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우리는 지금 비엔나로 간다
저는 한 도시를 여행할 때, 건축과 패션, 도시 속 라이프 스타일과 예술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살펴봅니다. 비엔나는 이런 제 목적에 가장 잘 맞는 미적인 도시였습니다. 비엔나의 명품거리를 걸으면서 수제보석 브랜드인 프라이 바일레 매장을 지날때였습니다.
눈에 들어온 두 개의 기하학적 형태의 집들이 화려한 색감으로 채색된 반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도시 속 패션과 예술을 살핀다는 것은 이런 소소한 디자인의 배후에 감추어진 영감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자세히 보니 제가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작가의 이미지가 중첩되더군요. 바로 훈데르트 바써입니다.
비엔나 여행은 화가이자 건축 치료사인 훈데르트 바서의 한국 전시를 앞두고, 그를 깊이있게 이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전시가 며칠 남지도 않았네요. 12월 5일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에서 열립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 내 훈데르트 바써란 예술가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다는 점. 그저 비엔나 하면 클림트의 키스 이외에는 아는게 전무하다는 점이 이번 여행을 몰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를 알면 알수록 한 시대가 산출한 화가와 그의 주요한 이미지들이 패션을 비롯한 인접 예술에 얼마나 자주 차용되는지 눈을 뜨게 됩니다.
오마이뉴스의 문화/예술 담당 기자로서 많은 전시관련 기사들을 써왔지만 주최측에서 받는 보도자료로 이번 '훈데르트 바써'를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만큼 주최측에서 준 자료와 도록조차도 훈데르트 바써를 둘러싼 깊이와 역사를 풀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죠. 오늘부터 6회에 걸쳐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훓어볼 생각입니다.
훈데르트 바써의 시영아파트는 케겔가세와 뢰벤가세의 코너에 있는 란트 슈타라세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혼자서 꿈을 꾸면 오로지 꿈에 그치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다”라는 말 자주 들어보셨죠? 바로 훈데르트 바써의 말입니다. 그의 작품들, 회화와 건축 그래픽, 환경 포스터를 살펴보면 바로 이 말의 진가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예술가로서 환경 운동가로서 그가 '친환경(Green Features)'의 요소를 어떻게 건축에 가미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최소한의 자유를 부여하려 했는지 이해하다 보면, 작금의 한국의 현실에 대해서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생기리라 믿습니다.
입방체로 무 썬듯 설계된 서울의 아파트와는 달리 색감과 굵은 빗금을 통해 구획지은 것들이 아름답습니다.
저 또한 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3년전 독일 북부지역을 여행하다가 본 건축물 때문이었습니다. 일견 스페인의 가우디와 엇비슷한 색감과 형식을 가진 다른 작가인 줄로만 알고 있었죠. 하지만 그를 이해할 수록, 근대의 비엔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비엔나는 동유럽의 근대 정신을 조형한 거푸집입니다. 오늘은 그의 전기를 훓기보다 비엔나의 대표적인 건축 '훈데르트 바써 하우스'를 중심으로 대략적인 철학을 살펴봅니다.
S#2 그들도 우리처럼, 성냥갑에 갖혀 산다
1900년대 비엔나는 한 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역동의 도시였습니다. 고대 건축을 찬미하는 역사주의가 여전히 판을 쳤고, 그 가운데 장식은 죄라고 부르짓는 유파가 등장하죠. 실용성과 기능적 측면을 추구하던 '기능주의'입니다. 기능주의는 당시 도시에 급증하는 노동자의 수요를 채우기에는 안성마춤이었죠. 그러나 이 기능주의는 성냥갑 형태의 집을 양산합니다. 장식은 죄악이며 과거를 들먹이는 건 '과거로의 퇴행'이라고 본 당대의 도도한 물결이었죠. 앞으로 비엔나 도시내부를 탐사하는 글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만, 비엔나는 철저하게 양분된 도시입니다. 링슈트라쎄라 부르는 고리 모양의 지역을 중심으로 신 비엔나와 구 비엔나가 나뉜답니다.
링 모양의 거리 안에는 당시 발흥하던 산업자본가들과 신흥 부르주아들이 모여 살았고, 그 외부에는 바로 서민들이 올망졸망 모여살지요. 비엔나 여행책자를 보면 가세(gasse)란 표현이 나올텐데요. 이 거리 하나하를 걷다보면 비엔나가 어떤 진통을 통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비로소 역사성이 눈에 들어온다는 거죠. 역사주의와 기능주의의 대결, 치열한 싸움 속에 결국 인간의 주거지는 평화의 메세지를 잃고 방황합니다. 훈데르트 바써의 시영아파트는 이런 폭력과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삭막한 도시의 포도위에 피어난 한 송이의 꽃과 같은 존재입니다.
