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철학을 녹인 건물로 디자인합니다.

 

 

1991년 4월에 개원한 이 미술관은 1층과 2층은 훈데르트 바써의 상설전시 및 컬렉션으로 채워져 있고, 나머지 3층과 4층은 현대작가들의 기획전을 하는데요. 훈데르트 바써 하우스에서 설명드렸듯 이 미술관 또한 그의 건축철학적 요소들, 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의 바닥면과 직선의 최소화, 밝고 명징한 색채타일과 낙엽들이 등장합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분수대도 그 일부죠. 여기에 인공 겨울 정원을 연상시키는 풍성한 식물로 채운 레스토랑까지, 모두 바써의 아이디어가 녹아있습니다.

 

1층에서 4층까지 연결된 계단 또한 파상형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훈데르트 바써는 자신의 그림을 비오는 날 보면 더욱 색감이 살아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채광을 최소화하여 외부풍경과 연결시킨 점은 절제란 단어 하나만으론 설명이 안됩니다. 무엇보다 이 건물의 특징은 에나멜 처리를 한 바둑판 모양의 타일 모자이크에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스페인의 안토니오 가우디와 닮긴 했습니다만, 대칭성을 띠고 질서감있게 건물 외벽에 박혀 있는 모자이크 덕에 건물엔 균형감이 오롯하게 새겨져 있죠. 더구나 산업용 타일이 아닌 수제 타일이라 고풍스러움을 더한답니다.

 

이곳은 미술관 내의 뮤지엄샵입니다. 저는 항상 화가와 관련된 자료들을 사서 오는데요. 이번 전시와 관련하여 훈데르트 바써와 관련된 도록은 이미 다 갖고 있는 상태라 그냥 훔쳐보다 왔습니다. 아.....한가지 떡밥을 드리도록 하지요. 이곳 샵에 가니 아마존에서 품절된 사진집을 사실 수 있습니다. 재고가 3권 남아 있더군요. 아마존에선 중고시장에서 천불넘게 하는 책이거든요. 그러니 비엔나 여행중인 분들은 한번 가보시길. 이런걸 북 헌팅이라고 한답니다. 여기선 30유로 정도 밖에 안한걸로 기억해요.

 

레스토랑 바닥의 바둑판 무늬들이 현란하지요?

 

사진을 찍는 순간 갑자기 여우비가 내려, 하늘의 색온도가 화가가 원했던 색감으로

순간 변신을 했습니다. 황토빛 낙엽들이 흐드러지게 떨어진 모습이 기억나네요.

 

 

카페의 이름은 둔켈분트입니다. Friedensreich Regentag Dunkelbunt Hundertwasser 이 이름이

훈데르트 바써의 정식 이름이지요. 프리덴스 라이히란, 풍요로운 이란 뜻이고. 레겐 탁이란 비오는 날이란 뜻이죠.

둔켈분트는 '어두운 색상'이란 뜻입니다. 어둡지만 미묘한 색차가 나열되는 모습을 연상하면 좋을 듯 합니다. 훈데르트 바써는

앞에서 말했듯 '백 개의 물줄기'정도로 보시면 좋습니다. 원래 이름은 프리드리히 스토바써입니다. 스토바써란 것이

'고여있는 물'이란 뜻이었는데, 화가의 삶은 누구보다 '흐름'을 통해 견고한 것을 껴안는 '평화의 땅'을

만드는데 일조합니다. 글의 처음을 장식한 마르크스의 말은 적어도 훈데르트 바써에겐

견고한 모든 것을 녹이는 힘으로 바로 '물의 흐름'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식물들로 가득해서 마치 겨울 온실에 온듯한 느낌이 들죠. 유럽의 부르주아들은

대부분 자신의 집 외부에 작은 인공정원들을 만들어왔습니다. 빅토리아 시대부터 그 규모가 더욱 커졌죠.

이 레스토랑도 그런 전통의 일부가 아닐까 싶네요.

 

 

자 이제 본격적으로 훈데르트 바써의 소장품들을 살펴봅니다. 이번 훈데르트 바써의 국내 전시에 들어오는

작품의 범위는 다양해서 실제 바써의 회화와 건축, 그래픽, 환경관련 포스터까지 다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 속

보이는 건물은 슈피츨라우 쓰레기 소각장의 모습인데요. 이건 다음 포스팅때 제대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여기도 내부 견학을 했답니다. 이번 여행은 정말 풍성하게 다녔습니다.