ⓒ THE THIRD SKIN, 1982 세 번째 피부, 1982 Mixed media. 혼합매체 쿤스트하우스빈, 비엔나
S#3 인간은 집이란 피부를 입고 산다
패션은 '제2의 피부'입니다. 옷이란 물질이 단순하게 인간 외면을 장식하는 도구를 넘어, 사회적 의사소통의 도구이자 착용자의 정체성과 내면을 드러내는 매개가 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패션 평론과 전시관련 일을 하면서 강의를 나갈 때마다, 이 오래된 캐캐묵은 수사를 즐겨 씁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을 둘러싼 피부는 과연 몇 개일까요? 우선 인간의 몸을 지켜주는 표층으로서의 피부가 있고, 제2의 피부, 옷이 있으며 나아가 제3의 피부인 집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뜻 집이 '피부'란 것을 잊고 삽니다. 그것은 마치 메이크업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트랜드'가 있답니다. 가옥의 형태와 스타일에 다양한 양식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훈데르트 바써는 인간의 집을 '제3의 피부'라고 규정합니다. 그의 그림 <세 번째 피부>를 한번 보시죠. 인간의 주거 공간에 필요한 초록의 양을 토해내는 나무들의 단아한 형상이 눈에 들어오지요. 그 위로 쏟아지는 햇살의 방향도 나선입니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써는 단연코 '식물성'이라고 주장합니다. 나무와 숲, 그 섭생의 방식을 인간이 받아들일때, 인간의 평화도 자연스레 확보된다는 믿음이겠죠.
ⓒ557 HOUSE IN THE SNOW IN A SILVER SHOWER, 1962
은빛의 비가 내리는 눈 쌓인 집, 1962
Watercolor. 수채화
기능주의가 판치던 비엔나의 거리에 어느날 근사한 시영아파트가 들어섭니다. 훈데르트 바써 하우스 빈입니다. 최근엔 건축물을 설계하고 시공한 조셉 크라비나의 이름도 함께 포함해 <훈데르트바써-크라비나하우스>라고 부르지요. 이 시영아파트의 아이디어는 훈데르트 바써에게서 나왔습니다. 디자인 과정에서 돈 한푼 받지않고 자신의 생각을 건축에 옮겼죠. 이 창의적 생각을 실제 건축물로 승화시킨 이가 바로 건축가이자 대학교수였던 크라비나와 페터 펠리칸입니다. 크라비나는 바써의 영감을 이어받아 1983-6년까지 아파트를 시공합니다. 52개의 구획된 집과 4개의 사무실, 16개의 개인 테라스와 3개의 공동 테라스, 여기에 250 여 그루의 나무와 관목들을 심었습니다.
이 시영아파트의 내부는 볼 수 없지만, 그 외부만 보더라도 화가의 영감이 충분히 반영되어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물결치는듯한 바닥, 흙과 풀로 덮힌 지붕, 방 내부에서 창을 통해 외부로 가지를 뻗으며 자라나는 나무들. 한눈에 봐도 매우 표현성이 강한 주택단지임이 드러납니다. 특히 물이 흐르는 듯한 나선의 불균질한 바닥은 불편하다기 보다 마치 발을 내딛으면, 비오는 날 또그르르 떨어지는 빗방물이 춤을 출 것만 같습니다. 마치 굴곡진 바닥은 악보 위의 음계들처럼 밟으면 소리가 날 것 같더군요. 바닥을 장식한 타일도 다양한 색면을 강조해 균질한 주택 디자인에서 드러나는 무미건조함을 철저하게 피하고 있죠.
<은빛의 비가 내리는 눈 쌓인 집>이란 작품을 한 번 보세요. 아마 눈이 쌓인 시영아파트의 풍경은 그림과 같지 않을까요? 겨울나무에서 봄 나무로, 성장의 여름을 넘어, 초로의 가을을 겪으며 다시 겨울로 순환하는 시간. 이 시간의 은환은 직선이 아닌 나선으로 흐릅니다. 흐르며 쌓이고 중첩되며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겠죠. 붉음과 초록의 강렬한 대비 속에, 인간의 존재를 담는 집은 더욱 아름답게 빛납니다.
타워펠리스를 볼 때마다 과연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부자들이 산다는 것 하나만으로 욕망의 대상이 될까요? 내부를 보면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지적하듯 물이 줄줄 새고 형편없는 주차공간에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지만, 집값 하나를 지켜내기 위해 '쉬쉬'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건축미학자가 타워펠리스를 보고 '위압적으로 발기된 듯 보이나 임포상태의 성기"라는 지적이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바써의 시영아파트는 훨씬 더 따스하고 매력적이죠. 창문을 통해 손을 내뻗을 수 있는 공간만큼은 자신의 개성으로 채색할 수 있도록 한 창문권을 부여함으로써, 개인공간을 창조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백개의 유유히 흐르는 물'이란 뜻의 화가 이름에서 드러나듯, 그는 일체의 직선을 거부하고 나선형태로 구성된 건축과 회화를 꿈꾸었습니다. 어린시절 2차 세계 대전 당시 수직으로 쏟아지던 공습의 두려움이, 트라우마가 된 까닭이겠죠. 절반의 유태인이었던 그가 전쟁의 공포를 경험하며, 수직선이 갖는 권력과 폭력의 이미지에 진저리를 치게 된 것.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며 타인을 죽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식물의 세계에서 우주의 평화와 그 논리의 기본을 발견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식물성의 사유', 딱 한 마디로 그의 세계를 찝어내는 일종의 표제어가 될 텐데요. 오늘은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훈데르트 바서의 미술품을 소장한 쿤스트하우스 빈 방문기와 더불어 작가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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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훈데르트 바써 전은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 딱 100일간 열립니다. 그의 이름의 의미를 살린 전시기간이 아닐까 싶은데요. 전시 중 특별 도슨트를 자청할 생각입니다. 관심있는 여러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 작가에 대한 이야기에 더해, 블로그에서 미처하지 못한 다양한 비엔나 이야기들, 당시 건축을 둘러싼 긴장관계들. 이런 것들을 한번 여러분의 얼굴을 보면서 편하게 안내하고 싶습니다. 댓글 남겨주세요. 일정은 이번 주관단체에 연락해서 잡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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