 

 

433 THE I STILL NOT KNOW, 1960 <내가 아직 모르는 것> 1960  혼합매체 쿤스트하우스빈, 비엔나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그의 회화작품을 살펴봐야 합니다.

회화는 그의 사유의 시작점이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되 기존의 진부한 상징적 의미를 벗어나

화가 자신의 본능에 의거한 색의 선택이 이뤄집니다. 집과 창문, 담장, 문과 같은 건축적 기호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요. 이 모티브들은 서로 긴밀하게 색을 통해 연결됩니다. 레드와 그린의 강력한 대비 속에서

화가로서의 자신의 길과 정체성을 물어보는 작품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을 한 번 보세요.

 

 

작은 길, 1991 혼합매체

 

" To me, Painting is religious act "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볼 때 가장 와 닿았던 문구입니다.

화가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종교적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다시 물어볼 필요가 있죠. 종교적 행동이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꼭 특정 종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겁니다.

 

원래 종교를 의미하는 Religion의

라틴어 Religio는 '연결하다'란 뜻을 갖고 있죠. 대지와 하늘,

그 사이의 인간의 조화적 관계를 위해 우주의 모든 것들이 순환하며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현대는 이 조화적 순환의 관계가 깨어진 사회지요. 환경이 자본의

폭력앞에 무릎꿇고 자연과 인간의 연결고리가 깨어진 사회입니다. 화가는 이 연결고리를 표현하기 위해

바로 나선의 형상을 이용합니다. 나선은 죽음과 부활의 상징이지요. 과학적으로 DNA도 나선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아실겁니다. 그만큼 나선은 모든 창조의 동원이자, 지도인 셈입니다.

 

 

692A THE RAIN FALLS FAR FROM US, 1972  멀리서 내리는 비, 1972  Japanese woodcut. 일본 목판화

 

바서는 일본에서도 한동안 살았는데요. 이때 일본 목판화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래서인지 도장으로 百水라고 써놓은 것도 보이죠.

초록빗방울이 마치 빛의 방울이 되어 영롱하게 대지위에

떨어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세요?

 

 

 

이번 전시에선 환경 운동가로서

그가 그린 다양한 환경 포스터들도 보실수가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그의 컬렉션을 살펴보다가 느낀 것은

그는 화가이기 전에 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대지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천국으로 부터의 입맞춤이라 해석하는

그의 생태적 상상력이 부럽습니다.

 

 

쿤스트빈 하우스의 후면입니다.

이곳에서 보면 더욱 건물의 외양이 잘 드러나지요.

색감의 대비와 더불어 유약 타일을 얼마나 잘 사용했는지 살펴보세요.

 

 

건물 전면 파사드에 들어오는 길도 마치 파도치듯 굽이굽이 길을 내었습니다.

마치 어안렌즈를 쓴 것 같은 느낌이 나죠? 실제로 구불구불한 포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차장의 구획선까지 직선을 쓰지 않고 곡선을 이용했네요.

주차 문제로 매일 옆 차주와 말다툼을 벌이시는 분들, 이 곡선처럼 유연하게 살아가셨으면 하네요.

 

 

이번 국내 훈데르트 바써 전과 관련하여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신

쿤스트빈 하우스 담당 선생님이세요. 짧은 시간 인터뷰 겸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처음 비엔나에 훈데르트 바써 전 준비 때문에 여행을 떠날 땐, 그저 한 남자의

삶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알면 알수록, 점점 더 과밀화와 환경 파괴, 나아가 물길의 흐름을 가로막으며

성장이란 이름의 폭력을 몸에 새기고 있는 '한국사회의 병리'가 눈에 들어왔고 이에 대한 치유로서

훈데르트 바써의 예술적 상상력과 치유의 힘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를 만나게 해준

이 여행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도슨트 하면서 하나씩 이야기할께요.

 

 

도슨트 일정은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전시는 100일 동안 계속되니, 저로서는 한예종 자유예술캠프 학생들과

함께 가고 싶었고요. 제 블로그 독자분들도 함께 초대해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작가 한 명을 공부하고 익히며 느꼈던 감정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세상이 블로그를 써온 댓가로 준 선물이니

이걸 가능케한 분들과 함께 해야죠.

댓글에 꼭 남겨주세요.

 

 

 

42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